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분산 투자와 집중 투자에 대한 글을 쓰며 늘 그렇듯 정답은 없다는 뉘앙스의 결론 아닌 결론을 내렸지만 실제로는 투자의 스타일에 따라서 높은 확률로 잘못될 수 있는 방식은 존재합니다. 이 글에서는 몇 가지 투자 스타일과 분산 및 집중 투자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벤처 캐피탈리스트식 투자
'수 많은 위대한 기업들을 일찍 매수했다면'이라는 가정은 투자자라면 어렵지 않게 들어봤거나 생각해봤을 것입니다. 상장가에 비해 현재 수십배 혹은 수백배까지 오른 주식들을 보면서 내가 투자하는 기업들이 저렇게 성장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기도 합니다. 당장 2021년만 하더라도 '다음 테슬라'를 꿈꾸며 리비안이나 니콜라같은 주식에 수 많은 투자자들이 몰려들기도 했으며 수 많은 '다음 무언가'가 시장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투자로 성공하는 것의 난이도와 효율성은 뒤로 하더라도 한 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벤처 캐피탈리스트식 투자에는 꼭 분산 투자가 수반돼야한다는 것입니다. 냉정히 말해서 벤처 캐피탈리스트식 투자, 즉 현재는 상당히 작은 규모의 기업이지만 크게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하는 투자는 실패율이 높습니다. 실패의 원인은 단순히 개인의 안목이나 분석 능력의 문제가 아닌, 단순히 큰 성공을 거두는 기업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에 있습니다. 미래에 거대해질 것으로 기대되는 산업에는 그 기대만큼이나 수 많은 기업들이 뛰어들며 그 수 많은 기업들 중에는 성공하는 극소수와 실패하는 대다수가 공존하는 역사가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투자를 통해 그 극소수를 고를 수 있는 투자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렇다면 이렇게 실패할 확률이 높은 투자를 실제 벤처 캐피탈리스트들은 왜 실행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벤처 캐피탈리스트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수십개의 기업에 투자하여 단 하나의 기업만 크게 성공하더라도 목적을 달성합니다. 그 하나의 크게 성공한 기업으로 인한 수익이 수십개의 다른 기업들이 전부 파산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 손해를 모두 메꾸고도 유의미하게 남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십수개의 야후에 투자했더라도 하나의 구글에 투자했다면 성공적인 투자를 한 것입니다. 그들의 투자에 있어서 치명적인 오류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에 투자하는 것이 아닌, 크게 성공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방식의 투자를 하는 전문가들은 분산 투자를 지극히 기본적인 가정으로 두고 투자를 합니다. 실패를 하더라도 자본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많은 기업들에 나누어 투자를 하고,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작은 자본이 들어갔더라도 성공했을 때 수십배 혹은 수백배의 수익을 안겨줄 수 있는 기업을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이 작은 자본이 유의미한 성과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벤처 캐피탈리스트들의 방식을 자신의 투자에 도입하는 개인 투자자들 역시 분산 투자가 동반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다음 테슬라'를 찾기 위해 니콜라에 투자했던 투자자가 만일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집중 투자했다면 그 자본의 대부분은 사라졌을 것입니다. 니콜라는 극단적인 예시라고 반론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다음 무언가'는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으며 오직 극소수의 기업이 시장을 새로 정의하는 혁신가가 될 수 있습니다. 특정 기업이 크게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만의 기대를 시장이 이해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그 기대는 십중팔구 보상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 분야의 가장 뛰어난 전문가들이 분산 투자를 선택하며 그 누구도 집중 투자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벤처 캐피탈리스트식 투자를 지향하는 투자자들에게는 미국 투자자 Brian Feroldi의 투자 방식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는 것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브라이언은 펀드매니저라거나 유명한 투자자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개인투자자인데, 이러한 방식으로 장기간 투자해온 인물입니다. 오히려 거액을 운영하는 펀드매니저가 아닌 개인투자자이기 때문에 그가 선택한 방식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실제로 오래 전부터 벤처 캐피탈리스트식 투자를 기반으로 투자를 해왔고 미래에 크게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수 많은 기업에 투자하여 시장수익을 상회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의 대표적인 투자인 메르카도 리브레의 경우 천 프로 이상의 수익을 안겨줬으며 그는 이 주식을 무려 10년 이상 보유중입니다. 브라이언 역시 이러한 투자 방식에 분산 투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실제로 주식을 매수할 때 전체 포트폴리오 비중의 3프로를 넘기지 않으며 주가가 크게 상승하여 포트폴리오의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면 비중을 줄이며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본인의 투자 스타일의 리스크를 인지하고 꽤나 극단적인 수준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분산 투자를 택한 브라이언은 2022년 하락장에서 포트폴리오 가치의 절반 이상을 잃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집중 투자를 선택했다면 그의 포트폴리오 가치가 절반보다도 더 떨어졌을지, 혹은 덜 떨어졌을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꽤나 자명해 보입니다.
담배꽁초 투자
위에서 다룬 미래의 성장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한 벤처 캐피탈리스트식 투자의 정반대에 있는 담배꽁초 투자라는 투자 스타일이 있습니다. 이 방식의 투자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 혹은 기업의 운영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기업의 주가가 청산가치에 비해 유의미하게 낮을 때 매수하여 청산가치에 도달하면 매도하는 방식의 저평가주 투자입니다. 벤자민 그레이엄이 주로 선택한 투자로 그를 추종하는 많은 가치투자자들이 이 방식으로 투자를 했으며 워렌 버핏 역시 그의 투자 초기에 이 방식으로 투자를 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투자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투자인만큼 이 방식은 분산 투자가 아닌 집중 투자를 해야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투자 방식 역시 분산 투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벤자민 그레이엄 스스로도 분산 투자의 중요성을 그의 저서를 통해 여러번 강조했습니다.
특히 개인투자자들이 이러한 방식을 택할 때는 분산 투자가 더욱 필수적입니다. 청산 가치보다 낮은 주가에 거래되는 주식들은 대부분 그에 따른 이유가 있습니다.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상태에서 현금을 지속적으로 소모하며 보유하고 있는 자산이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미래 예상 가치가 청산 가치보다 낮은 경우도 있으며 재정적인 문제가 심각하여 파산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기업이 파산하더라도 주가가 청산가치보다 낮다면 그 가치가 주주들에게 돌아와야하지만 현실적으로 주주들이 기업의 파산했을 때 돈을 돌려받는 가장 후순위에 있기 때문에 기업이 파산과 함께 여러가지 비용들을 처리하다보면 주주에게 무언가가 남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결국 청산 가치보다 낮은 주가에 거래되는 기업이 실제로 청산가치만큼의 가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기업이 사업을 크게 개선하거나 혹은 사업을 실제로 청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실제로 벤자민 그레이엄은 본인이 투자한 많은 기업에 행동주의를 바탕으로 압박을 넣어 주가가 청산 가치까지 회복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당연하지만 개인투자자들에게 이런 방식은 불가능합니다. 개인투자자들의 이 방식으로 투자할 때 가능한 것은 그저 주식을 매수하고, 어떠한 이유로 청산 가치까지 회복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크게 두 가지 합리적인 질문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과연 이 기업의 청산 가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줄어들어 자신의 매수가 아래로 가게되거나 혹은 파산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지, 둘째,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청산 가치까지 회복하는데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해답이 바로 분산 투자입니다. 첫번째 질문인 가치의 감소 혹은 소멸에 대한 걱정은 분산 투자가 그 리스크를 줄여줍니다. 각 기업에 포트폴리오의 극히 작은 부분만 투자한다면 실제로 가치의 감소 혹은 소멸이 이루어지더라도 전체 자산에 대한 영향력은 미미하게 됩니다. 실제로 담배꽁초 투자를 진행하는 대가들이 투자한 기업들조차 파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리스크는 꼭 해소해야하는 부분입니다. 두번째 질문인 저평가 해소 시점에 대한 것 역시 분산 투자가 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주가가 회복하여 청산가치까지 간다고 하더라도 그 기간이 너무 길다면, 리스크 대비 리턴이 극히 낮아지게 됩니다. 주가가 청산가치보다 30% 낮은 주식을 생각보다 오래 보유하게 되어 약 5년간의 기다림 끝에 30% 이익으로 매도하게 된다면 연 이익률은 약 5%를 조금 넘기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럴 것이라면 리스크가 적은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분산 투자를 통하여 많은 기업들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한다면 각기 다른 저평가 해소 시점을 누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특정 기업들에 대한 기다림이 길어지더라도 다른 기업들의 저평가 해소가 진행되면서 수익의 시기를 전반적으로 평탄화 하는것이 가능합니다.
분산 투자와 집중 투자는 각자의 장점과 단점이 있지만 특정 투자 스타일을 택한다면 꼭 그 스타일에 합리적인 투자 방식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두 투자 스타일이 완전히 양 극단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산 투자가 합리적인 방식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더 크게 느껴집니다. 본인의 투자 방식을 점검하고 어떤 리스크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고려를 한 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줄 수 있는 방식을 피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8/6/2023
Value Investor's Sanct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