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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lerie Lee Jan 06. 2023

학폭 피해자로서 본 "더 글로리"

흑과 백으로 나눌 수 없는 회색의 폭력에 대해

처음에 <더 글로리>의 트레일러, 그리고 유튜브 요약을 보았을 때, 거부감이 강하게 들었다. 조금, 어쩌면 많이 이기적인 생각이겠지만 내가 당한 학교폭력과는 그 모습이나 상황이 너무나 달랐다. 또한 언제나 학폭 피해자는 가난하고, 정서적인 뒷받침도 없이 자라나는 전형적인 김은숙 작가의 신데렐라 유형 여주인공이었고 가해자는 역시나 상대적 금수저들이라는 점이 그랬다.


내가 처음 학교 폭력을 당하게 된 계기가 그 당시 조금 고급져 보이는 롤리팝 사탕을 엄마가 화이트데이 기념으로 아이들에게 나눠주라며 들려 보냈던 데에서 기인했기 때문에, 이후로도 소풍 때 백화점에서 산 신상 바닐라B 후드티 같은 걸 입고 왔다는 데에 기인했다는 점이 나의 경험과는 너무 달랐다. (물론 그것만이 가해자들이 말한 "학폭을 당해야 했던 이유"는 아니다.) "더 글로리"의 극단적으로 악했던 담임은 차라리 모두가 속시원히 욕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내 담임은 우유부단하게 가해자들과 나를 함께 회초리로 때렸던, 어중간하게 선의를 행하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한마디로 나의 학폭 피해는 "더 글로리"의 송혜교가 당한 피해와는 달리 언제나 "아이들이 널 질투해서 그런 거야, 네가 다른 친구들의 마음을 배려했었어야 해. 처세를 잘해서 네 편을 만들었어야지"라는 말로 그 폭력이 폭력이 아닌 자연스러운 따돌림으로 변질되고, 내 상처는 그저 내가 여려서 스스로에게 행한 생체기처럼 되어버렸기에 이 드라마는 나를 더욱 소외시키는 느낌이었다.


물론 실제로 저런 극단적인 모습의 학폭도 현실에 자주 있는 일은 맞다. 하지만 "더 글로리"에서 그려진 까만색의 폭력만큼은 아닌, 애매한 회색 같은 학교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남의 눈에는 비교적 밝은 축의 회색빛 폭력이라도, 당사자에게는 캄캄한 어둠과도 같은 기억이 바로 학교 폭력의 기억인데도 아직도 그런 회색 학폭의 피해자들은 "네가 빌미를 제공했어. 그게 학폭이야? 그 정도가 학폭이야?"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김은숙 작가는 "더 글로리"를 통해 "피해자들에게 당신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말을 각인시켜주고 싶었다"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가 조금 더 양면적이고 섬세하며, 악과 선이 혼동된 두 가지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내 중학교 시절 학폭 가해자의 어머니는 길가에서 포장마차를 하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들고 다니는 학용품, 가끔 엄마가 편찮으실 때 배달시켜 주셨던 전문점의 푸짐한 도시락, 그리고 내가 놀토 때 입고 온 백화점 옷들이 그 아이에게는 상처였을 것이다. 그때는 어렸기 때문에 내가 그런 스타일인지 알지 못했지만 나는 눈치가 없었고 자기 세계에 푹 빠져있어서 다른 친구들이 나와 친해지려는 노력을 하는 것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가해자 아이가 말하길 체육시간에 선생님이 나를 칭찬했고, 자신은 못한다며 남아 연습하라고 한 상황에서 자신이 연습을 안 하고 째려고 하자  "너 남아서 연습하라고 했잖아" (내 딴에는 그 애가 까먹은 줄 알았고, 선의로 리마인드 시켜준 것이었다.)라고 말한것이  너무나 재수 없고 싫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이유로 3:1로 나를 때리고, 나를 따돌리고, 내 하굣길에 나를 따라오고, 먹던 도시락이 올려진 내 책상을 엎어버리는 등의 행동이 정당화된다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정당화하고 싶진 않다. 그렇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나도 대입을 거치면서 어쩔 수 없는 "배경의 차이"로 인한, 당연하지만 불공평한 그런 세상의 이치에 굴복하고 좌절하고, 타인을 질투하고 싫어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해자들과 내가 달랐던 건 적어도 나는 그런 질투와 시기가 내 행동을 지배하도록 두진 않았다는 사실이다.


 "더 글로리"에서 금수저 일진들이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는 학폭 피해에는 많은 이들이 분노할 것이 분명하지만 과연 내 이야기가 드라마나 영화가 된다면 사람들은 송혜교를 응원하는것 처럼 내 편이기만 할까? 아마 아니겠지. 드라마와 영화와 대중, 다수의 공감과 응원을 주인공이 한 몸에 받는 주인공 캐릭터를 두고 써야 복수극을 전개하는 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만약 학폭의 이야기를 다룬다면 그렇게 모두가 쉽게 동정하고 응원할만한 피해자나 누구나 돌을 던지고 미워하고 증오할만한 가해자를 그리진 않을 것이다. 내 경험이 그것과는 너무 다르기 때문에.


이후에도 나는 다른 모습의 학폭들을 경험했다. 성인이 된 지금 가해자들이 어떤 부모님 밑에서 자랐는지, 그 아이들의 마음은 어땠을지 짐작하며 용서를 하기도 하지만 사실 어떤 유형이나 강도의 폭력이든 인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경계심을 심어주고 성인이 되어서도 관계를 맺는 데에 씻을 수 없는 핸디캡을 준다.


회색빛의 폭력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피부의 화상은 없겠지만 내면에 분명 화상이 존재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학폭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김은숙 작가님의 자필 의도는 훌륭하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복수극 콘텐츠는 흑과 백 그 사이에 있는 회색빛의 가해와 피해를 다룰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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