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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염이 알려준 사실

무엇을 먹지 못 할 때 알게된 것들

by 안필수연구소

열이 39도까지 오른채로 하루종일 떨어지지 않는다. 오한이 손을 덜덜 떨게 만들어서 물컵조차 들기 힘들다. 무엇을 잘 못 먹었을까? 혼자 먹은 것도 없는데, 어쩌다가 걸렸을까? 하지만, 이런 생각자체는 부질없다. 이미 걸린 장염을 어찌하란 말인가.


사실은 처음에 고열과 오한으로 장염 보다는 독감인줄 알고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는 인후관련된 증상이 없다고 이것은 장염이 맞다고 한다. 화장실을 20번 넘게 갔으니, 일리가 있다. 그래서 수액을 맞고 약을 처방받고 한동안 금식을 하고 아니면 최소한의 죽만 먹는 생활을 하게된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가 평소에 먹고 있는 수많은 다양한 음식들은 과거의 임금님이나 누릴 수 있는 향연이였구나. 마트에 가면 시원한 샤인머스캣부터, 달콤한 귤, 바나나 다양한 과일들이 지천이고, 사무실 주변 음식점만 봐도 순대국 중국집 돈까스와 같은 진미들이 가득하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편의점만 가봐도 천하장사 소세지, 빼빼로, 다양한 형형색색의 음료수들, 배달앱을 보니 햄버거 피자 치킨까지,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음식들인가?


어떤 목적을 위해 참는 것이 아니라, 아파서 못 먹는 상황이되니 다르게 느껴온다. 상황이라는 것이 상상으로 설정이 불가능한 것이라, 실제 그 상황이 되었을 때 뇌는 본능적으로 안다. '이것은 실제이다' '정말로 못 먹는다' 실제 상황에 처했을 때 바라보는 음식들은 그야말로 대단한 것들이다.


그런 화련한 그림의 떡들을 바라보며, 5일 넘게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 했다.


그리고 또 다른 깨달음, 확실히 약해져있는 장이라 몸이 쉽게 받는 것과 아닌 것들이 더 쉽게 구분이 된다. 적은 양이래도 빼빼로와 같은 가공식품은 불편함이 바로 오고, 조금 양이 많더라도 요리를 한 가공식품이 아닌 것들은 조금 더 편하다. 이런게 정말 안좋긴 안좋은 모양이다.


그리고, 먹은게 별로 없다보니 잠도 많이 자고 늦게 일어나는데, 생각보다 잠을 많이 자니 머리가 평소보다 잘 돌아감을 느낀다. 염증 반응으로 몸이 바이러스와 싸우면서 내보내는 투쟁적인 아드레날린의 효과일 수도 있고, 전체적으로 양도 조금 먹고 그중 나쁜 것들을 많이 안먹은 영양 섭취의 변화가 가져온 결과일 수 있지만, 머리가 잘 돌아간다.


이제는 상승은 없고 계속 노화만 진행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상태가 참 안좋은 상태였구나를 깨닫고, 개선이 가능한 영역이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된다.


아마 망각의 매커니즘이 동작하여, 다음주면 금방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냥 먹고 늦게 자고 그럴 확률이 많지만, 혹시라도 이 글을 보면 그 때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장염이 남겨주신 선물을 기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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