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상점
아침 일찍 월명산을 올라가면 어디쯤엔가는 국 냄새가 가득 퍼지는 곳이 있다. 그만큼 월명산은 사람들 사는 곳과 가까운 곳이다. 군산 어디에서나 월명산을 오르는 길이 있다. 그래서인지 과일이나 채소를 펴놓고 장사를 하는 분들도 많은데 대부분 각자의 지정석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청소년 수련관은 월명산 등산로 입구 중 가장 큰 곳으로 그 앞에 과일을 파는 아저씨가 있다. 아저씨가 파는 과일이나 채소는 그때마다 달랐다. 버섯, 시금치일 때도 있고 오렌지, 사과일 때도 있다. 아저씨는 도매상에서 그날 좋은 물건으로 떼 오는 것 같았다. 일주일이면 4, 5일을 월명산을 오르는 나는 자연스럽게 그 날 아저씨의 장사가 잘 되는지 점칠 수 있게 되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 사람들의 걸음은 빨라지면 장사가 안 되는 것 같았고 반대로 햇살이 따사로운 날이면 사람들은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아저씨 좌판 앞에 발길이 멈추고는 했다.
아저씨는 눈이 마주치는 사람 모두에게 과일을 맛보라며 과분한 친절을 베푸는 걸로 유명한데 내가 볼 때마다 사람들이 그 앞에서 과일을 먹고 있었다. 나는 팔아야 될 과일을 저렇게 공짜로 줘도 되나 싶었지만 아저씨는 사람들이 먹기만 하고 가버려도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저 사람들은 내일 또 이 앞을 지나갈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
그저께 아저씨가 권한 딸기를 맛만 보고 사지 않은 일이 떠올랐다. 아저씨가 나와 있을까? 장사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겠지? 그때 아저씨의 아반떼가 보였고 아저씨가 물건을 내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출근 시간은 빨라서 놀랐다. 해가 질 때까지 있는 걸 자주 봤는데 이렇게 일찍 나오시는 거였구나...
아저씨한테 과일을 사면 나는 내 차가 있는 곳까지 그걸 들고 1시간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신중해야 했다. 특별히 맛있지 않다면 굳이 살 이유가 내게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지난번에 딸기를 얻어먹은 신세도 갚을 겸 해서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딸기 얼마예요?”
“이건 오천 원이고, 이건 육천 원이예요.”
지난번에는 칠천 원, 구천 원이었는데 잘 안 팔려서 가격을 내린 걸까? 나는 육천 원짜리로 달라고 했고 아저씨는 딸기 상자를 봉지에 담아서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조심스럽게 묶어서 나한테 건넸다. 나는 그걸 들고 얼마쯤 가다가 한 알을 꺼내 먹어봤다. 싱싱하기는 했지만 그날만큼 달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아저씨는 오늘은 덜 맛있고 덜 비싼 딸기를 사 온 모양이었다. 어떤 사람한테는 일이천 원이 중요하지 않겠지만 나와 아저씨한테는 꽤나 중요한 문제 같았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곳이 월명산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월명산은 운동도 하고 장도 볼 수 있는 곳이다. 전투적으로 팔을 휘저으며 가는 한 중년 여성이 냉이와 버섯이 봉지가 들려있으면 오늘 반찬은 냉이 무침과 버섯볶음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고 딸기 봉지를 들고 가는 할머니를 봤을 때는 딸기를 살 수 있는 정도면 할머니 살림이 그리 팍팍하지 않을 것 같아 안심이 되기도 했다. 어쩌면 오늘 집에 손주가 와서 할머니의 쌈짓돈을 터셨나 추측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이나 마음의 여유를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이 아저씨가 아닐까. 코로나 19로 폐업하는 가게가 늘고 실직자가 늘어나면서 아저씨 같은 영세 판매업자들은 더욱 힘들 것 같았다. 코로나 19가 확산이 시작되던 초반에는 월명산에 운동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고 아저씨를 포함한 요구르트, 뻥튀기 장사하는 분도 나오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간이 점점 길어지자 장사하는 분들이 다시 나왔고 시민들도 운동하러 나왔다. 아무리 코로나 19가 무서워도 장사할 사람은 하고 운동할 사람은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전과 다른 활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서로 거리를 두고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내가 힘든 만큼 이 사람도 힘들겠지, 하는 마음의 거리만큼은 전보다 가까워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도 아저씨를 주의 깊게 살피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루는 아저씨와 공원관리 직원이 실랑이를 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이후로 ‘공원 관리’라고 쓰여있는 차가 서 있는 날이면 아저씨의 좌판은 볼 수 없었다. 자세한 상황을 모르는 나로서는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인심만은 재벌 부럽지 않은 아저씨가 어디서든 장사를 하셨으면, 하고 바랬다. 이왕이면 아저씨가 권하는 딸기를 계속 먹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