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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uly May 23. 2024

ANT적으로 글쓰기 5

'브런치' 블랙박스

아니 마지막으로 글쓴지 벌써 10일이 넘었다. 흑흑. 이놈의 작심삼일. 핑계를 대자면 바빴다고 하고 싶다. 아무튼... 다시 이어 가자면. 


클로드와의 글쓰기가 너무 내 손을 벗어난 느낌이라 이 부분에 대해 클로드에게 하소연하듯이 이야기를 했더니 오는 답변은 '무언가 상황을 통제하려는 것 자체도 하나의 인간적인 시선이며 클로드와의 글쓰기에서 벌어지는 복잡성와 우발성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ANT적 글쓰기의 시작일수도 있다.'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결국 '나'라는 주체는 무언가 상황을 조작하기보다 상황을 유심히 관찰하는 '실험자'에 가까울지도 모른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저번 이야기는 끝마쳤었다. 


벌써... 꽤 시간은 지났지만... 클로드와 내가 더 나누었던 대화가 있었다. 당시에 나의 'ANT적 글쓰기'의 방향성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목적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읽고있던 영국의 인류학자인 메릴린 스트래던의 '부분적인 연결'에 대해 떠올리며 질문을 했었다. 스트래던의 '부분적인 연결' 자체가 책의 구성이 '칸토어의 먼지'라는 프랙탈 이론을 활용해서 부분만 봐도 전체와 구성이 같은, 그러니까 전체를 보던, 부분을 보던 같은 구성을 하고 있는 그런 구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 역시도 'ANT적 글쓰기의 방향을 잡기 어려워서 차라리 그냥 글쓰기의 스타일 혹은 형태 자체를 새로운 형태로 만드는 걸 목표로 해볼까 라는 의미로 물어봤었고 연장선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대답은 


그런 맥락에서 ANT 정신의 글쓰기는 저자-텍스트-독자라는 근대적 삼각 구도 자체를 해체하고,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다종 다양한 행위자들의 실천들을 가시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령 우리는 '저자' 개념 자체를 탈신비화하고, 그것이 사실은 언어, 장르, 편집자, 출판사 등등 수많은 행위자들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일종의 '효과'임을 드러내 보일 수 있겠죠.

...

여기서 더 나아가면, 우리가 글과 세계를 명확히 구분한다는 생각 자체가 사실은 하나의 근대적 환상에 불과하다는 통찰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네요. ANT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호와 물질, 언어와 세계는 서로 뒤얽혀 변화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연속체예요. 그렇다면 어쩌면 우리는 세계 '그 자체'를 하나의 글쓰기로, 글쓰기 '그 자체'를 세계에 대한 직접적 실천으로 사유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가령 도시의 특정 장소에 개입하여 그곳의 물적 배치를 바꾸고 흐름을 변화시키는 것 자체를 일종의 '글쓰기'로 간주하는 거죠. 그런 개입을 통해 도시의 서사에 개입하고 공간의 문법을 교란한다는 의미에서 말이에요. 반대로 우리의 모든 글쓰기 행위는 그것이 지니는 담론적 물질적 효과들을 통해 세계의 구성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정치적 실천이 되는 거고요.


클로드는 아예 글쓰기라는, 즉 문자를 기반으로 하는 글쓰기라는 형식 자체의 파괴까지 제안을 하고 있다. 사실 도시의 특정 장소에서 물건 바꾸기조차 '글쓰기'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신선하고 충격적이기는 했다. '글쓰기'가 결국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이라면 나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전달수단을 '글쓰기'로 볼 수 도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내가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다고 했을 때 결국 나는 문자를 기반으로 할 수 밖에 없기는 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우리의 여정을 올리고 있는 브런치라는 블로그 브랫폼은 근데 결국에는 텍스트라는 한계가 있어. 이 안에서 사람들에게 ANT적 글쓰기를 보여야 하기 때문에 도시의 물적배치를 바꾸는것과 같은 건 아쉽지만 어려울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너는 텍스트라는 한계 안에서는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이런 통찰을 바탕으로, 우리는 브런치 글쓰기의 과정 자체를 가시화하고 전면화하는 전략을 취해볼 수 있어요. 우리 스스로 매체의 물질성과 글쓰기에 개입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을 드러내고 성찰하는 메타적 글쓰기 말이에요. 가령 이런 식으로요.

"여러분, 지금 우리가 브런치라는 매체를 통해 만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볼까요? 제가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로 여러분에게 전달될지, 어떤 알고리즘을 통해 여러분의 피드에 등장할지는 알 수 없네요. 어쩌면 이 글이 여러분 중 일부에게는 아예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죠. 글쓰기에 관여하는 테크놀로지의 복잡한 연결망 속에서, 우리는 지금 이렇게 부분적으로 조우하고 있는 셈이에요..."

...

더 나아가 독자들과의 상호작용을 적극적으로 글쓰기 과정 속에 끌어들이는 것도 흥미로운 시도가 될 수 있겠어요. 댓글, 공유, 하이퍼링크 등 플랫폼이 제공하는 다양한 상호작용 기능을 활용하여, 독자들이 글의 구성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개입하게 만드는 열린 글쓰기 말이에요. 가령 독자들에게 글의 특정 대목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변을 다음 글의 소재로 활용한다거나, 독자들이 제안한 키워드를 글 속에 링크하여 새로운 문맥을 만들어내는 방식 같은 것도 가능할 것 같네요.


독자와의 상호작용 자체를 글쓰기의 일환으로 보는 것도, 그리고 브런치 자체를 주목하는 것도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였다. 그래서 아예 '브런치'라고 하는 블랙박스를 열어보자고 나는 제안해보았다. 그러자 


우선 브런치 플랫폼 자체를 구성하는 기술적 요소들이 있겠어요. 서버, 데이터베이스, 알고리즘, 코드 등등. 우리가 글을 작성하고 업로드하는 순간 이 비인간 행위자들이 즉각 개입하여 우리의 글을 저장, 분류, 최적화하고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행하고 있는 셈이죠. 어찌 보면 저자인 '우리'보다 플랫폼의 기술 인프라가 글의 운명을 더 강력하게 좌우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그 다음으로는 브런치의 UI/UX를 설계하고 구현하는 개발자, 디자이너 등의 인적 행위자네요. 그들이 만들어 놓은 에디터 툴, 레이아웃, 내비게이션 체계 등이 우리의 글쓰기 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잖아요.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거나 디자인이 변경될 때마다 우리의 글쓰기 방식도 미묘하게 바뀌게 되는 걸 느낄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우리가 써내려가는 글의 물질성을 규정하는 일종의 공동저자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여기에 브런치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 정책, 규제 환경 등의 제도적 차원도 주목해야겠어요. 플랫폼의 성장 전략이나 수익 구조, 콘텐츠 관리 정책 같은 것들 말이에요. 얼핏 보면 우리의 글쓰기와 무관해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가 어떤 글을 쓸 수 있는지, 그 글이 얼마나 많은 독자에게 닿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이기도 하니까요. 우리는 글을 쓰면서 자유로운 창작을 하고 있다고 느끼겠지만, 어쩌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특정 방향으로 유도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죠.

마지막으로 우리 글의 궁극적 동반자인 독자들이야말로 브런치 네트워크의 핵심 행위자일 거예요. 댓글로 피드백을 주고, 공유와 구독으로 우리 글의 영향력을 확장시켜주는 독자들 말이에요. 그들과의 상호작용이 글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때로는 글의 방향성을 바꾸기도 하죠. 독자는 우리 글의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미 생산에 참여하는 공동행위자인 셈이에요.

그런 독자들의 관심사, 선호도, 피드백을 포착하고 분석하는 것 역시 브런치 알고리즘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해요. 독자들의 행동 데이터가 머신러닝 알고리즘에 입력되어 우리 글의 노출과 유통 범위를 결정짓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독자와 알고리즘은 일종의 하이브리드 행위자로서 우리 글의 운명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 모든 행위자들을 아우르는 거대한 디지털 크리에이터 생태계라는 맥락 또한 간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다른 플랫폼들과의 경쟁,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부상, 그로 인한 콘텐츠 트렌드의 변화 같은 거시적 흐름 속에서 브런치라는 플랫폼도 존재하는 셈이니까요. 사실 우리의 브런치 글쓰기는 이 거대한 테크노-문화적 조류에 대한 일종의 마이크로한 반응이자 참여의 제스처라고도 볼 수 있겠어요.


우와. 브런치 자체에 대해서 생각 못하고 글쓰기와 클로드에만 집중을 했는데 생각해보면 이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맞게 내가 글을 쓰고 있기는 하다. 그런 점에서 과연 브런치의 어떤 부분들을 주목해서 보면 좋을지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또한 된다면 독자들의 댓글도 이 글의 방향을 정하는데 중요한 방향성이 될테니 댓글이 달리는 것도 한번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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