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 These Days: 엔드 디즈 데이즈

하드코어

by 초록 라디오

별 생각 없이 집었는데 이내 머뭇했습니다.

“이거 물건이군.”

비전 오브 디스오더(Vision Of Disorder)가 떠올랐습니다.

미국 하드코어(Hardcore)를 대표했던 밴드 비전 오드 디스오더와 많이 닮아 보였습니다.

사실 놀랐습니다.

이런 앨범을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국내 헤비메탈 앨범에 만족했던 적이 언제이었나 싶습니다.

하드코어 밴드 엔드 디즈 데이즈(End These Days)의 2017년 1집 [Ambivalence]와 만남은 우연으로 출발해 번뜩, 집중, 흡족으로 갈무리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국내 헤비메탈 앨범에 이만큼 쌍수를 든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Ambivalence]는 물건이었습니다.


장르로서 하드코어의 장점 중 하나는 전개의 의외성, 변칙이 있습니다.

하드코어는 주구장창 달리는 음악입니다.

한 지점을 향해 죽을 듯이 달려들어 너덜너덜하게 만들고서야 악다구니를 풉니다.

쾌감, 질주, 폭발, 하드코어의 심장입니다.

태생이 그러할 진데 바꿀 싹수는 천부당만부당입니다.

하는 짓 또한 낌새가 보이지 않는 게 요지부동입니다.

이런 하드코어의 옹고집 똥고집에 약간의 틈이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 틈은 지나치기 십상으로 그것을 보겠다고 집중해야 찾을 수 있습니다.

그 틈은 오묘해서 얼핏 찾고도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분위기에 휩싸여 있는지 조차 까먹곤 합니다.

하드코어의 그 틈은 공식이 없습니다.

갖다 붙이고 싶은 곳에 붙여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드코어는 예측 불가능하고 폭주기관차처럼 에너지를 분출합니다.

되풀이해서 틈의 생김새는 무한대로 나옵니다.

밴드 엔드 디즈 데이즈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베이스와 드럼이 악보 한 마디를 16비트로 꽉 채워 목을 조르는 동안, 기타는 뒷짐지고 느긋한 눈빛으로 친구들의 잰 걸음을 지켜봅니다.

보컬은 얼굴 바로 앞에서 침을 튀기며 소리를 내지릅니다.

이들의 느슨한 조합은 순간적으로 발생했다가 사라집니다.

약간의 틈으로 박혀있는 것입니다.

밴드 엔드 디즈 데이즈의 음악에서 약간의 틈은 느슨한 조합의 반복입니다.

느슨한 조합의 반복은 변칙, 의외성으로 나타납니다.

변칙, 의외성은 하드코어의 긴장감을 북돋웁니다.

틈의 선택, 틈의 구성, 틈의 배치, 엔드 디즈 데이즈는 틈을 현명하게 썼을 뿐 아니라 틈의 묘미에 적절하게 색을 입혔던 것입니다.

이른 결론이기는 하지만 밴드 엔드 디즈 데이즈는 제대로 하드코어를 하는 밴드가 맞습니다.


엔드 디즈 데이즈 보컬 송상율의 목소리가 맘에 듭니다.

이렇게 자신 있게 내지르는 보컬을 좋아합니다.

기타가 실력만큼 울리 듯, 베이스가 수준에 맞게 찍히는 것처럼 송상율의 보컬은 자기 실력과 잠재력을 유감없이 선보입니다.

숨이 턱하고 막힐 지경이라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외국 하드코어 밴드 음악을 들으며 부러워했던 것이, 우리도 이런 보컬 하나 있으면 좋겠다 이었는데 엔드 디즈 데이즈가 바람을 충족시켜주었습니다.

하드코어는 하드코어 장르에 걸맞은 보컬이 나와 줘야 합니다.

소리만 잘 지르면 된다고 생각하거나, 맺고 끊는 걸 가볍게 보거나 무시해 이도저도 아닌 음악으로 만들어 속상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송상율은 제대로 소리를 내는 보컬입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아주 잘하는 보컬입니다.

밴드 엔드 디즈 데이즈 음악에 방점을 찍는 역할로 작용했으며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재미있게 하드코어를 즐기게끔 도와주었습니다.


2017년 헤비메탈 최고 앨범으로 밴드 엔드 디즈 데이즈의 1집 [Ambivalence]를 꼽겠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 놀랐고, 다시 들었을 때 또 놀랐고, 또다시 들었을 때 탄식이 일었습니다.

질주와 탄력, 힘과 조화, 패기와 조절, 잘 만든 앨범입니다.

우연히 만나 강한 인상을 남긴 앨범입니다.

하드코어 양식에 충실했고 힘의 분배가 넘침 없이 조화를 이룬, 락 보컬의 맛이 제대로 담긴 앨범이었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하드코어 밴드 엔드 디즈 데이즈의 2017년 1집 [Ambivalence]에서 ‘Temper’입니다.

(출처: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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