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철학: 이유를 물으며 살기
겸손하지 마라. 어차피 너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골다 메이어(이스라엘 전 총리)-
한국 사회는 겸손을 큰 미덕으로 삼는다. 스스로를 굽히고 낮추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여긴다. 나도 학창시절에 겸손의 미덕을 주입받으며 살았다.
대학에서 공부하고 직장을 다니며, 겸손이라는 미덕에 의구심을 품게 됐다. 나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지 않는다. 내가 어떤 역량을 길렀고 어떤 고민을 하는 사람이고 어떤 것을 지향하는지 알려야, 나와 교류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나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겸손은 작은 사회의 미덕이다. 그 유래를 따져보면, 걸음만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작은 마을에 모여사는 농경 사회의 미덕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어차피 서로를 다 안다. 누가 대단하고 똑똑한지 다 안다. 여기서 나를 어필하는 건 자기 자랑밖에 안 된다. 그러니 겸손하라고 하는 것이다.
어차피 전근대에는 농업 생산성 향상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상방을 도모하는 것보다 집단을 안정시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 누구 하나가 특별히 뛰어나면 집단을 떠날 유인이 생긴다. 그래서 집단은 개인에게 "너는 특별하지 않다"고 설득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도 많은 정적 조직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반대로 큰 사회, 상업 사회의 미덕은 자기 어필이다. 현대의 대도시를 생각하면 된다.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른다. 자신과 다른 역량을 가지고 공통의 목표를 지향하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큰 일을 도모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를 알려야 한다. 내가 뭘 잘 하고 뭘 하고 싶은 사람인지를 알려야 한다.
그렇다면 겸손은 어디에 필요한 것일까? 나는 견해와 인격을 구분하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견해에는 겸손해야 한다. 견해는 얼마든지 도전에 열려 있어야 한다. 과학적 탐구가 반증 가능한 가설을 제시하고 반증에 열려 있듯이 말이다. 견해에 대한 비판을 받았다고 해서 인격에 대한 공격을 받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반면 인격에는 지나치게 겸손할 필요가 없다. 다원화되고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경험이 적은 사람도 자신만의 고유한 관점으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 자신이 쌓아온 경험과 지식에 바탕하여 인격에 자신감을 갖는 것이 오히려 건강하다. 모든 인격은 고유하고 다르다. 타인을 존중하기만 한다면, 자부심을 가져도 나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