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I May Be Wrong)》입니다. 저자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Björn Natthiko Lindeblad는 스웨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 승려이자 강연자, 그리고 작가입니다. 그는 아주 독특한 삶의 궤적을 그렸습니다.
잠시, 그의 삶을 거꾸로 되짚어 봅니다. 그는 2022년 1월 17일, 60세의 나이로 스웨덴 할란드에서 존엄사를 맞이했습니다.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에서, 가족들이 지켜주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비욘, 모든 징후가 ALS를 가리키네요.”_244p 생의 마지막 5년 동안 그는 ALS(근위축성측색경화증), 즉 루게릭병을 앓아 왔습니다. ALS는 온몸의 근육이 약해지며 끝끝내 숨 쉴 기운마저 앗아가는 난치질환입니다.
그가 ALS를 진단 받기 두 달 전에도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여든네 살 아버지의 시한부 고백입니다. 그가 평생 잘 보이고 싶어 했던, 그의 뒤를 든든하게 지켜줬던 아버지였습니다. “비욘, 너에게 해줄 말이 있단다. (…) 내가 COPD, 그러니까 만성폐색성폐질환을 앓고 있단다. 시간이 많지 않아. 난 얼마 못 살 거란다.”_281p 승려답게, 비욘은 대답을 신중히 골랐습니다. “그동안 멋지게 사셨죠.” 비욘의 말에 아버지는 무릎을 치며 기뻐했습니다. “그래, 너는 알아줄 줄 알았다!” 한 달 뒤, 그의 아버지는 의사의 조력을 받아 생을 존엄하게 마무리했습니다.
비욘은 태국 등지에서 17년 동안 수행한 숲속 승려(forest monk)였습니다. 예외 없이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났고, 하루 한 끼 탁발로 주어진 음식만을 먹고 살았습니다. 태국의 숲속 사원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다국적 기업 AGA AB의 촉망받는 재무 차장이었습니다. 스톡홀름경제대학을 졸업했으며, 스물여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최연소 CFO(재무담당최고책임자)로 지명받기도 했습니다. 놀라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음에도 그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비욘의 삶을 잠시 되돌아봤습니다. 그가 수행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는지 궁금하신가요? 그의 자전적인 에세이에 담긴 에피소드가 듣고 싶지 않으신가요? 블룸즈버리 출판사에서 출간된 원저 《I May Be Wrong》의 책 소개는 이렇듯 근사합니다. “이 책이 아닌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종교에 관한 내용이 아닙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새로운 신념을 받아들이게 하지 않습니다. (…) 이것은 자신의 생각, 그리고 감정과 관계를 맺는 방법에 관한 책입니다.”*
읽고 보니, 과연 틀린 소개가 아니었습니다. 읽기 전에 궁금했던 것은 비욘의 삶과 깨달음이었는데, 읽고 나니 남아 있는 것은 나 자신이었습니다. 우리가 평생을 들여 관계를 맺고, 이해하려고 하며, 가까워지고자 주변을 얼쩡거리게 되는 ‘나’ 말입니다. 나를 만나는 시간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2. 비욘, 불행한 성공한 사람
젊은 비욘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좋은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장래희망이나 꿈은 없었습니다. 경제학을 공부하고 대기업에서 일했던 아버지를 따라 스톡홀름경제대학에 입학합니다. 비욘은 아버지가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겨주기를 바랐습니다. 스물셋, 스웨덴 노동 시장이 호황을 누리던 1985년에 학위를 받고 다국적 기업으로 입사합니다.
AGA AB는 당시 스웨덴 최대의 가스 업체였습니다. 비욘은 AGA에서 일한 3년 동안 “여섯 개 나라를 돌면서 치열하게 일했습니다.”_23p 스페인 지사에서 재무 차장으로 근무할 때는 차량과 전담 비서도 지원됐습니다. 그의 능력은 높이 인정받았습니다. 사보에 특집 기사가 실렸을 정도였죠.
그러나 비욘은 자신까지 속일 기세로 철저히 연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는 재무 관리에 아무런 흥미도 없었습니다. 업무의 목적인 ‘주주의 이익 극대화’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죠. 마음이 그러함에도 머릿속은 항상 일 생각으로 바빴습니다. 그는 성공을 위해서, 주변으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다가올 업무에 대한 불안으로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게 어떤 기분인지 다들 알 겁니다. 그런 정신 상태에서는 모든 생각이 시커먼 필터를 통과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을 떠올리든 불안과 걱정, 허탈감과 무력감으로 이어집니다.”_25p
인내심을 발휘해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더 이상 해낼 수 없는 날, 아니 “해내고 싶지 않은 날”_23p이 와버렸습니다. 비욘은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숨쉬기와 명상을 시도했습니다.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세 번이나 읽었습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명상에 매달렸습니다. 마침내 흙탕물 같은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어떤 것이 결론의 형태로 불쑥 다가옵니다. “앞으로 나아갈 때가 됐어.”_29p 그것은 여태 듣지 못했던 마음의 소리였습니다. 며칠 뒤, 비욘은 최연소 임원 제의를 마다하고 사직서를 제출합니다. 그가 경험한바 “성공과 행복은 서로 다른 것”_23p이었습니다.
비욘은 고향 예테보리로 돌아와 문학을 공부합니다. 식당에서 접시 닦는 일도 해봅니다. 인도로 건너가 UN의 세계식량계획 재무 관리자로 일하며 1년 동안 머뭅니다. 히말라야를 누비며 좋아하던 산행도 실컷 즐깁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욘은 식당에서 헤일리라는 이름의 의대생을 만났습니다. “매우 아름답고도 도전적인 분위기”_44p를 품은 여성과 사랑에 빠진 겁니다.
꿈 같은 로맨스를 2주 정도 누렸으나, 비욘은 이별에 대한 두려움에 미리 빠져들고 맙니다. 걱정이 너무 심했던 나머지 사랑에 쏟을 에너지마저 모두 빼앗겼습니다. 또한 두려움이 현실이 되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는 헤일리와 함께 여행하던 태국의 한 해변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비참한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16년 동안 교육이라는 교육은 다 받았는데, 삶이 고통 속에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배운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편하게 살아오다가 상심한 젊은이가 어떻게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갔는가. 이 대목을 쓰고 보니, 꽤나 상투적이고 진부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랬지요. 저는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자기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모르는, 번민으로 가득한 어린 중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 사소한 일에도 당사자는 죽을 듯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도 인생의 진실이지요.”_47p
3. 나티코, 지혜가 자라는 사람
불교에서는 마음챙김mindfulness라는 용어를 씁니다. 지금, 여기에 온전히 깨어서 존재한다는 뜻인데요. 자꾸만 과거로 이끌리고, 미래로 뻗어나가는 마음을 현재로 가져오는 연습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비욘은 마음챙김보다는 알아차림awareness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알아차림이란 의식적 현존 상태, 즉 “지금을 온전히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_15p입니다.
‘알아차림’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보다 한결 편안하게 와닿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멀리 달아나려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지금 내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감사한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뿐입니다. 현재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우리 마음이 만든 허상이라고들 합니다. 문제는 현재를 알아차리는 것의 빈도입니다.
비욘은 여덟 살 때 처음 ‘알아차림’을 체험했습니다. 할머니 댁에서 맞이한 어느 아침의 일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날 비욘은 부엌에 우뚝 선 채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에 휩싸였습니다. 내면에 끓고 있던 소음이 고요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창턱에 놓인 크롬 토스터, 창밖에 흔들리는 자작나무 이파리, 연푸른 하늘에서 미소 짓는 구름. “어디를 봐도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_15p 시간이 멈춘 듯했습니다.
그처럼 강렬한 알아차림은 승려 비욘에게도 찾아왔습니다. 그가 숲속 승려로서 수련의 한계에 부딪힌 순간이었습니다. 수행 4년 차, 서양인 승려가 한 명도 없는 사원에 초대받아 생활할 때의 일입니다.
“이상하게도 그해 내내 가슴속에서 뭔지 모를 슬픔이 맺히더니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요. 그 슬픔을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이려 애썼습니다. 말을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썩 물러가라고 호통도 쳐보고 외면하고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노력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가슴속에 단단히 자리 잡고서 제 삶의 즐거움을 앗아갔습니다.”_143~144p
우리가 겪는 우울의 모습도 이와 비슷한데요. 누군가는 ‘네 방부터 치워라’, ‘내면의 힘을 길러라’ ‘자신을 사랑해라’ 같은 조언을 주지만 우울은 벗어날 힘마저 빼앗아 가는 늪지대입니다. 비욘은 가족, 친구, 일, 재산 등 모든 소유와 관계를 뒤로하고 낯선 땅에서 4년째 수행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더 밀고 나아갈 힘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던 거죠.
비욘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도와달라고 불상에 대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절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슬픔이 여울져 눈가에 고였습니다. “목구멍에서 신음이 터져 나오더니 격렬한 통곡으로 바뀌었습니다.”_144p 눈물과 절규 속에서 멈추지 않고 절을 올렸습니다.
이윽고 번뇌가 씻기듯 마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이 말랐을 때, 비욘은 달라진 눈으로 주변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오래전 칼스크로나의 할머니 댁에서 이른 아침에 경험했던 빛이, 천지 만물을 감싸고 도는 빛이 어렴풋이 보였”_145p습니다. 빛을 알아차리자, 마음이 다시 평온해졌던 것입니다.
비욘은 “17년 동안 승려로 살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무엇입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 대충 둘러대고 싶지 않아서, 그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봤습니다. 그러자 이런 답변이 저절로 떠올랐다고 합니다. “17년 동안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에 매진한 결과,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 믿지는 않게 되었습니다.”_8p
생각과 감정을 흘려보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여인에게, “당신은 그 슬픔을 이겨내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느끼는 슬픔보다 더 위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위로했다는 틱낫한 스님의 일화가 있죠. 감정은 실체가 아닙니다. 생각 또한 실체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음속에 떠오르는 온갖 생각을 무조건적으로 믿지 않을 때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 자기 내면에 참된 친구이자 소중한 동반자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생각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 하지만 그 생각을 믿을지 말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_60~61p
4.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은 옛날이야기를 통해 비유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곰돌이 푸의 지혜〉라는 장에서는 절벽에 매달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산을 오르다 미끄러진 남자가 절벽에 매달렸습니다. 나뭇가지를 쥔 팔에 힘이 풀리고 있습니다. 오래 버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발아래는 낭떠러지입니다. 남자는 신께 도와달라고 간절하게 외칩니다. 신의 음성이 들립니다. “너를 도와줄 수 있지만, 반드시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남자는 ‘뭐든 말씀만 하시라’고 소리칩니다. 그런데 신이 명하기를, “손을 놓아라.” 남자는 머뭇거리다가 다시 소리칩니다. “거기 다른 분 누구 없나요?!”
우스개 같은 이야기지만, 비욘은 이것이 ‘내가 옳다’라고 생각할 때의 우리 모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논리와 신념, 관점에 너무도 쉽게 갇힙니다. 자기만의 옳음에 매달리느라 필요한 순간에도 손을 놓지 못하는 모습이 되고 맙니다. 물론 당신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에 매달려 있는 한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이어서, 비욘이 두 번째로 모신 주지 스님 아잔 자야사로Ajahn Jayasaro가 들려준 ‘마법의 주문’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150명 가량의 신도가 철야정진을 하던 날에 들은 메시지입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황토색 승복을 단정하게 정돈”_129p한 주지 스님이 입을 엽니다.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뇐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자, 다들 그 주문이 뭔지 궁금하시죠?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_130p
비욘은 20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도 이 주문을 들려주던 스님의 목소리를 분명히 기억했습니다. ‘참을 인 세 번’을 떠올리신 분도 있으실 텐데요.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는 한층 더 적극적인 태도입니다. ‘내가 옳지만 참는다’가 아니라, ‘네가 옳을 수 있음’, 나아가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너무 단순하고 명쾌해서 잊어버리기 쉬운 종류의 진리입니다.
인간의 본능은 자신의 당위를 즉각 따지고 나섭니다. 그런데 내가 옳고 네가 그른 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요.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필요한 것을 타인으로부터 얻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불교적으로는 타인이 있기에 나 또한 존재하는 것이죠. 논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협력이라는 더 중요한 가치입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의 놀라움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비욘이 영국의 어느 사원에 있을 때의 일화입니다. 그는 누군가와 사소한 일로 언쟁을 벌였습니다. 그러자 아잔 수시토Ajahan Sucitto라는 주지 스님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해줬습니다. “옳다는 것이 결코 핵심이 아니라네.”_133p 비욘은 주먹을 꽉 말아쥐고, 세상이 마음 같지 않음과 일일이 다투려고 하는 우리에게 담담히 이야기해줍니다.
“‘세상이 이렇게 했어야 했다’는 생각은 늘 저를 작고 어리석고 외롭게 만듭니다. (…) 저는 여러분이 손을 조금 덜 세게 쥐고 더 활짝 편 상태로 살 수 있길 바랍니다. 조금 덜 통제하고 더 신뢰하길 바랍니다. 뭐든 다 알아야 한다는 압박을 조금 덜 느끼고,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길 바랍니다.”_167p
어쩌면 우리가 사랑이나 열정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들도 일부는 집착에 가까울지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매달려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웃고, 놓아버리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이런 의문이 치고 올라옵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한 것 같아. 때로는 내 의견이 더 옳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할 때도 있잖아. 나는 직업적으로 당신이 틀릴 수 있다는 말도 자주 해야 돼. 이런 마음 수행이 대체 왜 필요한 거야? 그런 것 없이도 여태 잘 살아왔는걸?
비욘이 이야기하는 것은 인생의 영적인 차원입니다. 당장에 피부로 와닿지 않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실제로 비욘 또한 냉엄한 현실 앞에 17년간 쌓아온 모든 수행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이런 솔직한 경험담을 비욘은 〈전직 승려의 수치〉라는 장에 남겼습니다.
공동체를 떠나는 전직 승려들은 하나같이 극심한 고통을 호소합니다. 2008년 스웨덴으로 돌아온 비욘에게도 괴로움의 파도가 덮쳤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보내준 사랑에도 불구하고 비욘은 임상적인 우울증에 걸리고 맙니다. 사회복지사는 1989년 이후로 아무런 경력이 없는 그의 재정 지원 신청을 거절했습니다. 한때 대기업 재무 담당자였지만, 지난 17년 동안 돈을 만져보지도 못했던 그였습니다. 반면 세상은 한층 더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비싼 물가에 어지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는 “살면서 몇 번 겪기 어려운, 두려움과 걱정으로 거의 실신할 것 같은 극도의 불안감”_203p 속에 살았습니다. 짐작건대 비욘은 일시적인 공황발작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실행으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난생처음으로 생을 끝내고 싶다는 충동도 느꼈다고 합니다.
암울한 기분을 옮길까 봐 사람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밤마다 땀에 젖은 침대 시트를 갈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내면을 깊이 이해하고 계발하는 데 인생의 절반을 바쳤는데, “실상은 스웨덴에서 가장 불행하고 실패한 사람으로 전락한 것 같았습니다.”_206p 무려 18개월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의 비욘에게 “가늘디가는 구명줄”을 내려준 것 역시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믿지 않아야 한다는 의지”_206p였습니다. 명상은 쉴 틈이 되어줬고, 호흡할 공간이 되어줬습니다. 오랫동안 연습한 마음과 생각을 내려놓는 능력이 조금씩 빛을 발휘했습니다.
비욘은 자꾸만 지금, 여기에서 멀어지려는 생각을 호흡을 통해 돌려세웠습니다. 어두운 생각이 한 호흡 만에 다시 돌아오면, 더 끈질긴 노력으로 두 번의 호흡을 비워냈습니다. “숨통이 트이자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습니다.”_207p 비욘이 아끼는 문장 하나를 다시 꺼내 봅니다.
“우리는 고요함 속에서 배운다.
그래야 폭풍우가 닥쳤을 때도 기억한다.”_199p
아마도 이것이 명상과 심호흡, 마음 수행이 필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고요 속에서 성장한 마음은 감당하기 벅찬 파도 앞에 설 때 우리에게 구명줄을 내려줍니다. 어둠을 헤치고 나온 이후 비욘은 강연과 행사, 라디오와 TV 등을 통해 일반 대중을 만나며 지혜를 나누는 강연자로서의 삶을 꾸려 나갑니다. 비욘과 관객 모두에게 이로운 이로운 인생 2막이 열렸습니다.
5. 마치며: 현재에 대응하는 것
서두에 이야기했듯 비욘은 2018년에 ALS 진단을 받았습니다. 루게릭병은 근육 위축과 사지 마비 등이 찾아오는, 환자의 50%가 발병 3~4년 이내에 사망하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비욘은 “ALS를 앓는다는 것은 꼭 집 밖으로 절대 내쫓을 수 없는 도둑을 데리고 사는 것”_258p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신체의 정상적인 활동 능력을 눈앞에서 하나하나 앗아가는데도 대처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다행히 비욘에게는 엘리사베트라는 선물과도 같은 아내가 있었습니다. 스웨덴으로 돌아온 이후, 친구의 친구였던 그녀와 페이스북으로 연락이 닿은 덕분이었습니다. 비욘이 ALS를 진단받은 이후 부부는 꼬박 이틀을 번갈아 가며 서로의 품에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사흘째 되던 날 아침, 비욘은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으로 일어났습니다. 다행히 엘리사베트도 이전에 갖고 있던 벨벳 같은 미소와 반짝이는 눈빛을 되찾았습니다. 비욘은 그들의 결혼반지에 새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격언을 떠올렸습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비욘은 루게릭병을 딛고 강연 활동에 매진하는 등 마지막까지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한 “네가 더 버틸 수 없을 땐 네가 원하는 대로 할 거라고 엄숙히 맹세할게”_264p라고 했던, 자기 몸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신체가 한계에 다다르자 존엄사를 결정한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지나가는’ 것은 슬픔만이 아닙니다. 기쁨도, 그 어떤 순간도, 생명과 인연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인연에 마지막이 있기에 순간은 더없이 소중해집니다.
삶은 우리에게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사랑하는 이들의 곁에 머물 수 있는 것은 절실한 행복입니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모든 사람과 반드시 이별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확실하며 그 외의 나머지는 다 추측이고 가능성입니다.”_288p ‘우리는 순간의 존재다’라는 진실을 껴안을 때 우리의 존재 양식은 극적으로 바뀝니다.
“그 진실이 우리 존재의 일부가 되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삶 자체에 다가갈 유일한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다정하게, 다정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_288p
사랑이란 대단한 실천이 아닙니다.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건네는 것이죠.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을 잊지 않고 전하는 노력입니다. 후회스러운 일을 바로잡고 자기 자신을 마음 깊이 용서하는 용기입니다. 내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는 타인을 다정하게 대해주는 미소입니다.
마지막으로, 영국 사원의 비구니 스님 아잔 아난다보디Ajahn Anandabodhi의 말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당시 비욘은 사원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외부와 소통하고, 육체노동을 배분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등 처리할 일이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비욘은 “그토록 떠나고 싶어 했던 대기업 관리직 시절로 돌아간 느낌”_184p에 괴로워했습니다.
비욘의 과로와 스트레스를 알아본 아잔 아난디보디는 어느 날 차 마시는 시간에 중요한 사실을 되새겨줍니다.
“나티코, 책무란 결국 현재에 대응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마세요.”_185p
일을 하다 보면 필요 이상의 책임감을 지게 될 때가 있습니다. 상황을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으세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현재에 대응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세계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지금, 여기에 대응하는 겁니다. 우리가 일을 ‘쓸 수 있는 모자 가운데 하나’처럼 대할 때, 자신을 일로부터 지켜낼 수 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박미경 옮김, 다산초당, 2022.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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