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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written text Jul 31. 2024

자기 치유로서의 글쓰기

1.

이제 미용실에서 중년 여성들이 ‘파마’한 머리를 헤어 스티머에 넣은 채 잡지를 읽는 풍경은 사라질 터였다. 삼십 대 중반, 나는 잡지사에 다니고 있었다. 세상에 아이폰이 등장했고 내 손에 쥐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아이폰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혁명이 내가 몸 담고 있는 업계를 몰락하게 할 것임을 예감했다.


2.

이십 대 때 즐겨 듣던 노래 중 이런 가사가 있다.

‘죽기엔 너무 젊고, 살아남기엔 너무 늙었네(Too young to die, but too old to survive)’


3.

내게 잡지 시절을 상징하는 풍경이란 그런 것이다. ‘아줌마’가 독한 약품과 플라스틱 지지대와 노란 고무줄로 파마한 머리를 해괴한 기계에 넣고 연예인들의 추문과 속옷 광고로 가득한 잡지를 들춰보는 것.


4.

우리 엄마도 파마 머리였다. 어린 시절, 엄마가 처음 파마한 모습을 보고 낯설어 울음을 터뜨린 적이 있다. 이전의 엄마는 단발머리였다. 파마를 한 엄마는 어느 절 대웅전에서 막 걸어 나온 부처님 같았다.


5.

이전 시절, 엄마들에겐 머리를 감고 나서 예쁘게 가꾸고 손질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강한 곱슬머리로 다들 파마를 했었다. 나이가 들어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6.

미용실 헤어 스티머란 기계는 미국 네바다주 사막 한가운데 있는 비밀연구소에서 개발한 세뇌 장치다. 이 장치는 상업 광고의 노출 효과를 극대화하고 비밀정부가 가십 기사에 숨겨놓은 암호를 두뇌에 새기는데 쓰인다. (미안합니다. 헛소리입니다.)    


7.

내가 어린 시절 살던 동네 중심가에는 미용실 외에도 서점, 양품점, 잡화점, 시계방 같은 작은 상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작은 상점 주인들은 자연스럽게 대형마트의 종업원이 될 운명이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오히려 변화야 말로 세상의 진정한 속성이다. 이제 미용실에서 잡지를 보던 시대는 저물고 있었다. 대형마트 역시 그 변화의 급류를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내 차례였다.


8.

마흔 살 무렵, 나는 스스로를 네덜란드 소년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어릴 적 읽은 동화 속 소년 이야기다. 소년은 마을을 지키고 있던 댐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동네 사람들에게 알릴 시간은 없었다. 작은 균열이 곧 작은 구멍이 되었다. 구멍이 더 커지기 전에 소년은 주먹으로 막았다. 그러나 곧 또 다른 주먹이, 두 다리는 물론 급기야 머리마저도 구멍을 막는데 필요했다. 댐은 무너졌고 가엾은 네덜란드 소년은 세월에 휩쓸렸다. 아니, 사실 세월에 휩쓸린 이는 네덜란드 소년으로 변장하고 있던 어설픈 나이의 중년 아저씨였다.


9.

내게는 또 다른 비유가 있었다. 나는 비유를 참 좋아한다. 내가 앓고 있는 몇 가지 만성질환이 있는데 천식과 아토피, 인용병과 비유병이 그것이다. 내 책상 서랍은 마술사 모자와 같다. 흰 비둘기도 있고, 미녀도 있고, 아프리카 코끼리와 시베리아 호랑이와 마흔 명의 서커스 단원과 마리아치 밴드와 가짜 콧수염과 훌라후프와 하모니카와 나선형 은하와 기타 등등이 잔뜩 있다. 물론 범람하는 바닷물에 휩쓸린 네덜란드 소년도 있다. 모두 내가 비유를 구사할 때 쓰인다. 무언가를 기록할 때도 나는 연필 대신 비유를 꺼내 쓰고, 그 기록을 지울 때도 지우개 대신 비유를 쓴다.


10.

내 책상 서랍에 고이 간직한 또 다른 비유란, ‘내 영혼의 케이크’이다.


11.

대학시절, 영시 강의 시간이었다. 교수님은 아일랜드 출신 가톨릭 사제셨다. 오후의 기운 햇살이 강의실로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다. 교수님의 목소리는 멋진 중저음이었다. 교수님은 앨프리드 로드 테니슨의 <샬롯의 아가씨>라는 영시를 낭독하고 계셨다. 내가 흔히 알던 시라기 보다 노래에 가까웠다. 그때 나는 영혼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혼이 아니라면 이 아름다운 노래를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영혼은 아름다움이란 빛을 감광하는 필름이라고 생각했다.


12.

본론으로 돌아가 이십여 년 전, 그러니까 서른 즈음에 나는 '영혼의 케이크'에 관한 비유를 남겼다.


13.

먹고사는 일에 이따위 영혼이란 참으로 거추장스러운 거야.

그래서 나는 영혼을 생일 케이크 모양으로 반죽한 다음 오븐에 구워냈어.

조금씩 잘라서 내어주면 되니까.

몽땅 빼앗기는 일은 없을 거야.

"너 대체 전공이 뭐야? 그따위 쓸모없는 영문학을 공부해 와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야!"

높은 분이 소리 지르면 케이크를 원뿔형으로 잘라서 조금 내어주는 거야.

"수야, 이 일은 너밖에 할 수 없을 거 같다."

회사 선배가 동료들을 데리고 술을 마시러 나가면서 내게 일을 맡기면 또 조금 잘라서 내어주지.

"아, 이 건은. 제가 말입니다 열심히 궁리해서 (···)"

내가 한 일인데, 자기가 한 일처럼 구는 부서장에게도 조금씩 잘라서 내어줘.

"제가 왜요? 저 오늘 약속 있는데요."

본인이 할 일임에도 내빼는 후배에게도 달콤한 한 조각을 내어주지.

그래도 원주율은 무한소수니까 무한히 잘라내어 주면 결코 내 영혼의 케이크는 없어지지 않을 거야.


14.

그러나 네덜란드 소년은 세월에 휩쓸렸다. 어느 날 바다 한가운데 눈을 떠보니 모든 것을 잃은 뒤였다. 영혼의 케이크도 네모난 종이 접시며 플라스틱 칼까지도 몽땅 사라져 버렸다. 속물을 혐오했으면서도 어느새 속물적인 인간이 되었다. 그렇게 가장 쓸모없는 영혼을 잃자, 그냥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


15.

많은 동료들을 떠나보냈고 팬데믹이 왔다. 회사에 작별을 고하고 세월을 허송했다.


16.

몇 달 전, 아내가 해외 출장으로 한동안 집을 비운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유튜브를 쉴 새 없이 새로고침하고 OTT의 빌보드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무엇하나 집중해서 볼 수 없었다. 지칠 줄 모르는 알고리즘의 제안은 쓰나미가 되어 나의 내부를 휩쓸었다. 나는 더 이상 사유하지도 비유를 궁리하지도 않는 인간이었다. 너무도 텅 빈 존재였다.


17.

몇 해 전 내가 살면서 잃은 것들에 대한 목록을 적으려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내가 결국 깨달은 건 내가 뭘 잃었는가에 관한 의식 그 자체도, 기억도 잃었다는 사실뿐이었다.


18.

이 글은 그런 나를 되찾는 여정이다. 내 삶의 가치와 의미는 결코 외부세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삶의 가치와 의미를 내 삶과 사유 안에서 발견하고 싶다.


19.

그러니 이 글은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기보다 나 스스로를 치유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 한편 무척이나 개인적인 삶과 사변을 다룰 생각임에도, 이 글을 공개하려는 목적은 또 따로 있다. 누군가 나와 같이 유년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면 그리고 생계를 유지하느라 악당들과 불한당들 그리고 괴인들을 너무 자주 만나 자신의 삶이 훼손되었다면, 그 누군가는 나의 이 조촐한 자기 치유의 글쓰기에 관한 시도를 보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그 역시 펜을 들기를.


20.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많은 이들에게 감사를 전해야 한다. 나는 살면서 많은 이들의 덕을 봤다. 나를 고용해 주신 그 모든 사장님들께도 감사하고 싶다. 미용실 풍경에서 해괴한 음모론이나 떠올리고는 낄낄 대는 사람에게 그들은 훌륭한 생계의 기회를 주셨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몸을 담았던 잡지사는 그 유구한 전통에도 결코 연예인의 추문과 같은 선정적인 이야기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지 않았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몇몇 이들이 내게 불어넣은 영감이 큰 작용을 했다. 특히나 아내가 그런 존재다. 아내가 어째서 나 같이 쓸모없는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돌이켜본 것이 자기 치유로서의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하나의 계기였다. 항상 나를 지켜봐 주는 아내에게, 나의 거울이 되어주는 아내에게 감사한다.


21.

네덜란드 소년도 팔자 주름이 점점 더 깊이 파여가는 어설픈 중년의 아저씨도 댐에 생긴 작은 균열로 인해 세월이라는 거센 물살에 휩쓸려 갔다. 마지막으로 이 균열에 관한 내가 아는 가장 인상적인 노랫말을 인용하고 글을 마무리한다.


"모든 것에는 균열이 있지. 그렇기에 빛이 새어들 수 있는 거야."
(There is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

- 레너드 코언(Leonard Cohen) <성가(Anthem)>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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