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3일
2017년 2월까지 재미있게 들은 앨범 몇 개를 적습니다.
Mors Principium Est - [Embers Of A Dying World]
Battle Beast - [Bringer Of Pain]
Kreator - [Gods Of Violence]
Overkill - [The Grinding Wheel]
Sepultura- [Machine Messiah]
Battle Beast - [Bringer Of Pain]
레이블
뉴클리어 블래스트(Nuclear Blast)
멤버
누라 루히모(Noora Louhimo) 보컬
야네 뷔욕로스(Janne Björkroth) 키보드
유소 소이니오(Juuso Soinio) 기타
에로 시필라(Eero Sipilä) 베이스
피리 비키(Pyry Vikki) 드럼
주나 뷔욕로스(Joona Björkroth) 기타
수록곡
① ‘Straight To The Heart’
② ‘Bringer Of Pain’
③ ‘King For A Day’
④ ‘Beyond The Burning Skies’
⑤ ‘Familiar Hell’
⑥ ‘Lost In Wars’
⑦ ‘Bastard Son Of Odin’
⑧ ‘We Will Fight’
⑨ ‘Dancing With The Beast’
⑩ ‘Far From Heaven’
배틀 비스트의 4집 [Bringer Of Pain]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오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배틀 비스트의 이번 앨범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다는 청취자 두 분을 연결해 토론 형식으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 안녕하십니까?
㈎ 예, 반갑습니다.
㈏ 반갑습니다.
자, 두 분 인사하셨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각자 배틀 비스트 이번 앨범에 대해 짧게 말씀을 해주시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배틀 비스트의 4집 [Bringer Of Pain]은 자신들의 역량을 최대 발휘한 앨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 아주 만족스럽게 들었습니다.
㈏ 제가 생각하기에 이번 배틀 비스트의 앨범은 이전 배틀 비스트와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룹 정체성까지 바뀐 게 아닐까 봅니다.
얼핏 듣기로 두 분의 의견차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배틀 비스트가 3집 [Unholy Savior]를 발표한 게 2015년 초입니다.
그리고 기타리스트 안톤 카바넨(Anton Kabanen)이 2016년 초 탈퇴합니다.
4집이 2017년 초에 나왔습니다.
이렇게 시기를 언급한 이유는 배틀 비스트 내에 큰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톤 카바넨의 탈퇴가 그것입니다.
안톤 카바넨은 밴드 리더 역할을 했으며 발표한 앨범 3장에서 모두 작사, 작곡을 도맡았던 인물입니다.
정확한 탈퇴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주축 멤버였던 그의 부재는 밴드에 적지 않은 충격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청취자께서 먼저 안톤 카바넨의 탈퇴에 대해 의견을 주시기 바랍니다.
㈎ 말씀하신 데로 안톤 카바넨은 결성 멤버이며 리더였고, 주 작곡자였습니다.
그의 탈퇴 소식을 듣고 저도 어리둥절했습니다.
제가 아는 배틀 비스트는 그의 머리로 굴러가는 그룹이었습니다.
과연 제대로 활동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배틀 비스트가 다시 자리 잡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공연을 문제없이 치렀고 이후 새 멤버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앨범 준비를 했고 이렇게 발표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에 안톤 카바넨의 탈퇴가 급작스러운 사건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내부에서 서로 결별 준비를 하고 있었지 않을까 봅니다.
주도권 싸움이라고 들은 것도 같습니다.
헤어지고 치유하고 재개하고 극복했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님께서 말씀하신 안톤 카바넨의 머리로 굴러가는 그룹이라는 점은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의 공백은 생각 이상으로 파급력이 있었다고 봅니다.
새 멤버 받아들이고 앨범 준비해서 건재하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배틀 비스트에서 안톤 카바넨은 멤버 1명 이상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팀을 이끌었고, 작사, 작곡을 담당했고, 앨범 프로듀싱을 맡았던 인물입니다.
배틀 비스트의 색깔을 담당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빠졌는데 팀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었을까?
저는 이 점에서 의문이 듭니다.
그럼, 이번 4집 앨범 [Bringer Of Pain]과 3집 [Unholy Savior]의 차이점에 대해 각자 의견을 주셨으면 합니다.
㈏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오전 두 앨범을 펼쳐놓고 비교를 했습니다.
3집에 가장 많이 나오는 인물은 단연 기타리스트 안톤 카바넨이었습니다.
그가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했으니까 당연한 결과일 겁니다.
4집에 두드러지는 멤버는 키보디스트 야네 뷔욕로스입니다.
그는 10곡 중 7곡에서 작곡을 담당했고, 프로듀싱, 녹음, 믹싱까지 관여를 한 것으로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안톤 카바넨의 역할을 야네 뷔욕로스가 담당했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으로 자연스러운 전환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냉정하게 과연 그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것인가, 배틀 비스트의 정체성에 문제가 발생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 그 의문이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배틀 비스트를 좋아하는 팬으로 아쉬움이 적지 않습니다.
㈎ 일면 ㈏님의 의견을 동의합니다.
하지만 의문이라는 내용에 대해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밴드를 인간의 집합소라 놓고 보자면, 닥친 조건에 맞게 활동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이란 환경의 동물이라는 말도 있듯이 말입니다.
안톤 카바넨이 많은 일을 했다는 건 부정하지 않습니다.
보컬리스트 누라 루히모와 함께 배틀 비스트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던 것도 분명합니다.
작곡도 맡아 처리했습니다.
왜 탈퇴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떠난 자리를 누군가 메워야 했습니다.
그 일을 담당한 멤버가 야네 뷔욕로스이었습니다.
3집을 보면 그도 앨범 프로듀서로 참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네 뷔욕로스도 배틀 비스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한 축을 담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생겨 담당했던 부분이 더 커졌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이번 앨범이 만들어진 겁니다.
저는 배틀 비스트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겠습니다.
그럼 4집 [Bringer Of Pain]에 나타난 배틀 비스트의 정체성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느 분이 먼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 제가 하겠습니다.
저는 한 가지만 언급하겠습니다.
앨범의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는지 보았으면 합니다.
1집에서 3집에 이르기까지 배틀 비스트를 상징하는 단어는 ‘헤비메탈(Heavy Metal)’이었습니다.
트윈 기타를 바탕으로 힘 있는 음악을 보였습니다.
여기에 누라 루히모의 보컬이 일취월장하며 배틀 비스트의 이미지를 더욱 강력하고, 확고하게 만들었습니다.
서로의 호흡도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완성도가 뛰어나다거나 돋보이는 음악은 아니었지만, 배틀 비스트의 정체성은 견고했습니다.
3집 [Unholy Savior]에 있는 ‘I Want The World... And Everything In It’을 들어보셨으면 합니다.
이들이 내고자 하는 지향점이 무엇인지, 이 곡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틀 비스트는 안톤 카바넨이, 기타가 주도권을 쥔 헤비메탈 그룹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일이 있고 발표한 4집 [Bringer Of Pain]은 사뭇 어색한 음악을 담고 있습니다.
매번 서전을 장식하던 트윈 기타 대신 키보드가 곡의 시작과 끝을 담당합니다.
처음에 당황했습니다.
제대로 배틀 비스트 앨범을 듣고 있는 건가 확인까지 했을 정도입니다.
다른 게 있을 거야 몇 번을 돌려서 들었습니다.
배틀 비스트는 앨범이 나오기 전 유튜브에 신곡을 공개했습니다.
거기에 몇 가지 흥미로운 댓글이 달려있었습니다.
소개하면
‘사바톤(Sabaton)의 여성 보컬 버전이다’,
‘80년대 유로 댄스를 떠올리게 한다’.
‘댄스 음악처럼 들리는 건 왜 일까’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키보드가 주도한다는 점에 거부감은 없습니다.
다만 그 활용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기타 대신 키보드가 전면에 나서면서, 리듬이 단순화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뮤직 비디오 댓글에 달렸듯이 1980년대 유로 댄스가 떠오르곤 했습니다.
혼란이었습니다.
3집과 4집의 간극이 생각보다 컸기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위기를 극복해야 했고, 그것을 키보디스트 야네 뷔욕로스가 담당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이 앨범에서 나타난 결과라고 보입니다.
배틀 비스트라는 이름을 가렸을 때 나이트위시(Nightwish)나 에반에센스(Evanescence)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이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람스타인(Ramstein)이 생각난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주도권이 기타에서 키보드로 넘어가면서 배틀 비스트의 음악도 변화를 겪었고, 정체성도 흔들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배틀 비스트의 변화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고 말씀드립니다.
3집을 들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앨범 앞부분하고 뒷부분 차이가 있습니다.
꼽자면 7번째 곡 ‘Touch In The Night’부터 앨범의 흐름이 달라집니다.
그 곡을 이번 앨범 [Bringer Of Pain]과 연결했을 때,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간의 간극이 있는 곡임에도 어색함을 찾기 쉽지 않았습니다.
배틀 비스트의 음악은 내부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프로듀서를 맡은 야네 뷔욕로스가 그 흐름을 계승한 것입니다.
사회자님께서 정체성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정체성 문제로 볼게 아니라 흐름이 어떻게 진행돼서 여기에 어떤 식으로 나왔는지를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정체성은 단순한 사항이 됩니다.
배틀비스트는 정체성을 잘 계승, 발전시켰다고 말입니다.
이번 앨범의 성격, 흐름을 추가 질의드리려고 했는데, 마침 언급을 하셔서 다행입니다.
시간이 다된 관계로 여기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토론에 참여해주신 청취자 두 분께 감사드리고 내일 뵙겠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곡으로 배틀 비스트의 2017년 4집 [Bringer Of Pain]에서 ‘Dancing With The Beast’를 듣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