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래쉬메탈(Thrash Metal)이냐, 멜로딕 데스메탈(Melodic Death Metal)이냐’
시작은 스래쉬메탈이었습니다. 메써드는 스래쉬메탈 밴드로 데뷔했습니다. 본인들 역시 스래쉬메탈 밴드라 했고, 기사에서도 스래쉬메탈 밴드로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때 메써드는 스래쉬메탈 밴드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스래쉬메탈이라고 들었는데 알고 있던 그 음악이 아니었을 때 혼란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헤비메탈에서 장르는 소비와 선택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장르를 파고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르가 풍기는 익숙함에 만족하고 유지하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어떤 앨범을 들을 것인가 고민하기에 앞서 어떤 장르인가를 따지는 경우가 더 자주 나타나는 이유입니다. 밴드 메써드 상황으로 돌아가, 2006년 1집 [Survival Ov The Fittest]는 의문점을 남긴 앨범일 수밖에 없습니다. 익숙한 장르 음악이라 했는데, 사실은 익숙한 음악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첫 번째 혼란. 잘못 들은 것인가? 편견으로 들었던 것인가? 편협했던 것인가? 다시 듣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공연장은 다르지 않을까? 공연장에서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었습니다. 뭔가 잘못된 것이 있는데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출처: The Metal Archives
출처: The Metal Archives
2009년 2집 [Spiritual Reinforcement], 호평과 함께 대부분 스래쉬메탈 앨범으로 평가했습니다. 밴드 메써드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인들 역시 스래쉬메탈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 앨범으로 혼란이 더 심해졌습니다. 아닌데, 그게 아닌데, 자꾸 그거라 하니 답답할 노릇이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괜찮은 앨범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Spiritual Reinforcement]를 스래쉬메탈 앨범이라 하는 순간 맥이 빠져버리고 맙니다. 앞서 장르는 익숙함을 바탕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익숙함을 기준으로 했을 때 [Spiritual Reinforcement]는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앨범으로 남습니다. 장르 스래쉬메탈은 밴드 메써드에게 득이 아닌 독이 되는 셈입니다. 장르로 [Spiritual Reinforcement]는 스래쉬메탈 범주보다 멜로딕 데스메탈에 더 가까웠습니다. 어떤 색깔을 두고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 부류 (가)는 흰색이라 하고, 다른 부류 (나)는 회색에 가깝지 않으냐고 말합니다. (가)는 색깔 자신이며 다수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나)는 소수로 (가)에 속하길 원하며 동시에 반감을 보입니다. (가)가 흰색이라 하니 어떤 색깔은 흰색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러 사람이 그러니 흰색이 되어 버립니다. (나)는 떨떠름하지만, 주류에 벗어날 생각이 없습니다. 결국 (나) 역시 흰색이라 말합니다. 회색으로 보았을 때 더 선명했을 색깔이 흰색으로 고정되고, 회색 의견은 묻히고 맙니다. [Spiritual Reinforcement]를 멜로딕 데스메탈로 보았더라면 색깔이 더 선명하게 나타났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스래쉬메탈로 들으면 이 앨범은 매번 답답함을 겪게 했습니다. 다시 편견인가? 편협한 건가? 공연장에서 다르지 않을까? 전제를 깐 [Spiritual Reinforcement]로 체하기 직전입니다. 심한 체증은 관심을 잃게 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때 조용하다 이제 나불거리는 건가 질책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예상했습니다. 답변 드리겠습니다. (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에 입을 다물었던 것입니다.
출처: The Metal Archives
2012년 3집 [The Constant]는 어땠을까? 이 앨범 역시 모호함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밴드 메써드 음악이 어떻다 정의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스래쉬메탈과 멜로딕 데스메탈 장르의 불안정, 선택의 아쉬움, 그로 인한 정체성의 혼란. 밴드 메써드 음악이 불안했고 듣는 사람 또한 살얼음판을 걷는 듯 불안했습니다. 좋은 앨범이다, 잘 만든 앨범이다 평가가 있었지만 뜬구름 잡는 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집에서 2집, 2집에서 3집까지 밴드 메써드의 힘찬 발걸음에 비해 족적이 뚜렷하지 못했습니다. 모호함, 아쉬움이 연속되었고 장르, 색깔이 불확실함에 따라 무언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데 실패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으냐고 항변할 수 있지만, 이름값과 비교해 남긴 것이 초라할 뿐입니다. 그래도 반론을 제기한다면 이들이 받은 평가가 적절했느냐를 되짚어 봐야 할 것입니다. 3집 [The Constant]도 스래쉬메탈이냐 멜로딕 데스메탈이냐 어느 쪽도 손들어 줄 수 없는 앨범이었습니다. 이들의 이런 선택이 아쉬울 따름이었습니다. 훨씬 전 이거다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원래 노선을 추구할 거면 이견이 생기지 않도록 직진하는 것이고, 변화를 꾀한다면 뒤따라올 수 있도록 공표한 뒤 차선 변경을 해야 했습니다. 교통정리를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끌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당사자야 당연히 힘들었을 테고, 수용자도 그에 못지않게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10년 세월을 부류 (가)냐 (나)냐 문제로 골머리를 싸매야 했으니 그쪽이나 이쪽이나 맘 편히 쉬지도 즐기지도 못했던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출처: The Metal Archives
2013년 EP [Warrior′s Way]에 이어 2015년 4집 [Abstract]을 내놓으며 밴드 메써드는 큰 짐을 내려놓습니다. 그동안 어깨 짓눌렀던 스래쉬메탈 명찰을 풀고 멜로딕 데스메탈에 집중하게 됩니다. 장르 스래쉬메탈은 과거가 되었고, 그 자리를 서자로 설움 받던 멜로딕 데스메탈이 대신하게 된 것입니다. 늦었지만 스스로 멍에를 벗은 건 현명한 결단이었습니다. (가)와 (나) 양쪽의 선택을 받으려 했던 건 애당초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헤비메탈은 선천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입니다. 장르가 뚜렷해야 부름을 받을 수 있으며 장르가 확실해야 선택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장르의 혼합, 변종으로 주목받았던 밴드가 있기는 했지만 잠깐 인기를 얻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헤비메탈은 음악과 이미지가 뚜렷하고 확실할수록 주목을 더 받습니다. (가)와 (나)의 양립은 넘지 못할 산이었습니다. 밴드 메써드는 직선도로를 놔두고 우회도로를 돌았던 것입니다. 스래쉬메탈 밴드 메써드에서 멜로딕 데스메탈 밴드 메써드로 간판을 바꾼 뒤 내놓은 4집 [Abstract]의 평가가 우호적이었다는 반가운 일입니다. 게다가 2016년 제13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헤비니스 음반’으로 뽑히는 영광까지 누렸습니다. 선택과 집중으로 양쪽 모두 홀가분한 마음으로 연주하고 즐길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이제 즐길 일만 남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실전은 녹록지 않습니다. 장르의 선택과 집중을 택한 밴드 메써드는 한층 높아진 눈높이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이거다 저거다 어느 쪽 손도 들어주지 못하고 망설여야 했던 이들에게 냉정히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세워집니다. 또한 밴드 메써드의 경쟁 상대도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아몬 아마스(Amon Amarth), 아치 에너미(Arch Enemy), 칠드런 오브 보덤(Children Of Bodom), 인 플레임스(In Flames), 다크 트랭퀼러티(Dark Tranquility), 이쪽 분야에서 난다 긴다 하는 밴드들이 그 대상입니다. 어려움을 극복했다 싶었는데 그 앞에 더 큰 산이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등장한 비교군에 맞춰 눈높이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내 밴드 메써드가 멜로딕 데스메탈 시장 한복판에 승부수를 던집니다. 평가가 나오고 별점이 붙습니다. 더는 우물 안 개구리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냉정하게 따져야 합니다. 과연 메써드 4집 [Abstract]가 호평 일색이었던 것이 맞았는지, 한국대중음악상을 탈 만큼 좋은 앨범이었는지 늦었지만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니다, 당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또다시 왜 이제 와 그딴소리를 하는 거냐 한다면 (가)가 되고 싶었다는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바라보는 폭을 좁히면 대상이 적어져 호불호가 어렵지 않게 갈립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좋다 그러면 휩쓸리기 마련입니다. 국내에서 벗어나 국외로 눈을 돌렸을 때, 앨범 [Abstract]의 수준은? 멜로딕 데스메탈만 한 해 앨범 수백 장이 나오는 현실에서 [Abstract]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팔이 안으로 굽힌 걸 간과했던 것이 아닐까? 눈앞에 있는 것만 본 것이 아닐까? 차가운 마음으로 들어봤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아치 에너미, 칠드런 오브 보덤과 견줄 만한 앨범이었나? 야, 그런 밴드와 비교하는 거 반칙 아니야? 그럼 일류와 붙어 싸워야지 삼류하고 대결해 승리해야 하는가. 정리하며 메써드 4집 [Abstract]는 과연 무엇을 남겼는지 잠깐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곡 하나 멋진 걸 남기거나, 특별한 활동을 보였다던가, 뚜렷한 흔적을 새겼던가, 앨범 [Abstract]의 밴드 메써드는 멜로딕 데스메탈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가, 4집 [Abstract] 자리에서 3집 [The Constant] 수준은, 4집 [Abstract]은 다음 앨범을 기대하게 했는가, 세계 시장 진출 가능한 건가. 유명 밴드의 앨범을 놓고 보았을 때 요원한 것이 현실입니다.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렸고, 우물 안 개구리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탓입니다. 이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작정 잘한다고 하는 것이 해가 될 수 있다는 걸 간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큰 그림을 원하고 그리고 싶다면 보는 시야도 그만큼 넓혀야 합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 만큼 경계해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메써드 4집 [Abstract]는 발전하지도 그렇다고 퇴보하지도 않은 예전 그 자리에 정체된 앨범이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 이 앨범이 그랬습니다. 체증만 쌓였습니다.
출처: The Metal Archives
[Definition Of Method]
독일 스래쉬메탈 밴드 크리에이터(Kreator)를 잠깐 다루겠습니다. 크리에이터는 1980년대 소돔(Sodom), 디스트럭션(Destruction)과 함께 독일 스래쉬메탈을 이끌었던 밴드입니다. 당시 최고점을 찍으며 승승장구했고 명반을 연이어 내놓았습니다. 2000년대 들어 크리에이터는 변화를 꾀합니다. 멜로딕 데스메탈 도입을 시도했습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을 테고 반응도 예상했을 것입니다. 스래쉬메탈 상징과 같았던 밴드가 노선을 바꾼다, 보수적인 헤비메탈 문화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사자야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 항변할 수 있었겠지만, 수용자이자 비판자인 소비자는 의심의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는 안 되니 다른 길을 찾는 것이냐, 멜로딕 데스메탈이 그렇게 탐났던 것이냐, 이것이 당신들의 한계인가, 변화를 받아들이는 쪽보다 거부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게 크리에이터 앨범이 몇 장 나왔습니다. 이대로 끝나는가 싶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크리에이터도 저무는구나. 2017년 14집 [Gods Of Violence]를 내놓습니다. 여기서 크리에이터는 이전 숨 막히고 건조하기 이를 데 없던 스래쉬메탈을 담아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멜로딕 데스메탈을 내리고 본 모습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멜로딕 데스메탈을 치고 스래쉬메탈을 취하다. 크리에이터는 다시 스래쉬메탈 밴드가 됩니다.
밴드 메써드 이야기하다 갑자기 왜 밴드 크리에이터를 언급한 걸까, 단순합니다. 각자 자기에 맞는 그릇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크리에이터의 그릇은 스래쉬메탈이었습니다. 멜로딕 데스메탈로 성공한들 사람들은 그들을 스래쉬메탈 밴드로 보지 멜로딕 데스메탈 밴드로 보지 않습니다. 다시 고육지책이었다 해도 소비자가 받아들이기 뜬금없는 시도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자기 그릇을 되찾아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밴드 메써드에 맞는 그릇, 그것은 멜로딕 데스메탈이었습니다. 하지만 스래쉬메탈 미련을 버리지 못해 한참을 돌고 돌아야 했습니다. 제집을 찾은 지 어느덧 5년, 이제 성과를 보일 때가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이들의 성과를 폄하하고 무시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열심히 했고 결과물을 낸 건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꼬투리 잡는 건 제집을 찾지 못해 빗나갔던 걸 아쉬워하는 마음임을 빗댄 것입니다. 실컷 놀고 제대로 보여주고 제대로 평가받으면 합니다. 멜로딕 데스메탈 밴드 메써드 5집 [Definition Of Method] 문을 엽니다.
서막을 여는 멋진 연주와 예쁜 멜로디, 두 번째 곡 ‘Deadliest Warrior’입니다. 이 정도만 유지하면 이 앨범 완성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밴드 메써드의 집중과 선택이 빛을 발합니다. 멜로딕 데스메탈이 뭐냐고? 이런 거야, 들어봐. 자신감이 드러나고 연륜이 묻어납니다. 이들에게 원했던 게 이런 것이고 오래 걸리긴 했지만 이루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밴드 메써드를 두고 아쉬웠던 점이 무어냐는 질문에 답변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동안 밴드 메써드를 대표하는 곡이 없었습니다. 매번 망설여야 했고 답변을 주저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침묵해야 했습니다. 노래를 듣고서도 몇 집에 있는 무슨 곡인지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답변 거리가 생겼습니다.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Deadliest Warrior’를 들으시오 하면 됩니다. 잘 만든 곡이며 잘 다듬어 듣기 좋습니다.
세 번째 곡 ‘Eclipse’는 초기 메써드 성격이 강합니다. 보컬이 선제공격으로 분위기를 만들고 이끌어갑니다. 이러한 구성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지치게 한다는 점이 약점입니다. 지금 메써드와 과거 메써드를 비교하는 잣대로 듣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섯 번째 곡 ‘5492’, 밴드 메써드 곡 중에서 가장 접근이 쉬운 곡입니다. 또 다른 단계. 시작과 끝이 제대로 맞물리며 귀에 들어오는 노래. 지금껏 심각하고 복잡했던 노래, 밴드 메써드의 장벽이기도 했습니다. 내려놓고 풀었어도 되는데 마음 짐을 잔뜩 지고 고행을 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이제 이런 식으로 편하게 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곱 번째 곡 ‘Isolation’, 많은 밴드가 쓴 멜로디와 많은 밴드가 쓴 구성.
여덟 번째 곡 ‘Madness Of Death’에서 특이한 점은 저 멀리 북유럽 핀란드(Finland)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곳 출신 옴니움 개더룸(Omnium Gatherum), 인솜니움(Insomnium), 윈터선(Wintersun)은 최근 앨범을 통해 멜로딕 데스메탈에 프로그레시브메탈(Progressive Metal)을 더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멜로딕 데스메탈 진화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곡만 놓고 보았을 때 밴드 메써드도 저들 발걸음에 동참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뿌듯한 일입니다. 그래야 했고 그러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내는 형식이 마냥 부러웠습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기대만큼 실망도 큰 법이다’
이 두 명제로 앨범 [Definition Of Method]를 바라보겠습니다. 이 앨범의 성과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밴드 메써드 대표곡이 나왔다 2. 음악의 폭을 넓혔다 3. ‘5492’라는 재미있는 곡이 등장했다.
전작인 4집 [Abstract]와 견줘 이번 앨범은 성격이 뚜렷해졌습니다. 노림수가 있었고 그것에 잘 접근해 결과를 냈습니다. 밴드를 상징할 수 있는 곡이 나왔다는 건 당사자뿐 아니라 수용자, 소비자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뜻이고 음악의 폭이 넓어졌다는 건 비교군이 확대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넓어짐은 보는 눈을 좋게 하고 받아들임을 자연스럽게 끌어안습니다. 확대됨은 객관적 관점을 자극하며 새로움의 맛을 알게끔 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다는 표현은 감정보다 재미있게 즐긴다는 행위를 뜻합니다. 되풀이하게 되는데 밴드 매써드는 그동안 지나치게 심각하고 진지했습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으면 합니다. 재미있게, 밴드도 재미있고 듣는 사람도 재미있으면 합니다. 감정으로 재미있기보다 행위로, 연주하고 듣고 떠들고 뛰고 소리치며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입니다. 5집 [Definition Of Method]는 이전에 없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가는 것 또한 다행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명제 ‘팔은 안으로 굽는다’를 대입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앨범 [Definition Of Method]을 당장 해외 시장에 던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밴드 메써드를 알고 있는 우리 말고 그들이 반응을 보일 것인가? ‘팔은 안으로 굽는다’, 해외 시장에서 턱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시장은 냉정하고 매정할 따름입니다. 한 해 수백 장의 앨범이 나옵니다. 멜로딕 데스메탈만 말입니다. 국내에서 손꼽힌다고 해도 시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그들 나름의 눈이 있고, 그들 나름의 유행이 있기 때문입니다. 해외 시장에 나가는 순간 밴드 메써드는 수백, 수천 밴드 경쟁자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거기서 살아남는 자가 승자가 되고 잘나가는 밴드로 남습니다. 공연장에 사람 불러 모으는 밴드 말입니다. 이 상황에서 ‘팔은 안으로 굽는다’를 빼면 밴드 메써드는 어떻게 되는가? 이번 앨범 성과로 제기했던 ‘밴드 메써드 대표곡이 나왔다, 음악의 폭을 넓혔다, ‘5492’라는 재미있는 곡이 등장했다’는 바로 의미가 퇴색합니다. 국내에서나 통할 말이지 해외에서 씨알도 먹히지 않을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과의 기준을 국내로 두었다는 점에서 해외가 언급되는 순간 기준이 사라져 그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기대만큼 실망도 큰 법이다’, 기대 반 걱정 반이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4집 [Abstract]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아 실망했던 터라 5집 [Definition Of Method] 소식에 걱정이 앞선 던 것이 사실입니다. 되풀이되는 걸 피했으면 싶었습니다. 이 앨범은 분명 성과를 이루어냈고 그것을 짧게나마 풀어썼습니다. 국내 시장과 해외 시장을 보통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로 만족할 것인가, 용의 꼬리냐 뱀의 머리냐. 선택은 당사자 몫입니다. 당사자가 어떤 결정을 하는가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것입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기대만큼 실망도 큰 법이다’는 명제 역시 결정과 운명을 같이 하게 됩니다.
이제 결론입니다. 밴드 메써드 5집 [Definition Of Method] 해외 시장 공략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경쟁 상대들과 맞서 싸울 무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전체 그림으로 윤곽이 뚜렷하지 않았고 산만한 느낌이 강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좋은 앨범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아쉽고 씁쓸합니다. 생존 법칙, 강한 무기와 분명한 색깔이 필수라는 말로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