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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ul 08. 2021

본인과 참 맞지 않는 일을 하시네요

“백점을 맞는 순간 네 인생은 망하는 거다”     


장항준 감독이 딸한테 한 말이다. 한번 100점을 받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한 개 틀리는 게 크나큰 재앙이 될 거라고 시험 문제 하나에 울고 웃는 그런 삶은 살지 말라고 했다.   

   

오랜 시간 그는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았고 인터뷰나 예능에서 그 시기를 자주 얘기했다. 짬뽕 한 그릇을 시켜서 한 끼는 아내인 김은희 작가와 면만 건져먹고, 다음에는 국물에 밥을 말아서 먹었다고 했다. “가난은 속 깊은 내 친구”라고 말하는 그는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사는 데 있어서 감수해야 하는 것들은 기꺼이 끌어안고 살아왔다. 그의 유머에는 철학이 있고 고난이 있고 용기가 있어서 웃음 뒤에 남는 게 있었다.

    

그가 딸에게 말한 건 시험이 전부인 삶을 살지 말라는 뜻인 것 같았다.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타인의 평가와 욕구를 내면화해서 그것대로 살게 된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원장님은 본인과 참 맞지 않는 일을 하시네요.”


학원인 시절, 일 년에 두 번 있는 학원장 연수교육에서 정서와 학습의 상관관계를 주제로 한 강의를 들었다. 강의가 인상 깊었던 나는 수소문 끝에 군산 청소년 상담센터의 소장님이 강사였다는 걸 알게 되었고 소장님에게 학원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강의를 요청했다. 소장님은 흔쾌히 승낙을 했고 강의를 마친 뒤에 차를 마시면서 나에게 한 말이었다.     


"네?"

“제가 볼 때는 수학과 경영이 원장님하고 맞지 않아요.”    

 

소장님의 말에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내 안에서 이상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한 시점이라 흘려들을 수 없었다.     


“기질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 어떻게 되나요?”

“애쓰면서 살게 돼요. 거스르면서 살기 때문에 자신이 소모됩니다.”     


소장님은 그 노력을 자신의 기질에 맞는 일에 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만족감도 커진다고 했다. 새가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헤엄을 치는 것처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담부터 받아보세요.”     


이제껏 기질 같은 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일이라는 건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선택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가장 유리한 걸 고르는 거라고 배웠다. 내가 선택하기보다는 선택당했다는 말이 맞았다.  

   

간신히 쓰리고(학사경고 세 번을 이르는 말)를 면하고 졸업한 나는 당연하게도 대기업 취업에 실패했다. 열정적인 대학생활을 했다는 자책과 함께 차선책으로 학원 강사 일을 시작했고 그런 내 입장에서 언감생심 적성은 생각할 엄두도 못냈다. 원장과 학생들이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으면 다행이고 인정받을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이과 선택부터 전공, 직업 선택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그렇게까지 나를 쏙 빼놓았는지.



무언가 단번에 싫게 만들고 싶은 게 있다면 그걸로 시험을 보면 된다. 그냥 점수를 주지 말고 아홉 개 구간으로 나누어서 등급까지 내면 확실하다.      


17살이 된 아이한테 “너는 몇 등급짜리”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모르는 걸까. 일 년에 네 번씩 꼬박꼬박 시험을 치고 과목 별로 골고루 등급이 매겨지다 보면 아이들은 타인이 나를 평가하는데 익숙해진다. 나의 가치는 누가 함부로 정할 수 없다는 건 유치원 버스 타던 시절에나 하는 소리라는 걸 깨닫게 된다.   

  

있던 꿈도 사라지고 세상에 궁금한 게 없어진다. 세상은 내가 바꿀 수 없고 이미 있는 틀에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는 것만이 답이라고 배운다. 그것만이 살 길이고 다른 길은 낙오를 뜻한다. 이미 학교에서 8, 9등급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았고 그렇게 학교에서 ‘교육’이 되어서 사회로 나오게 된다. 등급제는 꿈이 없는 어른들이 꿈이 없는 아이들을 길러내기 위해서 만든 제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학원을 두 개로 확장을 해서 일이 벅차다 싶었지만 이 일이 나와 맞지 않아서라고? 혼란스러웠지만 군산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심리센터를 추천받아서 3년간 상담을 받았다.      


책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에서는 사람마다 다른 강점과 ‘스트레인지 파인더 2.0’이라는 테스트를 소개한다. 책을 구입하면 주어지는 ID를 통해 테스트(177개의 문항을 20초 안에 답하는)를 마친 결과 나는 행동, 발상, 수집, 미래지향, 주도력이 강점으로 나왔다.      


경영을 잘하기 위해서는 포용, 화합,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강점 이어야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분원을 냈을 즈음에는 불안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당시에는 당연히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로 여기고 아침에 학교 앞에서 전단지를 나누어주며 더욱 나를 몰아붙였다. 줄곧 그래 왔듯이 나보다 성과가 중요했다.   

  

그렇게 2년을 버티고 나서는 번아웃이 찾아왔다. “쉽게 짜증이 나고 무기력해지며 우울함을 호소”하는 포털사이트에서 설명하는 번아웃 증상이 그때 내 상황이었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건 내가 이 일을 잘하지는 못해도 잘 맞는다는 사실이었다. 살면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처음이었다. 그런 일을 마흔두 살에야 찾게 되었다는 게 황당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찾게 되어 소중했다. 글 한 편을 완성하고 느끼는 기쁨은 이전에 학원 매출이 올랐을 때 느꼈던 것과 달랐다. 그때는 매출이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막연한 불안을 내포한 기쁨이었다면, 지금은 비교할 수 없지만 자족이 되는 그런 감정이다.  

   

성공이 노력이라는 씨줄과 운이라는 날줄이 만나서 생기는 거라면, 어떤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운이 닿을 날이 있을 거고 성공하게 될지도 모른다.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그 일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었다면 그것대로 괜찮은 삶이다.

     

평생 집이 없는 사람처럼 살다가 겨우 내 집을 찾은 기분을 나는 안다. 떠돌이가 이 세상에 작은 거처를 만들고 그 안에서만큼은 편안함을 느끼는 일이 어떤 건지 나는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삭막한 사막을 걷는 것처럼 살았다는 것도.


요즘 나는 과외를 열심히 하고 있다. 글을 계속 쓰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생활을 안정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과외나 학원에서 일하는 거나 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마음가짐은 달라졌다. 내 안에 목표를 가지고 하는 일과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일이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에는 꿈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비현실적이고 실속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각자가 모두 꿈을 품고 있지만 아직 찾지 못했거나 꿈을 위해 어떤 일을 견디고 있는 걸로 보인다. 생계의 고단함을 의연하게 감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해 보이는지. 사는 대로 보인다는 말이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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