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이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아이를 맡기고, 가장 늦은 시간에 데리고 하원하던 일상. 부모님이 도와주셨지만, 연세도 지긋하신 부모님의 도움을 늘 받기엔 양심이 찔려서 매일을 부탁하진 못했다. 특히 지난겨울, 해가 빨리 떨어지는 계절에 혼자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갈 때마다 우리나라는 워킹맘들이 그렇게 많다면서 맞벌이부부가 그렇게나 많다면서 왜 우리 애만 늘 혼자 있는 건가 싶어 괜히 서러운 때도 있었다.
그러다 원치도 않는 회식이라도 잡히면, 엄마아빠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고 남편에게 넌 오늘 회식 없지를 물어봐야 하는 지긋지긋한 일상. 그땐 무엇에 그렇게 쫓기고 있었는지 쉬면 안 된다는 강박에 무조건 나가서 일하고 돈 버는 삶에 집착했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는 친구들이 남편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부러웠다. 자기가 맡은 일에 자부심도 있어 보이고, 중요한 일을 하면서 몰입도 하고 뿌듯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왜 나는 어떤 일을 해도 시시하고 재미가 없지. 나에게 왜 일은 일일 뿐인가. 전공을 잘못 찾은 건가. 다른 일을 해야 하나. 무슨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걸까. 늘 고민만 하고 부러워만 하면서 내가 가진 장점은 하나도 보지 못했던 직장인 시절.
어떤 날은 출근을 해서 의자에 앉아 일을 하는데,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아니 쉬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너무 무섭고 쓰러질 것 같은 기분에 병원에 가서 피검사에 CT촬영에 심전도검사까지 받았지만 정상. 몸이 왜 안 좋은지 모르겠지만 일하는 낮에는 심장이 아픈 것 같았고 밤에는 소화는 되지 않고 속이 늘 답답했다. 병원에 가서 위장 내시경 검사를 해도 정상. 늘 정상.
대한민국에서 부모에게 받을 거 없는 사람들은 맞벌이해야 한다고 하니깐, 그래서 다녔다.
대학까지 나와서 회사 안 다니면 뭐 할 건데 하니깐, 일하러 나갔다.
그냥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하니깐, 참았다.
남들 앞에선 줏대 있는 척, 나만의 가치관이 있는 척했지만다 척이었다.
그렇게 해야 누구도 날 걱정하지 않았으니깐.
누군가에게 걱정거리가 되는 건 너무 싫었다.
그러니 내가 늘 예민한 건 당연했다.
괜히 엄마아빠를 내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라 생각하며 미워하기도 했고, 남편에겐 널 위해서 내가 일 하는 거라 생각하며 대접해 주길 바랐다. 내가 이렇게 널 위해 노력하는데 왜 이리 내 말을 안 듣니 하며 괜히 아이를 원망하기도 했다. 날 사랑해 주는 사람들만 골라서 미워했던 나.
정말 단단히 잘못됐었다.
전업주부라는 단어를 싫어했다.
'82년생 김지영', '고백부부' 등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아이를 낳고 집에서 집안일하는 여자는 늘 누추한 옷을 입고 나오고 힘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에 멋진 오피스룩을 쫙 빼입고 출근하는 여자는 늘 당당하게 나온다. 아- 집에 있으면 남들이 초라하게 보는구나, 출근해야지.
출근하며 커피 한잔씩은 테이크아웃 해가야 돈 때문에 일하는 것처럼 안보이겠지? 진짜 일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여야 그래야 덜 초라해 보일 거야 라는 멍청한 생각을 하며-
미니멀라이프를 하며 점점 비워진 집에,
점점 줄어드는 생활비.
차곡차곡 돈도 쌓이고, 마음의 짐들을 덜어내며 걱정거리도 없어지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난 늘 불안해했다. 애초부터 하고 싶지도 않았던 전공을 살려하기도 싫은 일을, 가기도 싫은 직장을 40 50이 되도록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늘 마음 한편이 답답했고 스트레스가 없어지지 않았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