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보여, 잘 지내나봐.”
버벌진트 (Verbal Jint, 본명 : 김진태)의 정규 4집 앨범 (Go Easy)에 수록된 음악 “좋아 보여(Feat. 검정치마)”의 가사 첫 줄이다. 그 곡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지금까지 발매된 버벌진트의 앨범 중 뮤직 차트 1순위로 나온다. 그 자자한 명성을 여실하게 드러내듯이 여자 래퍼 제이스가 “좋아 보여 Part.2 (Feat.오수민)”를 리메이크 형식으로 발매하기도 했다. 두 곡은 같은 상황을 다루지만 성별이라는 차이점을 두고 있다. 원곡 “좋아 보여”는 “남자”의 시선에서, Part.2의 “좋아 보여“는 ”여자“의 시선이다.
“좋아 보여, 잘 지내나봐.” 클라이막스에 이어지는 그 가사는 짧지만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좋아 보인다는 긍정적인 상황을 내뱉음으로써 뒤이어 또 한 번, 같은 의미의 말로 끝맺음 한다. 말하는 이에 따라서 조롱적인 어투나 자학적인 어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곡에서 의미하는 바는 전자보다 후자에 더욱 가깝다. 이미 헤어진 전 애인의 입장에서 내뱉어지는 그 발언과 어투는 거의 한숨과 흡사할 것이다. 가사 말마따나,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강남대로 앞에서 애인을 우연히 마주친 남자의 시점은 꽤 흥미롭다. 게다가 이미 헤어진, 남보다도 못한 사이라면?
더욱 재밌는 것은 이 곡의 뮤직비디오다. 게다가 뮤직비디오의 스토리가 곡의 가사와 함께 딱 맞물린다. 여자는 누군지 모를 남자와 함께 신호등을 건너고, 남자는 신호대기중의 차안 에서 그 여자를 본다. 그리고 그 둘이 눈을 마주친다면? 물론 헤어진 마당에 누구와 뭘 하든 어떤 상황이던 어떤 곳이던 저렇게 마주치게 된다면 기뻐할 이는 누구도 없을 것이다. 곡은 불편하다 못해 당혹스러운 그 상황과 부득불 느껴지는 먹먹함을 건조 하게 잘 표현했다. 저변에 깔려있는 그 묘한 상황, 곡의 멜로디와 리듬은 충분히 진중하고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좋아 보여, 잘 지내나봐.” 반가움보다도 앞선 당황스러움. 안도감을 앞지르는 씁쓸함, 그야말로 예고도 없이 부딪친 상황에 충돌하는 감정들을 가사에 오롯하게 담겨있다. 공감대 형성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상황에 흡수되듯이 느껴지는 ‘리얼함’이다.
두 곡의 가사를 나란히 비교 해보면 적절하게 맞아 떨어지는 라임과 공통적인 감정, 더불어 남자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버벌진트-좋아 보여(Feat. 검정치마)>
강남대로 앞 신호대기중인 차
창문너머 보이는 너, 무심코 인사
건넸지만 아차, 우리는 헤어진 사이
딱 2초간 멍하니 쳐다보다
시선을 돌린다 추스린다 내 놀란 맘
지나가는 사람들 이상하게 쳐다본다 막
근데 있잖아, 너도 날 보고 그 자리에
바위가 된 듯 굳은 채 가만있네
정리하기로 결심했던 내 맘이 왜
휩쓸리고 흔들리고 날 못 살게 하는데
신호 바뀌네 이제 나 출발해야 돼
지나갈게, 잘 가 너. 잘 지내야 돼
좋아 보여, 잘 지내나봐
헤어스타일도 바꿨네 역시 태가 나
예쁜 얼굴이니 뭘 해도 어울리지
정말로 걱정 많이 했어 나 솔직히
아플까봐 힘이 들까봐 나보다
훨씬 많이 슬플까봐
근데 좋아 보여 내가 바보였나봐
<제이스-좋아 보여 Part.2 (Feat. 오수민)>
강남대로 앞 신호대기중인 차
그 속에서 정말 꿈인 듯, 저기 네가 보인다
가던 발걸음을 멈칫, 그 자리에 멈춰
지난날 우리추억들이 몰아쳐
아무 생각 할 수 없어 멍하니 쳐다보다
살짝 미소 지으며 담담하게 쳐다봤지만
너의 차가운 표정과 날 피하는 시선에
얼음처럼 가만히 굳은 채 서있네
널 만나면 해주려고 준비한 수많은 말
네가 나를 봐야 말해주지 어서 잡아, 날
신호 바뀌네, 너 그냥 가면 절대 안 돼
차에서 내려 조용히 안아주면 돼
좋아 보이려 노력했지만
헤어스타일도 바꾸고 별짓 다했지만
이렇게 너를 보니 왜 이리 무너지지
사실 나 기대 많이 했어 나 솔직히
아플까봐 힘이 들까봐
그러면 혹시 네가 나를 찾아올까봐
근데 좋아 보여 내가 바보였나 봐
“좋아 보여.” 제목대로라면 저 앞의 전제는 “생각보다”가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생각보다 좋아 보여”
이 곡에서 ‘헤어스타일’이란 가사가 똑같이 맞물린다. 그런데 두 비교가 사뭇 모순적이다,남자 입장에서
‘넌 헤어스타일도 바뀌었네? 그러네. 좋아 보이네.’
여자 입장에서 ‘좋아 보이려 헤어스타일도 바꾸고 별짓 다 했는데 널 보니까 무너져.’
딴 말을 먼저 하자면, 여자는 헤어스타일을 바꾸기까지의 결심은 아주 크다. 장발에서 일어난 단발의 변화는 더욱 섬세하게 짜인 예민한 조직과도 같다. 여자들이 보통 이별하고 나서 긴 머리를 짧은 단발로 커트하는 것과 같은 이치. 굳이 스타일을 바꾸지 않아도 여자들은 대부분 머리가 길기 때문에 묶거나 헤어 액세서리로 꾸밀 수 있으니깐. 한 번 호기심에 숏 컷을 했다간 머리를 기르기까지 긴 시간이 걸릴뿐더러 펌 이니 염색이니 관리하기까지 이래저래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소에 자주 입는 옷 스타일까지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헤어스타일의 변화는 절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위기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심사숙고한 어떤 것과도 같다.
여자는 제 남자를 버리고 새 남자에 게 떠났지만 결국 오래 사귀지 못했고, 뒤늦게 남자의 소중함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제이스 곡의 가사대로라면 여자는 팽팽하게 당겨지는 염치와 미련 사이에서 스스로 자초해서 망가진 감정들을 회복하려고 안 좋은 감정들을 좋아 보이게 하려고 헤어스타일도 바꿔보며 무진 애를 썼을 것이다.
뮤직비디오에서 가미된 판타지 요소는 몽환적이고 아릿한 감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이 없었다면 옛 여자를 (그것도 새 애인이 바로 그 옆에 버젓이 서 있는 와중에)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보고 매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죽어도 벌어질 수 없는 그 상황이 ‘실패했던 사랑’의 아련함을 드러낸다. 그 아련함은 뭉근하게 타오르는 따뜻한 불꽃처럼 따뜻하면서도 따끔따끔하다. 반가움과 씁쓸함이 공존하는,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나타나는 묘한 감정들, 뮤직비디오에선 그런 판타지 기법을 적용하여 그 이율배반적인 두 감정들을 여과 없이 충돌시킨다.
남자가 여자의 머리칼을 매만진다. 마지막으로 만져보는 손길이 느리고 부드럽다. 남자는 여자의 손을 새 애인과 꼭 맞잡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남자는 여자를 쓸쓸하고 구슬픈 눈빛으로 오래 바라본 다음에 다시 차를 타고 그대로 출발해 버린다. 그 순간, 현실로 돌아온 잔상들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다. 꿈을 꾼 듯 놀라서 어리둥절 하는 여자는 제 손에 붙잡힌 새 애인의 손과 오른손에 쥐여진 장미꽃을 허무하게 내려다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앞에 있던 남자의 차가 없자, 여자는 찻길로 냅다 뛰어든다.
끔찍하게 이어지는 교통사고는 가히 당황스러울 만 하다. 눈 깜짝 새에 벌어져 버린 상황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판타지가 가미된 아련하고도 묘한 잔상과 매치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순식간에 달려오는 차에 그대로 치이는 여자, 머리와 부딪친 보닛에 적나라하게 튀는 붉은 피, 공중에 떠오른 여자의 몸은 거의 충격에 가까운 안타까운 장면이다.
버벌진트의 “좋아 보여”의 마지막 부분에 라디오 DJ가 다음 곡을 소개하는 형식대로 멘트가 진행된다.
“왜 남자들은 꼭 여자, 헤어지고 나면 좋아 보이고 그러죠? 있을 때 잘 해야죠~”
처음에 그 나레이션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좋아 보여”는 상대방의 모습이 별 탈 없이, 괜찮아 보인다는 의미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러한 작은 설정도 중첩적인 의미로 작은 논쟁이라도 벌이라는 노이즈 마케팅인가,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얼굴이 괜찮아 보인다는 의미가 제일 강하지만, DJ의 말마따나 그 찰나, 좋아져 보일 수 있다는 의미도 충분히 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곡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공통점은 서로를 향한 시선과 생각이다. 좋아 보인다는 씁쓸한 확신. 그 속뜻을 풀어보면 좋아보여서 무척 실망스럽고 슬프다는 것이다. 그건 비단 이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남녀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좋아보여서 실망스럽고 씁쓸한 감정들은 할 수 없이, 또는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솔직한 어떤 것이다. 그건 아주 당연한, 이를테면 ‘불가항력적’인 법칙과도 같다. 이러한 점을 살펴보면서 또 다시 드는 감탄으로는 곡의 제목이다. “좋아 보여” 정말 탁월하게 잘 지은 제목이다. 한때 사랑했던 연인의 얼굴이 아주 행복하게 웃는 얼굴, 멀쩡하게 잘 사는 것처럼 좋아 보이면 솔직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기쁨보다도 쓸쓸함과 우울함이 더욱 클 것이다. 일단 이별 하고 나면, 지났던 사랑보다는 애증이 더욱 깊어지는 법이니까. 애증. 애정과 증오. 옛 연인이 무지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씁쓸하기도 하고 맘 아프기도 하고 얄미울 게 분명하다. 근데 또 역으로 생각해서 무지 불행한 얼굴을 하면 기쁜 맘보다는 슬픈 마음이 더 클 것도 같다. 그 묘하게 얽히고설키는 감정들을 섬세하게 드러낸 두 곡과 스토리로 점철된 이야기들이 꽤 흥미로웠다. Part.2까지 발매된 마당에,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여자의 새 애인으로 비치던 또 다른 ‘남자’의 입장에서 Part.3가 만들어지면 어떨까 싶은 궁금증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