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비싸고, 선동은 가성비가 좋다 - 유발 하라리

결갈피 독서 모임 후기: 넥서스 1부를 읽고

by 르네

1. 팩트 폭격: 정보는 진실의 재료가 아니다


"정보가 많아지면 우리는 더 똑똑해질까?" 하라리는 이 순진한 믿음(Naive View)을 산산조각 낸다. 정보는 진실을 위한 재료가 아니라, 우리를 엮어주는 '접착제'일 뿐이다.


냉정하게 말해보자. 사람들을 광장에 모으는 건 복잡하고 지루한 진실이 아니라, 자극적이고 단순한 선동이다. 진실은 검증 비용이 비싸지만, 거짓은 싸고 빠르다. 인류 역사는 '가성비 좋은 거짓'이 승리해 온 기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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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리는 뼈 때리는 예시를 든다. 천문학자와 점성술사가 있다. 천문학자는 우주의 진실을 계산하지만, 점성술사는 별자리로 운세를 점치며 이야기를 판다. 역사적으로 대중을 연결하고 사회를 움직인 건 팩트에 기반한 천문학자가 아니라, 그럴듯한 썰을 푼 점성술사였다.


우리라고 다를까? 처음 만난 사람에게 유전자 검사 결과지를 내밀며 과학적 형질을 논하지 않는다. 대뜸 "MBTI가 뭐예요?"라고 묻는다.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더라도, '나랑 같은 I 성향이네'라는 소속감이 주는 효용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결국 정보의 본질적 가치는 Correct(옳으냐)가 아니라 Connect(연결되느냐)에 있다. 진실은 고비용 저효율의 데이터고, 허구는 전파력이 미친 가성비 갑(甲) 콘텐츠다. 우리는 진실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내 입맛에 맞는 달콤한 스토리, 즉 질서를 구매하고 있는 것이다.




2. 배트맨이 '거짓'을 선택한 이유 (feat.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 이야기를 꺼냈다. 배트맨은 왜 하비 덴트의 죄를 뒤집어쓰고 스스로 악당이 되었을까?


"진실만으로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으니까."


고담시의 붕괴를 막기 위해 그는 진실을 덮고 질서를 택했다. 하라리의 통찰도 여기 닿아 있다. 역사상 강력한 네트워크들은 대부분 진실 규명보다 질서 유지에 몰빵했다는 것. 우리가 알게 모르게 불편한 진실보다 달콤한 질서를 원하고 있다는 증거다.


솔직히 말해 <다크 나이트>는 내 인생 영화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연출과 한스 짐머의 웅장한 스코어가 깔리는 그 순간, 마블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건 급이 다르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배트맨이 배트포드를 타고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 나는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닌 거대한 철학적 질문에 압도당했다.


영화 속 조커는 단순한 미치광이가 아니다. 그는 통제되지 않는 진실의 화신이다. "너희들의 도덕? 역겨운 농담일 뿐이야"라며 인간 본성의 가장 추악한 바닥(Truth)을 있는 그대로 까발린다. 조커가 뿌린 진실의 씨앗은 고담시를 공포와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진실이 질서를 파괴한 것이다.


반면, 배트맨은 고귀한 거짓을 선택한다. 고담의 시민들에게는 빛의 기사 하비 덴트라는 희망(신화)이 필요했다. 하비 덴트가 타락했다는 팩트가 밝혀지면, 시민들이 지탱해 온 도덕적 질서는 붕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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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보상받을 자격이 있어. 때로는 진실만으로는 부족해. 가끔은 사람들의 믿음이 보상받아야 해."


배트맨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어둠의 기사(Dark Knight)가 되기를 자처한 순간, 그는 하라리가 말한 <넥서스>의 핵심을 꿰뚫는다. "가장 강력한 질서는 종종 진실을 희생시킬 때 완성된다."


배트맨은 고담이라는 시스템의 '치명적인 버그(하비의 타락)를 고치는 대신, 그것을 자신이라는 '방화벽' 뒤로 숨기는(Hiding) 패치를 단행했다. 덕분에 고담은 평화를 얻었다. 비록 그 평화가 거짓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일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스크린 밖에서 배트맨을 동정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보자. 우리 사회 또한 붕괴를 막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불편한 진실들을 덮어두고 안락한 질서를 택해왔는지를.



3. 서류가 깡패다: 관료제와 '페이퍼 리얼리티'


개발자로서 가장 뼈 아프게 다가온 개념은 바로 서류 현실(Paper Reality)이다. 하라리는 관료제가 실재하는 세상보다 장부상의 기록을 더 신성시한다고 지적한다.


현업에서도 익숙한 풍경이다.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르는 건 실제로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잘 돌아가는가가 아니다. 완료 보고서에 도장이 찍혔는가다. 코드가 아무리 불안정해도, 문서상으로 모든 기능이 구현된 것으로 기록되면 그 프로젝트는 성공이 된다. 반면, 아무리 혁신적인 기능을 만들었어도 서류에 없으면 그건 존재하지 않는 일이 된다. 문서가 현실을 압도하는 주객전도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기이한 주객전도를 목격한다. 실질적인 문제 해결보다 보고를 위한 보고가 우선시되는 순간들 말이다. 현장의 문제는 여전히 곪아 터지고 있는데, 깔끔하게 정리된 보고서 한 장이면 위에서는 "잘 해결되었다"고 믿어버린다.


개발 현장도 다르지 않다.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견고한지보다, 산출물 문서의 형식이 규정에 맞는지가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곤 한다. "코드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문서는 얼마든지 현실을 편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시스템은 문서에 찍힌 '승인' 도장을 현실보다 더 신뢰한다. 이것이 관료제가 만든 세상의 룰이다.


하라리의 경고가 서늘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도 이토록 서류 뒤에 숨어 현실을 왜곡하는데, 오직 데이터(디지털 서류)만을 현실로 인식하는 AI가 권력을 쥐게 되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이미 겪고 있다. "당신은 성실하고 잠재력 있다"는 실제 모습보다, "신용 점수 600점"이라는 데이터 한 줄이 대출 심사에서 내 인생을 결정짓는 세상. 서류가 깡패가 된 세상에서, 우리는 진짜 현실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4.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세상 거부하기


결국 정보 네트워크(알고리즘)는 우리를 진실과 연결하는 게 아니라, 비슷한 생각끼리 가두는 감옥(Echo Chamber)이 되기 쉽다.


나와 딱 맞는 사람, 내 생각에 동의하는 유튜브 채널만 보는 건 편하다. 하지만 그건 고립이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이해 안 되는 타인과 부딪힐 때 비로소 내 세계는 확장된다.


"연결을 넘어, 확장을 위해." 이번 모임이 남긴 숙제다.


토론 중 연애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맛집을 갈 때 실패 없는 단골집만 가는 사람과, 리스크가 있어도 무조건 새로운 곳을 뚫는 사람."


알고리즘은 우리를 영원히 '단골집'에 가둔다. 내가 좋아할 만한 영상, 내가 동의할 만한 정치색, 나랑 MBTI가 잘 맞는 사람만 큐레이션 해준다. 실패 확률 0%의 최적화된 삶. 편안하고 안락하다. 하지만 그곳에 성장은 없다.


나는 "좋은 관계란 서로의 세계가 확장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나와 100% 똑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은 나를 편안하게 해주겠지만, 내 세계를 단 한 뼘도 넓혀주지 못한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취미를 가진 사람, 나와 전혀 다른 인생 경로를 걷는 사람(노이즈)이 내 삶에 들어올 때, 나의 알고리즘은 깨지고 세계는 넓어진다.


하라리가 말한 '진실'을 마주하는 태도도 이와 같지 않을까.


유튜브가 떠먹여 주는 달콤한 확증 편향을 뱉어내고, 기꺼이 불편한 이견을 클릭하는 것. 익숙한 단골집을 지나쳐 낯선 골목으로 들어서는 것.


내 인생의 알고리즘에 의도적인 '버그'를 심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시스템의 부품이 아니라, 주체적인 인간으로 남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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