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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Jun 23. 2024

주인 없는 집을 비워냈다.

1년 동안 할머니의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점점 쇠약해지는 몸을 둘째 딸이 살고 있는 제주로 옮겼으나 빈 집은 할머니의 마음에 걱정으로 자리 잡았다. 통화할 때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집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닌걸요" 하고 내가 말하면 할머니의 말간 웃음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할머니 집을 수시로 드나들다 어느 순간부터 이 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었다. 늦 봄, 화분에 물을 주려고 방문했을 때, 작은 화분 두 개는 이미 말라죽었고, 생명력이 강한 고무나무와 알로에만 푸른 기운을 풍겼다.  



이른 아침, 친정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 집 내놨어. 그 많은 짐들을 어떻게 치우니."

"아직 시간 있으니 정리하면 되지. 언제까지 비워주면 되는데요."

"6월 중순쯤 들어오기로 했어. 큰 가구나 가전제품은 삼촌이 와서 옮겨주기로 했고, 쓸만한 건 찍어서 중고로 내놔야 할 거야. 나눔 할 건 하고, 일이 많겠어."

"아침에 아이 보내고 갈게요. 일 없으면 엄마도 와서 도와줘."



할머니 집 현관문에는 여러 개의 스티커와 광고지 그리고 까만 바퀴벌레 약이 붙어 있었다. 아파트 소독하는 아주머니께서 몇 번을 방문하다 붙인 게 분명해 보였다. '미리 치워둘걸.' 여기저기 붙은 광고지들을 뜯고 있을 때, 옆집 할머니께서 현관문을 열고 나오셨다. 친구처럼 막역했던 사이라 이제 할머니는 못 오신다고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다. 안부를 물으시기에 잘 지내신다고 아직은 제주에 계셔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린 뒤 하던 일을 계속했다. 할머니께서 이 집에 계실 때 - 벨을 누르지 말고 노크해 주세요.-라고 사인펜으로 눌러쓴 내 글씨는 뜯지 못하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막상 안방과 옷방, 거실, 욕실, 주방을 둘러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용도실 창고 문을 열자 입이 떡 벌어졌다. 먼지 쌓인 선풍기 두 대와 의자들, 제습기, 교자상, 발 마사지까지 실로 다양한 물건들이 내 놀란 눈빛을 받아냈다. 할머니 혼자 사셨던 집이라 살림살이들을 얕봤다. 주방 찬장에 오와 열을 맞춘 수십 개의 그릇과 컵은 단정한 할머니의 성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을 사서 정리하지 왜 고생하냐며 핀잔을 줬던 남편 얼굴이 스쳤다. 내게 할머니는 특별하다고, 설사 모든 물건이 쓰레기통을 향해 가더라도 타인의 손을 거쳐 버려지는 건 싫다고 말했던 나. 할머니에게 나는 가장 사랑받았던  큰손녀니까 당연히 내가 해야 될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청소 첫날은 당근에 올릴 물건의 사진을 찍었다. tv, 밥통, 세탁기, 소파, 협탁, 식탁, 화장대, 거울, 다리미판 등 절반 이상 나눔으로 올렸더니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대부분 감사하게 가져갔으나 툴툴거리며 들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며칠에 걸쳐 큰 물건들이 빠지자 본격적인 정리와 버리기에 돌입할 수 있었다. 친정 엄마께서도 가게 일이 없으실 때 오셔서 틈틈이 정리를 도왔다.



한꺼번에 모두 처리할 수 없어 그날그날 정리할 곳을 정했다. 오늘은 안 방, 내일은 냉장고, 다음 날은 창고 이런 식이었다. 제주로 부쳐야 할 물건은 따로 빼 커다란 박스에 넣고 필요 없는 것들은 분리수거장으로 보내는 일.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안방 서랍장에서 깔끔하게 개킨 수건들 틈 오래된 사진들이 발견했다. 일곱 명의 자녀와 손주들이 따닥따닥 붙어 함께 찍은 가족 가진, 첫 증손자의 백일 사진, 멀리 떠난 막내딸 사진, 지금은 뇌경색으로 몸이 불편한 친정 아빠의 건강했던 모습도 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기다란 책갈피도 있었다. 짧은 명언이 적힌 종이 한 귀퉁이에 내가 처음 보는 친정 엄마의 20대 얼굴이 보였다. 



내가 이곳을 정리하지 않았더라면 결국 누군가에 의해 버려졌을 테지만, 나는 사진 앞에서 안방 화장대에 앉아 사진을 꺼내보시던 할머니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렸다. 두 번째 서랍에는 내가 할머니께 드렸던 뜯지 않은 새 마스크와 세탁하여 반듯하게 다림질된 헌 마스크들이 나란히 겹쳐 있었다. 코로나는 전염성이 강하니 나가실 땐 꼭 새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할머니께서는 그마저 아까웠던 걸까. 



보름이 넘는 기간 동안 할머니의 짐들을 치우면서 몇 번이고 나는 무너지고 다시 일어났다. 할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물건들이 나올 때마다 울컥 가슴이 매였다. 주인이 떠난 자리에 할머니의 사랑이 느껴져서 사진을 포함해 두  손 가득 집으로 들고 왔다. 정리 마지막 날 삼촌과 남동생 그리고 남편이 침대를 비롯한 농과 무거운 잡동사니를 한꺼번에 버렸다. 5년 전, 할머니의 어지럼증이 염려되어 길게 안전바를 설치해 준 막내 이모의 사랑이 텅 빈 벽에 동그란 흔적으로 남았다.  



밥알이 동동 떠야 진짜라며 페트병 가득 담아주셨던 할머니표 식혜, 무더운 여름 썰어주신 시원한 수박과 참외, 10원짜리 하나에 발끈하며 쳤던 민화투, 증손자에게 연한 부위 고기만 골라 구워주셨던 저녁 식사. 그 모든 시간과 공간이 비워진 집. 

수고한 내 몸은 가벼웠지만 과거의 기억들은 더욱 선명해졌다. 

주인 없는 집을 치우며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만은 비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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