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쓰면 그만인데, 그러면 또 미칠 것 같은 개미지옥 속 마음
깜박거리는 커서를 바라보며 누구나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 하긴 나도 지금 이 글을 쓰기가 싫다. 그냥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간단한 책 리뷰인데도 쓰기가 싫다. 책이란 거, 그냥 재미있게 읽으면 그만 아냐? 자꾸 누군가 옆에서 부추기는 것만 같다. 그래도 일단 쓰기로 했다. 그게 이 책의 9명 저자들 마음을 100% 대리 체험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 책 9명의 저자들은 필연적으로 글쓰기와 얽혀있는 사람들이다. 글이 생업이고 노래, 연기, 영화 등 병행하고 있는 다른 예술로 뻗어나가는 토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글을 써야 하는데…. 쉽지 않은 걸 떠나 고통스럽다고 절절히 호소하는 마음들을 담았다. 글이 안 써져서 주위 사람들에게 닥치는 대로 조언을 구하고, 손에 착 붙는 기계식 키보드를 찾아 헤매고, 뇌 한구석에 ‘써야 하는데’ 먹구름을 달고 하루 종일 전전긍긍하는 그들의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기꺼이 글쓰기라는 독배를 들어 올린 사람들이다. 제목에 ‘쓰고 싶다’가 ‘쓰고 싶지 않다’보다 먼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이 고생을 왜 사서 하나 싶지만 속으로는 잘 쓰고 싶어, 진짜 엄청 잘 쓰고 싶어, 이거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라고 되뇌는 천상 글쟁이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엿보는 내내 즐거웠고 고통의 과정 속에 태어난 다른 결과물들도 꼭 보고 싶어졌다.
영화 <소공녀>를 만든 전고운 감독은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는 것보다 숨어있는 작은 존재를 구하는 것이 진짜 세상을 구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상업적이지 않다고들 하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결국 아무에게도 상관이 없을 이런 사소한 것을 목격하고 느끼고 생각할 때, 쓰고 싶다. 그런 순간을 만난다면 어떤 압박도 없이 지금처럼 글을 쓰게 된다.”
돈을 받고 글을 쓴 지는 삼십 년, 책을 낸 지는 십삼 년쯤 되었다고 굳이(!) 햇수를 헤아리는 에세이스트 이석원은 전에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그날 써야 할 글거리가 거짓말처럼 술술 떠오르더니 벌써 이년 가까이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글쓰기에 매진하기 위해 필요한 완전무결한 환경을 만드는데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는 거다. 사랑했던 일을 밥벌이로 삼은 죄로 그 일을 영원히 잃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면서도 그는 오늘도 준비한다고 했다. “이 원고를 마친 후 다시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상태로 돌아가더라도, 쓰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던 그 많던 시간들이 꼭 무의미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제 조금은 하게 되었으니까.”
영화 전문지 기자로 일하며 많은 책을 발표하고 있는 이다혜는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처음 10년 정도는 남이 쓰라는 글을 충실하게 썼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판단하기에 내가 쓸 수 있는 글이라면, 쓸 수 있다고 믿고 어떻게든 썼다고 한다. 날고 기는 신문사 선배들 틈바구니에서 막내로 치이면서 그는 닥치는 대로 물어보고, 추천받은 책을 읽고, 낯설거나 용법이 특이한 단어를 시에서 베껴 적은 노트를 만들었다. 이렇게 동동거리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마감을 하다 보니 만으로 2년 차가 되자 타 매체의 원고 청탁을 받았다고 한다. “거의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글을 쓰자. 한번 청탁한 사람들이 계속 글을 맡기는 사람이 되자.”
본인 스스로 ‘연극도 하고 무용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평론도 쓰고 시나리오도 쓰고 여전히 어리둥절한 현대 미술의 세계도 체험하고 있다’는 아티스트 이랑은 글감이 정해지기 전까지 찰나의 단상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틈날 때마다 메모를 한다. 자신에게 카톡이나 문자를 보내고, 손등과 팔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 펜으로 메모하고, 모니터 주변에 포스트잇을 붙이다 못해 노트, 아이폰 메모장, 노션 스케줄러, 음성 메모, 사진, 셀프 동영상까지 모든 툴을 총동원해 계속해서 쓸 것을 찾는다. 이렇게 총동원된 메모를 다시 보며 시, 소설, 노래, 시나리오, 만화 등 어떤 형태로 옮길지 정해 하나의 창작물로 완성한다고 한다.
이런 그의 철저한 메모 습관은 쓸 것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쓰기 시작하면 만나게 된다는 ‘쓰기 지옥’에 빠지지 않기 위함이란다. 몇 문장 쓰고 한글 ‘문자 정보 > 문서통계’에 들어가 아직 한참 모자란 글자 수를 세고 또 센다는 그 ‘쓰기 지옥’ 말이다. 다행히 그는 생각만 정리되면 써지는 건 금방이라고 하니 불행 중 다행. 오히려 타자 속도가 머리를 따라가지 못해서 답답해 미칠 것 같은 기분으로 가능한 한 손을 빨리 움직이려고 애를 쓰며 써 내려간다고 한다. 머릿속 치닫는 글을 가장 효율적으로 받아쓰기 위해 최고 성능의 기계식 키보드들을 사들이다 못해 문자통역 전문 속기사의 전용 키보드까지 부러워했다니 대단하다.
배우 박정민의 팬이라면 ‘쓰고 싶지 않은 서른두 가지 이유’를 볼 것. 리커버 에디션까지 낸 에세이집 <쓸 만한 인간>으로 이미 인정받은 그의 글에 대한 애증이 송두리째 드러나 있다. 출판 계약금을 미리 받은 걸 후회하면서 써지지 않은 글을 붙들고 앉아 해보는 생각 서른두 가지. 의식의 흐름대로 쓴 것 같지만 곰곰이 읽어보면 주도면밀한, 그야말로 그 다운 글이다. 늘 살짝 심드렁한 얼굴이지만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면 세상 소름 돋는 연기를 펼치는 다 계획이 있는 사람의 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조제>의 감독이자 작가인 김종관의 글이었다. 종로 2가 영풍문고에서 스쳐간 오래된 팝송, 누하동의 카페에서 듣는 바리스타의 기묘한 연애담, 작은 껌종이에 단 세 문장으로 된 시나리오를 가지고 다니는 남자…. 그가 이끄는 대로 읽어 내려가다 글 말미에 있는 ‘이 모든 것은 꾸며진 이야기다. 몇 가지의 사실을 제외하고는’이라는 구절에 흠칫하게 된다. 다른 글들과는 달리 허구와 현실이 구분되지 않아 더 색다른 느낌이다. 그는 다섯 살 때의 아픈 기억을 토대로 스무 살 무렵에 첫 번째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나는 가장 쓰고 싶지 않은 순간을 쓰고 싶은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허구 속으로 달려간다. 꾸며진 이야기를 좇고 있지만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결국 소용돌이치는 하수구를 떠올려야 한다. (중략) 그렇게 나의 한쪽 눈은 지나간 날을 보고 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백세희 작가는 데뷔작부터 큰 성공을 거둔 뒤 어쩔 수 없이 소포모어 징크스에 시달리는 마음을 보여준다. 마감을 코앞에 둔 ‘오늘부터는 진짜 써야 해 날’부터 시작해 ‘안쓰면 너 죽어’의 날에 이르기까지 방 안 곳곳을 헤매며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이 생생하다. 첫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무차별 평가를 받게 되고 이 때문에 책을 더, 더 많이 읽었고, 세상에 좋은 책이 너무 많다 보니 기가 죽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너무 재밌어~ 감탄하며 읽던 나는 사라지고 분석하고 평가하기 시작했다. (중략) 마음에 드는 문장 하나만 발견해도 그 작가의 장점이나 특징이 전부 스며들면서 점점 내 손을 묶기 시작했다.” ‘그러려면 이렇게 써야 해’라는 기준치가 끝없이 높아졌고 결국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자신만 남아버린 상태에서도 작가는 꾸역꾸역 마감을 해낸다. 그에게 창작은 무리하기와 마무리하기라고 한다. 잘 쓰지 못할까 봐, 인정받지 못할까 봐 두려움에 쓰기를 미루는 나를 채찍질하며 에너지를 무리하게 소진하고, 거기서 오는 불안을 에너지 삼아 결국 마무리해 내는 것.
소설가 한은형은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20년 정도를 보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다른 일은 생각도 안 해봤지만 ‘아무나 쓰면 안 된다’고 생각헸다고 한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인생에 대한 태도라든가 자세, 그것도 아니라면 시선이 있어야 했는데 내가 그게 있나 의문스러워 그런 사람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쓰지 않고 기다렸단다. 하지만 그런 시간은 오지 않았고 그래서 결국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설을 쓰지 않고 소설가가 되는 법은 없었다. “내가 그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라 그랬다. 결국 나는 소설을 쓰기 위해 인생 최초로 인생 개조를 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새벽 다섯 시의 적막에 잠겨 일하다가 아홉 시 전에 하루치의 일을 털고 일어나 거리를 산책하는 ‘쓰는 사람’이 된 그는 말한다. “쓰는 일은 결국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강건하고 온유하고, 흔들리되 부러지지는 않는 부드러운 마음. 어느 것에도 지지 않는 신축성 있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 나는 오늘을 산다. 그리고 나를 돌보고 달래는 데 성공해서 지금 이렇게 앉아 있다.”
마지막을 장식한 <윤희에게>의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임대형은 쓰고 싶은 무언가를 만나기 위해 오랫동안 고심하고, 가까스로 그것을 만나면 오랫동안 지켜봐야 하며. 또 오랫동안 써야 하고, 다시 오랫동안 퇴고해야 하는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가상의 인물들을 만들고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기 위해 동료와 함께 작업실로 출근했다. 부디 오늘은 우리의 글쓰기 작업에 조금이라도 진전이 있기를 바란다.” 밤을 꼬박 새웠으나 일찍 일어나 숙취에 시달리며 남산에 오른 그는 마음을 다진다. “한때 영화를 사랑했던 내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제 영화는 끝났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며 고소해한다.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 같다. 하지만 나는 아직 영화와 제대로 된 사랑을 시작하지도 못했다.”
이 책을 읽고 잠깐 서점 사이트들의 리뷰를 훑어보았는데 호오가 엇갈렸다. 작가들의 인간적인 모습이 좋았다는 의견들이 많았지만 가끔 섞여 있는 비판들의 골자는 제목 두 개 중 ‘쓰고 싶다’보다 ‘쓰고 싶지 않다’ 이야기가 월등히 많다는 것. 그러나 이해해 주자. 그들은 어쨌거나 쓰고 있다. 쓰는 것 말고는 길이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다혜의 말처럼. “쓰지 않은 글을 쓴 글보다 사랑하기는 쉽다. 쓰지 않은 글은 아직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쓰지 않은 글의 매력이란 숫자에 0을 곱하는 일과 같다. 아무리 큰 숫자를 가져다 대도 셈의 결과는 0 말고는 없다. 뭐든 써야 뭐든 된다.” 쓰기 싫지만 또 쓰고 싶기에 오늘도 괴로워하는 사람들. 그들의 괴로움은 곧 우리의 즐거움이 된다. 쓰는 것이 직업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지. 그런데 왜 그러면서 난 또 이 걸 쓰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