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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May 31. 2022

020. Tame (v) 길들이다, 다스리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사람으로 길들여 줄게.

“이 불을 제발 가져가 주세요.”     


여느 때와 같은 밤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 두 권을 함께 읽는다. 잠들기 전에 함께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자장가를 부른다. 같은 곡으로 계속 부르지 말라길래 (다른 말로 말하면 성의를 보이라 길래) ‘엄마는 섬 그늘에’, ‘잘 자라, 우리 아기’, 그리고 ‘예수 사랑하심은’을 번갈아 부른다. 이것이 우리의 공식적인 밤 루틴이며 나에게 있어서는 하루 육아의 꽃이 활짝 피어나는 때이다. 하루를 보내며 분명 서운했던 일이 있었을 텐데, 그 마음 풀고 평안히 잠자리에 들기를, 크느라고 몸도 마음도 고생하는 아이들이 무서운 꿈을 꾸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신나는 꿈을 꾸기를,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가뿐하게 일어나서 어린이답게, 힘차게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하는 마음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이 시간. 이 시간에 이렇게 아름다운 꽃만 활짝 피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밤은 내 아이에게도 어느 것 하나 희생하기 싫어하는 내 못난 자아가 활짝 피어나는 아픈 시간이며, 자장가를 부르며 속에서 활활 피어오르는 불을 제발 가져가 달라고 간구하는 시간이다.     

 

발가락이 아프니 밴드를 붙여달라, 목이 마르니 시원한 물을 가져다 달라, 손톱이 기니 손톱을 깎아달라, 등이 간지러우니 긁어달라, 세게 긁어달라, 아니, 살살 긁어달라. 3, 40분이 넘도록 자장가를 부르는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또 시험하는 아이(누구인지 밝히지는 않겠다)를 보며, 한숨을 아무리 쉬어도 쉬이 꺼지지 않는 묵직한 불길이 심장과 가까운 곳에 거세게 일어나는 밤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제발, 아이 앞에서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있도록, 제발, 아이에게 그 표정은 짓지 않을 수 있기를, 제발, 아이에게 쏟아내고 싶은 말을 아예 꺼내지 않기를. 제발, 내 안에 시작된 ‘도대체 어디까지 희생해야 하느냐’의 불을 나는 끄지 못하니 하나님께서 꺼주시기를 필사적으로 기도 한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다 결국 참지 못하고 내뱉은 말 몇 마디로 내 아이의 어린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후회했던 밤들이, 결국 잠이 든 아이의 얼굴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쓰다듬었던 밤들이 벌써부터 많다는 사실에 절망한 밤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게 여느 때와 같은 밤이었다. 한 시간여의 사투 끝에 아이들을 재우고, 지친 마음을 끌고 거실로 나온, 여느 때와 같은 밤이었다. 하지만 여느 때와 달랐던 것은 TV를 켜지 않고 유튜브 음악을 들었다는 것. 가사가 없는 찬양 연주곡을 들려주는 유튜브 채널인데, 때마침 듣게 된 그 찬양은 가사를 다 아는 찬양이었다.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안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게 사랑을 가르치소서.

당신의 마음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주의 성령 내게 채우사 주의 길 가게 하소서. 주님. 당신 마음 내게 주소서.      



아는 찬양이기에 연주에 따라 가사를 붙여 부르다가 ‘내게 사랑을 가르치소서’ 가사를 부를 때 알 수 있었다. 그래, 어쩌면. 그 불이 성령님의 불일 수도 있겠구나. 나의 시간표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그것이 설령 내 배에서 나온 아이로 인함이라 할지라도 한치도 용납하기 싫어하는 나의 자기중심적인 자아를 성령님께서 불로 태우는 시간이었을 수 있겠구나. 마지막 숨결까지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내 안에 담기 위해, 내 안의 견고한 요새를 허물고 태우는 성령님이 일하시는 순간일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나는 내어드릴 것이다.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기 힘든 못나고 냄새나는 모습 그대로 성령님께 내어드릴 것이다. 나의 남은 생 동안 계속될 이 지난한 싸움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2,000여 년 전 십자가 위에서 승리로 얻으신 전쟁이라 믿기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사람으로 길들여 줄게.’ 라고 약속하시는 성령님의 손을 붙잡고 이 밤, 평안히 잠을 청하기로 나는 결정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로마서 8 : 26 –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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