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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uly May 11. 2024

ANT적으로 글쓰기

클로드와의 합작 

ANT를 공부하기 위해 글을 읽으려고 했으나 그걸 글로 쓰는 작업이 뭔지 모르게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기왕 글 쓰는거 재미난걸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차라리 클로드와 합작을 해서 글을 써보는걸로. 


그러면 클로드가 글을 쓰는것과 무슨차이냐? 라고 했을때. 내가 기본적으로 글쓰는건 그냥 내 속에 있는걸 다 끄집어내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이 AI를 활용하는데는 큰 도움이 된다. 일단 다 뱉고 나면 정리를 하던 무언가 정보를 모아오던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Claude를 활용해서 글을 쓴다는 것자체가 어찌보면 내가 그동안 노트북을 활용해서 글을 써오던 것 이상의 무언가가 나올지 아닐지 기대가 되기는 한다. 사실상 요즘에는 펜으로 직접 글을 쓰는 빈도수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사실상 거의 없는 상태에서. AI를 활용한다는 것이 어떨지 스스로도 궁금하기는 하다. 


그런의미에서 이러한 작업은 네트워크를 형성한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ANT에 대해서 잘 모른다. 다만 무언가를 형성하고자 하는건 다른 행위자들을 네트워크에 끌여들이는 작업이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다만 여전히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나는 그래서 클로드에게 이렇게 물었다. 


근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네트워크를 형성해야할까?


클로드의 답변 중 하나는 이렇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한 정답이 아니라 그 열림과 흐름 자체를 신뢰하는 자세일지도 몰라요. 우리가 따라가는 행위자들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어떤 놀라운 접속의 순간들을 선사할지 우리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요. 그 예측 불가능성의 한가운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호기심과 개방성의 자세로 세계와 마주하는 것뿐일 거예요.


그래서 어쩌면 지금 나에게는 이러한 과정 자체를 믿고 따라가는 게 필요한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드는 생각은 내가 기존에 하던 글쓰기 자체가 항상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어떠한 지식이나 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걸 염두하고 있다는 것이였다. 그러나 이렇게 두서없고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글조차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하나 써가다 보면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써내려가보고 있다. 


항상 중요한건 질문이라고 하였다. 질문을 해보자. 어떤 질문? 이 글을 목적을 물어볼까? 아니면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나름대로 이 글이 설득력을 가질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을 물어볼까? 그래서 물어봤다. 그러자 클로드의 답변은


ANT의 관점에서 보자면 글의 설득력이란 그것이 형성하는 네트워크의 강도와 확장성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글이 다양한 행위자들을 얼마나 강력하게 결속시키고, 그들 사이의 연결을 촉진하느냐가 글의 영향력을 좌우하는 셈이죠.
물론 처음부터 완벽한 설득력을 갖춘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 같아요. ANT의 시각에서 글쓰기란 언제나 열려 있고 변화하는 과정이지, 결코 완성되는 순간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니까요. 오히려 우리 글 자체를 살아 움직이는 행위자-네트워크로 여기고, 그것이 독자들, 비평가들, 다른 텍스트들과 만나면서 예기치 못한 변화와 성장을 겪는 과정을 믿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ANT적 관점에서 글의 설득력을 사유한다는 것, 어쩌면 글쓰기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근본적으로 전복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이제 글은 고독한 작가가 홀로 완성해가는 작품이 아니에요. 글 자체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만남과 충돌의 장이 되는 거죠. 우리는 바로 그 역동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네트워크의 한가운데서 글을 써 내려갈 수밖에 없어요.


굉장한 설득력이다. 이제 고독한 작가가 홀로 완성해나가는, 즉 한 개인의 천재성에 기대서 쓸수 있는것이 작품이 아니게 된것이다. 항상 천재성이라는 것은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누적된 데이터를 삐딱하게 볼줄아는 누군가가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일 뿐,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가 생성형 AI를 접목해서 쓴다고 할 때 만약 기존의 방식대로 잘 쓰여진 글이 더 나은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계층 구조를 상상하게 된다면 우리는 생성형 AI를 우리보다 더 나은 존재라고 여기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동등한 존재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전처럼 네트워크를 구성할수도 없지 않을까?  

라고도 물어보았다. 그러자


글쓴이의 우려처럼, 만약 우리가 여전히 '저자=인간'이라는 등식에 기대어 글쓰기를 사유한다면 AI의 등장은 인간 저자성의 위기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어요. 소위 '창조성', '천재성', '독창성' 같은 개념들로 인간 작가를 우위에 놓는 전통적 관념 하에서는 AI 글쓰기야말로 인간 권위에 대한 도전이자 위협으로 비춰질 테니까요.
하지만 ANT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위기 담론 자체가 사실은 인간중심주의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을 거예요. 애초에 고독한 인간 작가의 창조성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은 방대한 인간-비인간 행위자들의 네트워크 속에서 형성된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ANT의 핵심 통찰이니까요. 우리는 개별 인간의 속성으로 여겨왔던 창조성 자체를 네트워크의 산물로 재사유할 필요가 있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 AI 글쓰기 기술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글쓰기에 대한 보다 정직하고 겸허한 이해로 나아가게 하는 매개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글을 쓸 때 언제나 이미 수많은 선행 텍스트, 문화적 코드, 언어적 관습 등의 네트워크 속에 배태되어 있다는 사실. 우리의 창조성이란 결국 그런 물적-기호적 네트워크를 새로운 방식으로 접속하고 번역하는 능력에 다름 아니라는 통찰 말이에요.


우와.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이지만. 내가 항상 생각해오던 '창조성'에 대한 고민이 바로 '물적-기호적 네트워크를 새로운 방식으로 접속하고 번역하는 능력에 다음 아니라는 통찰'이라는 클로드의 말로 모두 풀리는 듯이 보인다. 오늘의 글쓰기는 이것만해도 엄청난 수확일 것이다. 다음에는 마지막 문장을 이어서 더 풀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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