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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Apr 10. 2021

개 하고는같이 못 산다던 엄마가

수업 중에 안방에 있던 보미가 짖었다. 내가 “보미, 조용해”라고 하자 소리는 딱 멈췄다.

“강아지 말 진짜 잘 듣네요.”

학생이 신통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과외를 하는 동안 보미는 갇혀 있는 신세다. 언제부턴가는 과외시간을 알아챘는지 안 잡히려고 도망을 다니기도 한다.   

  

과외를 시작한 초반에 한 모녀가 상담을 왔는데 보미를 보고 혼비백산해서 탁자와 의자 위로 올라가고 난리가 난 적이 있다. 상담은 당연하게도 수강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내가 보미에게 단호하게 대하기로 결심한 건 그때부터였다. 이건 보미의 밥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미는 초밥이 때문에 키우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아이들처럼 초밥이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다. 공원에서 만난 강아지를 따라다녔고 친구가 강아지를 기른다는 정보를 입수할 때마다 나한테 빠짐없이 전했다.

      

친한 원장님이 기르는 콩이(치와와)와 나림이는 자주 영상통화를 했고 초밥이가 “콩이 보고 싶어”라고 해서 원장님 집 앞에서 외출한 원장님과 콩이를 한 시간 동안 기다린 적도 있었다. 그즈음 우리는 애견카페에 자주 갔는데 짧은 시간 동안 친해진 강아지가 주인과 함께 떠나는 뒷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던 초밥이는 “우리도 강아지 키우면 안 돼?”라고 했다.     


반면 나는 어른이 된 이후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나의 생명을 키운다는 게 얼마나 큰 책임감을 요구하는 일인지 딸을 키우면서 알게 된 그 시점에는 더욱더 그랬다. 그러면서 초밥이를 애견카페를 데리고 가고 콩이와 영상통화를 하게 한 이유는 그런 딸을 보는 게 귀여워서다. 자기보다 작은 것을 귀엽다며 어루만지는 앙증맞은 손과 미소를 보면 나는 마냥 행복해졌다. 작은 것들은 서로 통하는 게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집 근처에 대형애견센터가 생긴 건 그 무렵이었다(애견샵이 상업적 이익을 위해 동물이 학대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때였다). 그 소식에 초밥이는 당장 가보자고 했다. 거기에는 주인 없는 강아지들이 있는데 딸이 강아지에게 정이 담뿍 들어버리면 어쩌나 싶어서 나는 얘기를 꺼낸 걸 후회했다. 오늘은 보기만 하는 거라고 초밥이한테 신신당부를 한 뒤 나간 김에 저녁도 먹고 들어오자며 엄마도 함께 가자고 했다.     


초밥이는 생후 두 달된 말티즈(장차 보미가 될)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엄마, 저 강아지 우리가 데리고 가면 안 돼?”

대답은 엄마가 했다.

“개 키울라만 내가 집 나가만 해라. 나는 개 하고는 같이 못 사니까 알아서 해래이.”

단호한 할머니 말에 초밥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할머니, 제발 키우게 해 주면 안 돼요? 제가 강아지 목욕시키고 똥 치울게요.”

엄마는 아예 등을 지고 돌아섰다.

“나는 개 뒤치다꺼리까지는 못하니까 그런 줄 알아래이.”     




문득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 어디선가 야옹야옹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연약하지만 끈질기게 나는 그 소리를 따라 오빠와 내가 찾아 나섰다. 소리의 진원지는 집 앞 건물의 화단.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오들오들 떨면서 울고 있었다. 만지는데도 아무 저항도 하지 않는 고양이가 너무 어려서인지 어디가 아파서인지 모르지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왔다.   

   

마당에 서서 우리는 엄마한테 고양이가 아프다고 우리가 잠시만 돌봐주면 안 되냐고 했고 엄마는 “당장 내다 버리라”라고 했다. 우리는 울면서 사정을 했지만 엄마는 냉정했다. 방문을 열면 바로 마당이었고 엄마는 환하게 불을 켜진 안방에서, 우리는 어두운 마당에 서서 그렇게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실랑이를 했다.

    

오빠와 나는 고양이를 원래 있던 자리에 갖다 놓을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가 불쌍한데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슬펐다. 고양이도 울고 우리도 울고 달님도 울었다. 그때 지나가던 아가씨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우리는 새끼 고양이가 아프다고 했다. 그녀는 곁에 서서 한참을 보더니 내가 돌봐줄 테니 걱정 말라며 고양이를 품에 안고 갔다. 그래도 우리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다행이라는 생각보다 고양이와 함께 할 기회가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 더 서러웠던 것 같다.     


불현듯 그 일이 생각난 건 애견샵의 환한 조명을 등지고 있는 엄마와 어두운 길에 서있는 딸이 서있는 장면이 그때와 비슷해서였을까? 이번에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빠와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왔을 때도 내다 버리라고 하더니 지금도 그래요?”

예전에 오빠와 나에게 준 상처를 손녀에게까지 주려고 하냐고, 왜 그때 우리 얘기를 조금도 들어주지 않았냐고 엄마한테 따졌다. 얘기를 하다 보니 제대로 감정이입이 되어서 “그때는 엄마 집이지만 지금은 내 집이니까 결정권은 나한테 있다”는 말까지 했다. 엄마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초등학생 유치함으로 무장한 나는 당당했다.      


엄마와 할머니가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자기편을 들어주는 분위기라는 걸 감지한 초밥이는 더 구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할 말을 잃고 생각에 빠진 엄마는 손녀를 한참을 보더니 어느새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을 뗐다.      


“사는 기 그때는 왜 그래 여유가 없었는지.”

엄마도 잊지 않고 있었다. 손녀의 얼굴에서 오빠와 나의 얼굴이 겹쳐졌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항복을 받아냈지만 나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분명히 억울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꺼내놓고 나니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다. 천 짜는 기술자인 엄마는 외곽지에 있는 공장에 가기 위해 새벽에 나가서 한밤중이 되어서 돌아왔다. 엄마가 보통날보다 이른 시간에 퇴근한 그날은 엄마가 몸이 아팠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아무튼 그날부터 보미는 7년이 지난 오늘까지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개 하고는 절대 같이 살 수 없다던 엄마는 개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 되어 대구로 간 뒤에는 영상통화로 보미를 보여 달라고 한다.    

  

아침에 내가 보미와 산책을 나가려는데 초밥이가 말했다.

“보미 데려가지 마. 어제도 산책했잖아.”

내가 아침 준비를 하는 동안 자기가 보미를 씻기는 게 귀찮아서 그러는 모양이었다.     

“너도 어제 나가고 오늘도 나가잖아.”

“나는 학원 간 거고 얘는 중요한 일도 없잖아.”

“너무 인간 중심적 사고 아니냐?”

“하여튼 나는 오늘 보미 목욕 안 시킬 거야.”     

달라진 사람은 엄마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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