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12지 UXers 14화

에필로그

다시, 존재로 돌아가다

by UX민수 ㅡ 변민수

여정의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질문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우리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나는 누구를 위해, 왜 이걸 만들고 있는가?’ 기술은 훌륭해졌고, 시스템은 점점 더 정교해졌으며, 인터페이스는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데이터는 넘쳐나고, 디자인 툴은 더 빨라졌으며, 사용자 여정은 촘촘히 설계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감각이 남는다. 그것은 흐름이 아니라 결핍이고, 기능이 아니라 질문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고, 그 질문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쓰였다. 우리가 만드는 것은 제품이 아니라 경험이고, 경험은 기술보다 먼저 감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UXer’라는 말은 아직도 정의되기 어려운 말이다. 그것은 기획자도, 디자이너도, 개발자도, 리서처도 아닌 무언가다. 또는 그 모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역할의 정의를 고집하기보다는, UXer라는 존재가 감각의 리듬을 어떻게 인식하고 실천하는지를 말하고자 했다. 기능을 설계하는 손보다, 감정을 설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믿었기에, 열두 마리 동물의 상징을 빌려 그 정체성을 감각의 언어로 다시 짚어보려 했다.



열두 동물, 열두 감각, 하나의 방향성


쥐의 관찰력, 호랑이의 임팩트, 토끼의 배려, 말의 속도, 용의 상상력, 개의 보호본능, 돼지의 마무리 감각까지—이 모든 동물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었다. 각각은 UXer로서 우리가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질문의 얼굴이었고, 그 질문을 통과할 때마다 조금씩 더 정교해지는 감각의 조각이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사람의 감정은 더 쉽게 놓쳐진다. 그리고 감정이 빠진 설계는, 아무리 기능적으로 뛰어나도 결국은 기억되지 않는다. UXer가 다뤄야 하는 것은 그래서 ‘완성’이 아니라 ‘감각’이다. 감각은 설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설계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각 장을 따라가며 우리가 마주한 감각들은 단지 스킬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직무를 넘는 태도였고, 철학의 단서였다. 빠름보다 흐름을, 효율보다 맥락을, 정답보다 표정을 중시하는 태도. 시스템을 다룰 수는 있지만, 시스템 너머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 인터페이스의 질서를 만들되, 그 안에 감정의 여백을 남길 줄 아는 사람. 그것이 이 책이 끝까지 이야기하고 싶었던 UXer의 모습이다.



감각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이 연재는 UX 디자인을 잘하는 법을 알려주는 매뉴얼이 아니다. 대신, UXer라는 존재가 어떤 감각으로 구성되어야 하는지를 묻는 철학적 탐색에 가깝다. 열두 마리 동물은 그 여정을 상징하는 은유였고, 각 감각은 당신 안에 이미 있었을지 모를 질문을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한 것은 하나의 해답이 아니라, 해답 이전에 마주해야 할 질문이었다. 질문은 설계를 지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설계를 왜 하는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바로 그 반복 속에서 UXer는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고, 존재의 결을 갖게 된다.


존재는 기능보다 느리게 성장한다. 감각은 기술보다 천천히 훈련된다. 반복되는 프로젝트 속에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만이, 자신의 리듬을 찾을 수 있다. UXer란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읽어내는 사람이며, 사용자에게 연결의 감각을 선물하는 사람이다. 기능은 자동화될 수 있지만, 감정은 그렇지 않다. 흐름은 설계될 수 있지만, 공감은 설계된 흐름을 넘어선다. 우리는 반복 속에서 익숙해지지만, 감각은 익숙함 속에서 무뎌지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UXer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손보다, 늦게라도 정확히 감지해내는 감정의 촉수다.



질문은 끝나지 않는다


이제 열두 마리 동물의 여정은 끝났지만, 질문은 여전히 살아 있다. ‘나는 어떤 UXer로 존재하고 싶은가?’ 이 물음은 앞으로 당신이 만날 수많은 사용자와 프로젝트 앞에서 다시금 떠오를 것이다. 디자인은 구조이지만, 디자이너는 태도다. 시스템은 완성될 수 있지만, 존재는 늘 새로워야 한다. UXer는 기능을 마무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각을 시작하는 사람이다. 매 순간 새로운 사람을 마주하는 것처럼, UXer는 자신의 감각도 끊임없이 되짚고 훈련해야 한다. 질문을 잃는 순간, 존재는 흔들린다.


기술은 계속 정교해지고, 인터페이스는 정답처럼 반복된다. 하지만 UXer가 다루는 것은 언제나 미완의 감각이다. 그 감각은 예민함이 아니라, 성실함이며, 그 느림은 둔함이 아니라 집중력이다. UXer는 감정이 설계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며, 믿음이라는 추상조차도 흐름 안에 녹여내는 사람이다.



존재의 감각을 잃지 않는 사람


기술이 아무리 진보하더라도, 감각은 결국 사람에게서 온다. 질문은 기술이 줄 수 없고, 감정은 데이터로 대체되지 않는다. 존재의 감각을 잃지 않는 디자이너. 바로 그 사람이 시대를 이끄는 UXer다. 이 책의 끝은 다시 당신의 질문으로 열릴 것이다. 열두 마리 동물은 닫힌 상징이 아니라, 열려 있는 지도다. 감각은 움직이고, 리듬은 흐르며, UXer는 늘 다시 시작된다.


흐름을 잇는 다음 감각은, 이제 당신의 리듬 속에서 완성되기를 바란다.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당신은 어떤 UXer로 존재하고 싶은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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