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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돌아가는 골목여행 - 후암동

머무는 시선이 좋아, 발견하는 시선이 좋아

by 현이


우리 커플은 주말을 맞아 서울 이곳저곳 다니는 걸 좋아한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어딜 갈지 고민이 많이 되는 날이었다. 서촌? 후암동? 이태원?


이번에는 후암동 골목을 여행하기로 했다. 세 곳 모두 가까운데, 최근 뚜벅이 답사를 미리 다녀와 준 남자친구 덕분에 궁금했던 후암동으로 향한다. 먼 동네는 아니지만, 우리에겐 최근에야 <가봐야지 리스트>로 발견된 동네였다.


후암동의 위치 (출처. 나무위키) 용산과 이태원 가기 전에 들러도 좋다. 그러다 이곳이 좋다면 시간을 다 보내게 될 수도.

해방촌 근처에 자리한 후암동. 후암동은 용산-이태원-남영동 사이에 있다. 후암이라는 명칭은 마을에 ‘두텁바위’, 즉 둥글고 두터운 큰 바위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골목마다, Surprise

후암동 골목에 도착했다. 골목에 닿는 길이 오르막이어서인지, 해방촌이 워낙 유명해져서인지, 바로 근처인데도 후암동은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였다. 골목길이라는 이름답게 작은 집 한두 개를 지나면 새로운 집이 또 다른 모양으로 나왔다. 아파트가 밀집된 지역과 달리, 작은 집들이 있는 동네를 걷다 보면 이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걸까, 기분일까 궁금해진다.


소프트볼 하나에 목숨 거는 아이들

어느 동네가 <사람들이 사는 곳>인 걸 느껴보기에 놀이터만큼 좋은 공간이 또 있을까. 남자친구가 지난번 머물렀다던 놀이터에 잠깐 자리를 잡는다. 소프트볼, 배구를 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아니지~이렇게 해야지~“라며 서로 놀려대는 아이들을 보고 우리는 킬킬,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아이들끼리는 나름 심각할 텐데, 그 시기를 지난 우리가 바라보기엔 그저 코미디 영화가 따로 없다. 그때 그 시절 패스 하나에 목숨 걸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아이들을 보면서 내 안에 생생한 기억의 한 편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게 새삼 놀랍기도 하다. 근심이 없던 대담하던 어린 시절의 꼬마아이를 찾는다. 시간이 흘러도, 놀이터가 계속 아이들의 웃음으로 채워지면 좋겠다.


놀이터에서 나오면 보이는, 예쁜 카페가 길목을 여는 골목


놀이터에서 나오면 흡사 교차로 같은 도로가 있다. 그곳에서는 조금만 뻗으면 남산으로, 해방촌으로, 근처 쉼터가 되는 카페로 향하는 골목이 여러 개 있다. 어디로 가든 자유, 탁 트여 있는 교차로에서 골목길을 통과해 보이는 남산과 노란색 돌담벽을 꼭 한번 보고 가자.


노란색 벽은 집주인의 선택일까, 구청 공무원의 선택일까. 뭐든, 탁월하다


교차로에 서서 남산을 지그시 꼭 보고 가자


후암동을 빠져나오며.

들어간 길만큼이나 나오는 길도 여러 골목을 마주한다. 골목이 재미있는 점은, 모퉁이를 돌면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는 점이다. 서울에서는 어떤 곳을 잘 안다고 생각했더라도, 혹은 이름이 익숙하다 할지라도 늘 숨겨진 장소가 있었다.


삶도 골목길 같은 건지 모른다- 고 생각했다. 여러 골목길, 그중에서 이 골목길을 돌면 무엇이 기다릴지 모르니까. 그리고 알려진 곳에서 조금 비껴간 곳일수록 그곳만의 정취가 있듯, 자리를 튼 가게들과 찾아온 사람들이 있듯이. 넓은 세상에서 자기의 하루를, 삶을 만들어내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길 투어, 쉬어가는 길 투명한 햇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작은 골목들, 다시금 어린 시절의 우리로 데려가 주는 놀이터, 모퉁이를 돌아 미지의 골목으로 이끌리듯 걷는 즐거움.


이렇게 후암동 사이사이를 걸으며 골목 경치만 즐겨도, 그러다 발견한 작은 카페에서 더위를 식히기만 해도 솔직히 그날의 데이트가 완성될 것 같다. 이날은 퇴원한 날이라 오래 머물지는 못하고 가볍게 지나가기만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골목여행의 끝에서, 우리가 다시 도착한 곳에서 새로운 나를 만난다는 건 작은 골목여행이 주는 큰 기쁨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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