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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창우 Jan 14. 2024

스마트폰과 가치 다원주의

 마셜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를 읽었다. 이 책은 ‘미디어는 그 자체로 메시지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즉 미디어의 형식이 미디어에 적합한 메시지의 내용을 상당 부분 결정하며, 미디어 이용자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이라는 미디어는 대화 상대를 필요로 하며 그때그때 일어나는 모든 상황들에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또한 사고에 감정의 개입이 자유롭다. 반대로 ‘글’이라는 미디어는 대화 상대가 없어도 글쓰기를 할 수 있으므로 내면 탐구를 장려한다. 또한 정서의 개입을 최대한 배제한 채 추상적 논리를 끊임없이 빌드업해내갈 수 있다. 이렇듯 말과 글이라는 클래식한 미디어에서 출발하여 신문, 영화, TV,  라디오 등 산업사회의 미디어를 해석해 나가는데 매우 흥미로웠다.


 이 책은 1964년에 출판되었기 때문에, 인터넷과 퍼스널 컴퓨터, 스마트폰이 발전한 현시대를 해석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PC와 스마트폰이라는 미디어는 어떤 메시지를 발산하고 있을까?

 PC와 스마트폰을 최초로 산업화한 사람은 스티브 잡스다. 애플이 설립되기 전, 군사용 기술로 발전한 컴퓨터는 정부기관에 의해 소유되고 있었고 감시와 통제의 수단으로 여겨졌다. 잡스를 비롯한 캘리포니아의 히피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떠올린다. 만약 이 컴퓨터를 개개인이 모두 가질 수 있게 만든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이 기술을 자유로운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바꾸어낼 수 있지 않을까? 퍼스널 컴퓨터는 이런 의도 하에 만들어졌고, 인터넷의 도입으로 상호 연결성과 결합되었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바를 표현하고, 그 결과물을 인터넷을 통해 누군가의 검열 없이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사회. 이 비전은 점차 현실화되었고 스마트폰으로 이어져 전 세계 사람들을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연결시켰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PC와 스마트폰이라는 미디어의 메시지는 ‘가치 다원주의’라고 할 수 있다. PC와 스마트폰 발달 이전의 인류는 물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집단과 대면하여 말로 교류하거나, 신문이나 방송 등 중앙화된 편집권력의 통제를 받는 미디어를 통해 일방향으로 소통해야 했다. 소수파에 속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자기표현은 억제됐다. 현시대의 인류는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가치관을 표현하고, 그 가치관에 맞는 사람들이 통신 기술을 활용하여 자기표현의 결과물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블로그, SNS, 유튜브가 그 구체적인 실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초의 자유주의자들이 강조했던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는 기술적 한계로 인해 중심 도시에 모여 사는 중산층 시민만이 누릴 수 있었는데,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비로소 모두가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현대인들은 그 영향력을 자각하지 않더라도 가치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프로덕트인 PC와 스마트폰의 문화적 영향력 아래에 있다. 개인보다 집단의 힘이 강하고 정체성을 소속집단으로 정의하던 한국 사회가 점차 ‘나’의 취향, 가치관을 중요시하는 사회로 바뀌어나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 스타트업 씬에서 계속 프로덕트를 만들어나갈 것인데, 그 프로덕트들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게 될까? 머릿속에 넣어놓고 계속 고민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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