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돈 쓰며 고생하고 와서는 집에 오자마자 home sweet home 이라니.
동서양 막론하고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결론으로 대동단결이다.
그럼에도 굳이 기를 쓰고 짐을 챙겨 어렵게 집을 나섰다.
낯선 곳, 낯선 이들 사이에 아이들을 옮겨놓으면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 아이들은 키운다 믿는다.
어제도 그러했다.
큰맘 먹고 아이들과 싱가포르 여행을 시작하는 날.
저녁 7시 비행기를 타고 6시간 30분 비행을 하니 우리 시간 기준 새벽 1시 30분에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도착했다.
슈퍼강철체력을 소유한 큰아이는 이대로 유럽 대륙까지도 가도 되겠는데 둘째는 상황이 달랐다.
이제 초등 3학년이 될 아이는 6년 전 세부행, 5년 전 제주행 비행 기억이 없었다.
기억에 없으니 느낌이 없어서 그녀는 이번 여행을 자신의 첫 비행으로 지정하고 한껏 들떠 있었다.
설렘에 잠을 설치고 비행 중에도 쉴 수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아끼는 인형 삐약이도 공항 구경하라고 가방밖으로 빼꼼
출발 5시간이 지나고 우리 시간 기준 자정이 지나가니 잘 시간을 한참 지났고 비행 피로감이 더해져 아이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잠이라도 들면 좋겠는데 그마저도 통증으로 쉽지 않은 상황.
멀미처럼 배가 아프고 속이 안 좋아서 안절부절을 못하니 비행기에서 창문을 열 수도 없고 하릴없음에 애가 탔다.
애미는 속이 타는데 막상 아이는 보채지 않고 묵묵히 참아낸다.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비행기에서 내리면 괜찮을 거라고 오히려 엄마를 위로했다.
기특해라.
드디어 착륙.
고통을 참은 아이가 안쓰럽고 졸음까지 겹쳐 걷기 힘든 아이에게 빨리 바깥공기를 쐬여주고 싶었다.
30킬로 육박하는 아이를 안고 내 몫의 백팩을 메고 앞장서 탈출 행렬에 가담했다.
그런데 뭐지.
메고 있는 백팩의 무게감이 없다.
엄마가 힘들까 봐 최선을 다해 바짝 안긴 아이 덕에 앞쪽이 가벼워진 탓인가.
인과 관계가 안 맞는다는 걸 인지하고 뒤를 돌아보니 큰아이가 백팩 손잡이를 들어 올리고 있는 게 아닌가.
씨익~ 멋쩍게 웃어주는 아이.
뭉클 모먼트.
숙소까지 이동하는 동안에도 큰아이는 자기 몫을 찾아 가족을 챙겼다.
수화물 위치를 찾고 빠진 것은 없는지 챙겨주니 어찌나 든든하던지.
오빠가 백팩 손잡이를 들어주는 것을 보았는지 오빠가 없을 때는 둘째도 가방 손잡이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신기해라.
어차피 내게 주어진 무게는 같을진대 분명 가볍게 느껴진다.
아이들의 사랑으로 내 마음의 힘이 커졌기 때문일 거다.
조금 기운을 차린 아이가 아빠에게 안기고 혹사당한 허리를 펼쳤다.
부드드득.
으아악~ 비명이 나오다가 이내 들어간다.
조그만 주먹이 망치질을 해준 덕.
엄마가 고생하는 것을 지켜본 큰아이의 안마 서비스다.
고마워 아들.
덕분에 허리가 펴진다.
육아는 대단한 걸 해내는 것이 아니다.
당연한 것을 해내는 것이다.
내게 당연한 육아 원칙은 성장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대견하다, 자랑스럽다 칭찬하며 키우는 것이다.
새로운 순간을 경험하며 아이는 자란다.
그래서 오늘도 길을 나선다.
걷는 만큼 자라날 아이들과 함께.
아침부터 카페인을 섭취하며 충분한 칭찬 에너지도 챙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