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미안과 결단력에 대하여
“어떤 작품이 좋다”를 이야기하는 것은 주관적인 평가다. 역사와 가치, 세계관이 개개인에게 각기 다른 이유다. 그러나 “어떤 작품이 기술적으로 완벽하다” 라고 평할 수 있는 것은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있다 한다. “기술의 완벽성은 ‘작품을 언제 끝낼까?’ 하는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난생 처음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 양정무, p204). 특히 “이집트 사람들은 손을 뗄 그 순간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한다. “작품이 완벽해지는 순간 정확하게 멈출 줄 알았던 것”(p205).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작품을 완벽하게 끝맺음 할 수 있는 기술적인, 혹은 외적인 능력이 있다는 것은 부럽지 않다. 오히려 내가 부러워하는 영역은 내적인 능력이다. 심미안과 결단력. 작품이 완벽해지는 순간을 정확하게 알아채는 심미안과, 그리고 그 완벽의 순간에 정확하게 멈출 수 있는 결단력.
그런 면에서 이집트 시대 예술가들의 시대적인 심미안과 결단력은 그 기준이 분명하게 존재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림의 목적이 개인의 만족이 아닌 “그림에 묘사된 주인공이 그림을 통해서 영원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신념적 목적이었기 때문(p210).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았기에 그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요구할 수 있었고, 그리고 주문 받은 자는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기에 그에 10을 더한 더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결단력 있게 낼 수 있었던 것.
다만 이제는 더 이상,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집트 시대가 아닌, 하나의 스타일이 모두를 대표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내가 집중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나는 아름다움을 무엇으로 정의하는 사람일까?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있는 안목과 기준이 나에게 있을까? 이 아름다움을 내 일상에서 성취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결단력 있게 쌓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더 나아가, 나의 아름다움의 기준이 다른 이들에게 공감 받을 수 있는 아름다움일까?
이 모든 질문 앞에서 결국 내가 돌아가는 곳은 말씀이다. 결국 개인의 아름다움의 가치는 한 사람의 정체성에서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개역개정])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베소서 2:10[개역개정])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4-16[개역개정])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자로 매일을 살아가기.
마주하는 모든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지으심을 받은 자로 살아가기.
하나님의 빛이 나의 깨어진 삶을 통해서 내 주변에 아름답게 드러나는 삶을 포기하지 않기.
결국 내가 원하는 아름다움은 빛이신 그분이 드러나는 것이다. 곳곳에 금이 가고 깨어진 틈을 통해, 항아리 안을 가득 채운 등불 빛이 결국 항아리 밖으로 나와 항아리 주변의 어두움을 몰아내는 것처럼, 아무리 척박하더라도, 그래서 아무리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더라도, 하나님의 빛이 나의 깨어진 삶을 통해서 내 주변에 아름답게 드러나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 모든 것이 아름다움인 것이다. 그 삶이 아무리 불완전하고, 불안하고, 연약하고, 깨진 삶일 지라도, 그 틈을 통해 드러나는 빛의 근원은 내가 아닌 그분이기에.
그렇기에 다짐한다. 나를 창조한 이의 마음을 헤아리며 살기로. 그리고 그 마음을 헤아리며 사는 삶의 기록을 남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기로. 4,000 여 년 전의 이집트 문명의 기록이 2026년의 나에게도 영감을 주는 것처럼, 그리고 2,000 여 년 전의 한 이스라엘 청년의 삶의 기록이 단지 종이 속 기록이 아닌 살아 숨쉬는 삶으로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것처럼, 나의 작은 삶의 기록을 통해 나를 창조한 분의 아름다움이 내 주변에 빛으로 비춰지기를 바라는 결단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