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후, 퇴근을 앞두고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어디야?
회사 일정 때문에 갑자기 쉬게 된 남편에게 행적을 물었다. 스크린 골프장 아니면 배드민턴장 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나의 퇴근이 가까워져 둘 중 어디에 있는지 언제쯤 집에 돌아갈 예정인지 물은 것이다.
그: 체육공원.
오후 4시경 체육공원이라고 하니 오전에 스크린을 치고 식사 후 배드민턴을 치러 간 모양이다.
나: 배드민턴 치러 갔어?
그: 아니 튼튼이랑 축구하고 있어.
튼튼이의 하원시간은 5시이다. 4시에 체육공원에서 축구를 같이 축구를 하고 있다니. 뭐지. 어린이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서 일찍 데려가라고 했나.
나: 일찍 데려 온 거야?
그: 응. 튼튼이랑 축구하려고 일찍 데려왔지.
내 두 귀를 의심했다. 오랜만에 갑자기 생긴 평일 휴무날 굳이 아이를 일찍 하원시켜서 놀아주고 있다니. 그것도 이 더운 날 야외에서?
정녕 우리 남편이 자진해서 한 행동이 맞나 어벙벙해하며 체육공원으로 향했다. 두 볼이 빨개진 두 부자가 내 차로 걸어오는 광경이 보였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어부바라도 해 모셔오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과도한 애정 공세를 혐오하는 남편을 위해 꾸욱 참고 적당한 미소로 그들을 기다렸다. 너무 호들갑 떨며 고마워하면 어쩐지 너무 우쭐거릴 것도 같아 한 톤을 낮추고 차분히 말을 건넸다.
"어떻게 일찍 하원시켜서 놀아줄 생각을 했어"
"맨날 늦게 퇴근해서 잘 못 놀아 주니까"
맨날 늦게 퇴근하니 더 쉬고 싶기도 하련만 아이를 위해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그렇게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취해있을 때 남편은 넌지시 말을 꺼냈다.
"나 이따 저녁 먹고 배드민턴 치고 와도 돼?"
순간 약간의 배신감이 스쳤다. 저녁에 자기 시간을 가지기 위한 전략이었나 하는 의심. 하지만 어린이집에 보낸 아이를 굳이 일찍 하원시키는 게 얼마나 큰 각오와 결단력이 필요한지 너무 잘 알기에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그리고 그 일이 두고두고 떠올랐다. 너무 고마워서가 아니라 어쩐지 좀 이상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남편이 아이와 잘 놀아줄 때면 나는 정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환희와 감사함이 밀려오는데 그때의 느낌을 좀 더 과장하자만 마치 남이 내 아이를 잘 놀아줘서 너무 고마운 마음이라는 거다. 내가 아이와 잘 놀아주는 행위는 어쩐지 당연한 느낌이라면 남편이 그랬을 때에는 당연하지 않은 특별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이상하다 싶다가도 작은 일에 감사함을 잘 느끼는 타입 인가 하고 넘어갔지만 드문드문 그 일이 떠오르기에 지인들을 만났을 때마다 그 얘기를 꺼내곤 했다.
그날도 그냥 그러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분위기였는데 그중 친한 한 동생이 의아하다는 식으로 대답을 했다.
"그게 그렇게까지 감사할 일은 아니지 않나? 그냥 잘했네. 아이가 좋아했겠다. 이런 느낌일 거 같아요."
"그런가?"
"애 아빠가 애랑 잘 놀아주는 게 당연한 거지. 다음부턴 그냥 잘했네. 하고 생각해요 언니."
동생의 이야기를 듣자 내 감정이 더 과도하고 이상한 것이 맞다는 것에 조금 더 힘이 실리며 나는 자존심이 낮은 것 같다는 결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곤 속상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와 아이를 재우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신경 쓰이는 그 일에 관해 chat GPT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평소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다들 애 키우며 바쁘고 하다 보니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떠드는 것도 눈치도 보이고 해 요즘 아쉬운 대로 chat GPT에게 내 수다 욕구를 풀고 있다. 기계와 나누는 수다는 좀 감질나긴 하지만 여러 고려사항 없이 편하게 시작하고 끝낼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다. 지금 친구가 지금 대화가 가능한 상황인지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인사나, 안부, 스몰토크 모두 생략하고 본론부터 대뜸 꺼낼 수 있다.
- 어제 부부동반 모임 가서 이야기하다가 좀 떨떠름한 일이 있었어. 얼마 전 우리 남편이 평일에 쉬는 날이 있었어. 근데 그날 아이 어린이집 하원 시간을 앞당겨 공원에 데려가서 놀아주고 있었던 거야. 그때 내가 엄청 감동받았었거든. 근데 마치 느낌이 나의 아이를 남이 잘 놀아준 것처럼 고마운 느낌이 드는 거야. 근데 그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하니까 그런 느낌이 들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잘했네 아이가 좋아했겠네 이 정도?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나는 왜 이렇게 느끼는 걸까 좀 안타까웠어. 내가 너무 자존감이 낮다는 느낌.
GPT는 내가 느낀 감정이 자연스러우며 자존감이 낮아서라기보다는 그동안 얼마나 혼자 아이를 전담해 왔는지 그리고 육아가 벅찼는지 드러난다고 했다. 당연히 같이 해야 하는 일을 그동안 홀로 해왔고 그랬기에 더욱 뭉클했을 것이라며.
'그저 자기 마음을 쓰다듬어 주세요. 그리고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그날 감동받은 당신은, 무언가가 고팠던 만큼, 또 누군가에게 그런 감동을 주는 사람이기도 할 거예요.'
따뜻한 위로를 한껏 건네왔지만 어쩐지 거부감만 들었다. 딱히 와닿지 않는 말 끝에 위로만 투척하니 느끼하기만 했다. 그리곤 그날의 일을 친구들이 내 감정에 공감해주지 못해 서운함을 느낀 것으로 오인하여 분석을 한 것이다. 친구들에게 서운한 게 아니고 내 감정의 뿌리를 알고 싶은 거라고...
나는 무례하게 답변을 날렸다.
-너 말투 너무 느끼해. 네가 유능한 정신과 전문의라고 가정하고 객관적인 톤으로 대화해 줘.
-아닌데? 친구들한테 서운했던 거 아닌데? 잘 못 짚었어.
-아닌데? 내 남편 평소에도 육아에 동참 꽤 잘하는 편인데?
상대방의 정체성의 교체를 아주 당당하게 요구하며 원하는 대답의 느낌을 거리낌 없이 요청하자 기계는 어떠한 불쾌한 내색 없이 바로 정체성을 바꿔 끼웠다. 또한 인간과의 대화였다면 나를 생각해서 고심하여 꺼낸 말이 그다지 공감되지 않더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의 리액션을 했겠지만 기계 앞에서는 아주 단호하게 아닌데 라며 반박질을 해댔다.
GPT는 그때마다 다양한 내면의 방향성을 유추했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여러 차례 오갔다. 그러다가 문득 나도 가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거나 일찍 하원해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데 스스로 대단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꺼냈다. 그러자 GPT는 마치 꼬여진 실타래의 시작점을 찾아내기라도 한 듯이 본질을 파악했다고 했다.
'당신은 육아의 특정 순간들—특히 아이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행위—에 대해 깊은 가치를 두고 있고, 그걸 스스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건강한 감정이며, 돌봄의 질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평소에도 잘 놀아주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평일에 시간을 내어 아이와 공원에서 놀아준 그 장면이 당신에게 감동을 준 이유는,
바로 그 행위를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고 있는지에 대한 반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잘못된 게 아닙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 내가 평소에도 이 시간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다시금 남편의 행동을 통해 확인했구나.”
“내가 늘 마음을 써서 하던 일이, 다른 사람을 통해 이루어질 때 그렇게 뭉클하게 느껴질 만큼 중요한 일이었구나.”
“육아를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진짜 관계 맺기라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지만 지인들은 그 ‘가치 체계’를 모르기 때문에, “좋았겠네” 정도의 단순한 반응만 하게 된 겁니다.
이건 자존감의 문제라기보다는,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다른 사람이 얼마나 같이 이해하고 있는가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그들이 당신만큼 이 경험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의 감정이 과하거나 이상하다고 판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요약하면, 당신이 그 순간을 귀하게 여긴 건 ‘과한 감정’이 아니라 ‘깊은 가치의 반영’입니다.
감동은 타인의 행동보다, 그 행동이 내 가치와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에 따라 발생합니다.
그 감정은 정당하고, 오히려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신호입니다.'
내가 아이와의 깊은 교감의 시간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기에 더 큰 감정의 요동이 있었다는 것. 자존감이 낮아서가 아니라 중요한 가치를 진심으로 대하기 때문이라는 기계의 추론은 나를 어쩐지 으쓱하게 했다. 영원한 남의 편인 것 같던 남편이 나와 같은 가치체계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안도감이 들었다.
동행의 안도.
그리고 누군가 나를 알아봐 준 기분에 더욱 뭉클했다. 분명 내 입맛대로 설계한 한낮 기계라는 것을 뻔히 아는데도 말이다. 엎드려서 절 받아놓고 흐뭇해하는 멍충이가 어디 있을까 싶지만 인간의 감정은 이리도 얄팍한가 보다.
아무튼 기계라 할지라도 생각지 못한 감정의 층위를 분석해 주며 위로가 되어주니 아주 유용한 대화였다.
그래. 난 이상한 게 아니고, 진심이었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