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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written text Aug 28. 2024

겨울밤처럼 검은 김

1.

일요일 저녁은 적적하지만 쓸쓸한 것만은 아니었다. 업무에 대한 압박감, 나이 든 어른이 되어가는데서 오는 불안 같은 감정이 쓸쓸함을 압도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이전에 겪지 않았던 일을 겪게 된다는 것, 또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한다는 의미다. 엄마와의 이별 역시 그러하다.


2.

적적하지만 쓸쓸하지만은 않은 나의 일요일 저녁, 그러나 그 풍경을 내 것이 아닌 양 들여다보면 분명 궁상스럽기 짝이 없긴 했다. 내 방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중고 가게에서 사 온 냉장고 역시 그런 궁상스런 생활의 모범이라 꼽을만했다. 분명 집에 들일 때는 쓸만해 보였으나 어느새 문득 살펴보니 많이 낡아 있었다.


3.

'어느새' 그리고 '문득'.

차츰차츰 관찰되는 변화가 아닌 느닷없이 목격되는 현상. 그리하여 불쑥 찾아드는 위화감.

나이 듦이란 그런 것 같았다.


4.

술집에서 음악을 듣거나 술을 마시면서 신청곡을 적는 쪽지나 냅킨에 낙서를 하곤 했다. 그런 낙서가 술김에 쓰레기통에 버려지지 않는다면, 그다음 날 나는 잠에서 깨어 그 쪽지를 보게 된다.


언젠가 나는 술에 취해 이런 글을 쪽지에 남긴 적이 있다.


살림살이도 나처럼 늙어가네

싸구려지만 나름 깨끗한
진열상품이었던 그것들은

예전에는 나의 친구였지만,

이젠 녹이 난 거울 속
내 얼굴이 되었다네


5.

마흔 살이 좀 넘었을 어느 날 아침. 출근 전 면도를 하고 있었다. 녹이 나고 양칫물이 여기저기 튄 데다 아침 햇살 탓에 세면대 거울은 뿌옜다. '문득' 거울 속 내 얼굴이 낯설었다. 화장실 벽에 난 조그만 불투명 창에서 부서져 들어오는 빛은 내 얼굴의 굴곡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입가의 주름 더욱 깊고 어두워져 있었다.


6.

젊음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나이 들수록 엄마 역시 세월의 끝으로 내몰렸다.


7.

자취생의 냉장고가 그러하듯, 대개가 비어 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텅 빈 냉장고는 아니었다. 냉장고 안에는 반쯤 마신 생수 한 병이 들어 있곤 했으니까. 퇴근길에 혹은 술집을 나와서도 아쉬운 마음에 편의점에 들러 사 온 맥주가 더러 있기도 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에 산, 뚜껑을 열 수 없어 그대로 둔 마리오 그린 올리브 병조림이 하나 있었다. 어쩌다 와인 한 병을 사 온 날에는 그 올리브 병조림을 여느라 애를 먹곤 했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올리브 병조림은 전설 속 엑스칼리버였고, 나는 아서 왕이 아니었다.


8.

그리고 성에가 가득한 냉동실에는 언제나 구운 김이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었다.


9.

일요일 저녁을 일요일 저녁 영화만 보면서 한가하게 보냈던 것만은 아니었다. 한 달에 한 번, 바쁜 달에는 못해도 한 달 반에 한 번은 엄마를 만나러 고향에 내려갔다. 금요일에 퇴근하자마자 바로 기차를 타고 내려가 월요일 새벽 첫 차를 타고 올라왔다. 무척 피곤한 일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최대한 연장하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렇게 했다. 엄마에게 아들인 내가 고향집으로 돌아온 날들을 제외한 날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날들이었다.


10.

금요일 늦은 밤이 되어서야 엄마 집에 도착하면, 엄마는 두부된장찌개와 계란 프라이, 무 생채, 구운 김 그리고 집고추장에 생마늘이나 고추를 저녁상으로 차려주셨다. 그리고 아들을 위해 소주 한 병도 내오셨다. 소주가 나왔으니 고기 안주라도 있다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없었다.


11.

내가 고기를 먹기 시작한 건 아마도 군대 제대 후 일 것이다. 그 이전에는 고기가 들어간 국조차 잘 먹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집 형편도 그러했지만 어머니를 닮아서 인지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무 생채나 구운 김을 어린 시절에 좋아했다. 아들이 마흔이나 넘었지만,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상은 그때 그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소주는 빼고.


12.

내가 어린 시절부터 엄마는 일을 손에서 놓으신 적이 없었다. 돌아가시기 몇 달 전까지도 일을 하셨다. 엄마는 토요일에도 일을 나가곤 하셨다. 내가 어린아이 일 때도 그러했고, 마흔이 넘은 아저씨가 되었는데도 여전했다. 엄마는 늦잠에 빠진 나이 든 아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용히 출근 준비를 하셨다. 그 조용한 인기척에 오히려 잠이 옅어지기도 했다. 나는 누운 채로 엄마의 작은 등을 보았다. 엄마는 조그만 컵라면으로 아침 끼니를 때우시고 계셨다. 적은 양을 드셨고, 새처럼 가벼우셨다.


13.

지금 와서 후회하는 건, 그때 내가 보다 부지런하고 다정한 아들이었다면, 엄마의 밥상이 그토록 외롭지 않았을 텐데. 하는 것이다.


14.

그렇게 붙잡아두고 싶어 하셨던 아들과 함께한 주말은 언제나 야속하게 흘러 사라졌다. 아들을 다시금 떠나보내야 하는 월요일 새벽이 오면, 엄마는 새로 끓인 된장찌개나 북엇국을 아들 밥상에 내오시곤 했다. 그러곤 언제나 떠나는 내게 구운 김을 플라스틱 용기에 싸주셨다. 다른 반찬은 챙겨줘 봐야 회사로 바로 출근해야 한다며 짐스럽다고 타박하는 아들에게 그나마 챙겨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15.

서울, 내 작은 자취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요일 저녁, 나는 가끔 밥을 해서 엄마가 싸주신 김과 같이 먹곤 했다. 엄마가 들기름을 바르고 소금으로 간해 구워낸 김은 정말로 맛있었다.


16.

얼어붙은 별처럼 하얀 소금이 뿌려진, 겨울밤처럼 검은 김.


17.

엄마가 구워주신 김을 먹고 난 후, 일요일 저녁에 어둠이 내리면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일요일 저녁은 적적하긴 하지만 쓸쓸하지만은 않았다. 늙어 쇠약해져 가는 엄마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면, 나는 어서 그 불안과 걱정을 쫓아내려고 일요일 저녁 영화를 틀었다. 골치 아픈 일들이 산적한 월요일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현실을 외면했다.


18.

2017년 여름 어느 일요일 늦은 오후, 주방 쪽 다용도실에서 늦은 오후의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 눈부신 풍경 속에서 엄마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대학병원에 며칠 입원하셨다 퇴원한 날이었다. 나는 업무가 너무 많이 밀려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엄마의 비쩍 마른 몸이 가스레인지 쪽으로 굽어 있었다. 엄마는 쇠약해진 기운을 짜내 아들에게 먹일 김을 정성껏 굽고 계셨다. 엄마의 모습은 다 타버린 성냥개비 같았다. 나는 슬픔을 꾹 참고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19.

일을 잠시 그만두고 엄마의 남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는 펄쩍 뛰셨다. 그래, 살아남아서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것이겠지.


20.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 근 10여 년 동안 심부전증을 앓고 계셨다. 나는 언제나 그 사실을 외면하고 싶 다. 그러나 이제 그 명백한 현실로부터 더 이상 도망갈 수 없었다. 일요일 저녁 영화 따위로도, 몇 해째 풀지 못한 퍼즐처럼 완강히 입을 다문 올리브 병조림이 있는 냉장고에게로도, 그 냉장고가 있는 궁상스럽고 아늑한 내 동굴 속으로도.


가혹한 현실은 내가 어디로 숨어들든 기어코 나를 찾아내고야 말 것이었다.


21.

그로부터 얼마 후, 엄마는 다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엄마가 없는 엄마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어쩐지 다시 엄마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술을 마셨고 그리고 울었고 조그만 쪽지를 찾아내 그림을 그렸다.



22.

이 그림을 그리고 나서 이듬해 새해 초, 엄마는 영원히 눈을 감으셨다. 엄마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엄마는 더 이상 늘 보고 싶기만 한 아들을 만날 수도 없었다.  

그렇게 가차 없고 구체적인 시간이 내 몸을 관통해 지나갔다.


23.

엄마의 사십구재를 치른 이월의 어느 금요일 밤이었다. 어김없이 술집에 들러 술에 취해 돌아가는 밤. 자정을 넘긴 밤하늘에서 함박눈이 내렸다. 사십구일 전 엄마가 마지막 숨을 힘겹게 내뱉던 바로 그 시간이었다. 엄마의 마지막 흰 숨이 수많은 눈송이가 되어 허공에 얼어붙어 있는 것만 같았다. 아름답고 슬픈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날 아침, 나는 엄마 꿈을 꾸었다.


24.

엄마는 80년대 관공서에 있었을 것만 같은 접견실에 계셨다. 나는 막 그 방에 들어선 참이었다. 양복을 입은 노신사가 나를 안내했던 거 같다. 제복을 입은 사람도 그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초록색 부직포에 유리를 덧댄 낮은, 어두운 색깔의 나무 탁자가 있고, 탁자 양 옆과 안쪽에는 안락해 보이는 커다란 가죽 소파가 놓여 있었다.

엄마는 단정한 양장 차림으로 가죽 소파 끝에 다소곳이 앉아 계셨다. 아무런 말씀 없이 그저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계셨다. 엄마는 평온해 보였다. 나는 엄마를 보자마자 흐느껴 울며 엄마 앞에 무릎을 꿇고 엄마 손에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엄마, 이제는 엄마를 만날 수 없어요’라고 이야기했다. 그것이 마지막 인사라고 생각했다.


25.

꿈을 꾼 그 토요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도 집에 있지 못하고 길거리를 헤매다 또 술집에 들러 술을 마셨겠지. 그리고 덧없이 시간이 흘러 어김없이 일요일 저녁이 되었다. 나는 냉동실 문을 열어 엄마가 주신 김을 꺼냈다. 밥 한 끼랑 먹을 정도의 양이 남아 있었다. 밥을 먹다 울 것만 같아 도로 넣어둘까도 싶었다. 어쩐지 그것이 정말로 엄마와 함께하는 마지막 순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좀 더 미러두면 어떨까?

그러나 나는 나이 든 어른답게, 그러나 일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가 되어 김을 먹기로 했다. 그 김에는 엄마의 살아있음이, 사랑을 품고 몸을 움직여 김에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리고 구워냈던 그 행위가 깃들어 있었다. 엄마의 살아있음, 살아있었음의 흔적이 눈앞에 있었고 곧 내 입 안에서 녹아 사라졌다.


26.

술집에서 음악을 듣거나 술을 마시면서 나는 신청곡을 적는 쪽지나 냅킨에 이런저런 낙서를 하곤 한다. 술버릇이다. 그런 낙서가 술김에 쓰레기통으로 버려지지 않는다면, 그다음 날 나는 잠에서 깨어 그 쪽지를 보게 된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삼 년이 흐른 후, 쪽지에 쓴 글을 잊고 있다 이 글을 쓰느라 이것저것 뒤적이다 우연히 발견했다. 내가 쓴 글은 이렇다.


마지막 남은 김 한 장을
입에 물었다

생전 어머니가 구워주신
밤의 지도

맛있는, 슬픔
상실의 우주

밤하늘에서
하얀 짠맛이 난다

엉엉 울고 싶었지만
흐느끼기만 하였다

노래가 되지 못한
음표 몇 개가
낡아 침침해진 형광등 아래
잠든 참새처럼
웅크리고 있다

울기에도 좋고
흐느끼기에는 더 나무랄 데도 없는
내 작은 방에서

나는 다만 오늘 밤
유령으로 지내기로 했다

마치 내 입 안에서 사라진
엄마의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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