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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Jul 29. 2021

방학숙제

서문

차라리 글쓰기가 방학숙제 같은 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릴 적부터 꿈꾸고 20대 내내 하던 일을 모두 접고 캐나다에 왔다. 이민 초기엔 그나마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싶었지만, 한국이나 캐나다나 모두, 영화판 일이란 불안정적이기 짝이 없었다. 내 꿈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가족의 생계를 방치할 배짱도, 이기심도 나에겐 없었다. 내가 뭐라고.


이민 2년 차, 밴쿠버 근교 섬 그로써리 (작은 슈퍼마켓) 일이 어느 정도 손에 익었을 때, 그리고 유치 찬란한 영어 실력임에도 단골손님들과 사사로운 수다를 떠는 일이  더 이상 두려워지지 않게 되었을 무렵, 한국에서 하던 일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것이 점점 싫어졌다. ‘근데. 왜 여기서 이런 일을 하고 있어?’라는 대꾸와 측은한 눈빛에도 적당한 답변을 찾는 것도 슬슬 지겨워졌다.  그래서, 과거를 통째로 버리기로 했다.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써온 일기장. 30여 권 정도 되는 각종 노트들을, 프레스기에 넣고 다른 재활용 종이들과 같이 짓눌러 버릴 때는 사뭇 비장했었던 기억이 난다. 20여 년간의 개인적인 경험과 상념들이 저렇게 몽당해져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생명도 죽어버리면 고깃덩어리에 불과하겠구나 하는 거창한 생각조차 들었다.


그 뒤로 십수 년이 흘렀고, 직종을 3번, 직장을 7번 바꿨다. 지금 다니는 직장은 (또라이 직장 상사 상대해주는 거 빼고는) 제법 편하게 있을 수 있어서 2년을 넘게 다니고 있다. 근무시간에 글을 쓰는 등 딴짓을 할 여유도 있고… 누군가 이제 자리를 잡은 거냐고 물어본다면, 애초에 그딴 건 없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여전히 출근은 하기 싫고, 가끔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계속 아내와 싸우고, 그리고 때때로 복권을 산다. 하루하루 삶이 좀 더 쉽고 편하고 재미있게 되었으면 하는 욕심엔 끝이 없다. 동시에, 다시 창작일을 하면서 사는 꿈을 꿔도 될까…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도 들게 되었다.


뭐, 사실, 누구나 알지만, 글쓰기는 정말 기초 자본이 안 들어가는 일 중 하나다. 종이 쪼가리와 펜만 있으면, 그리고 하고 싶은 얘기만 있으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그래도.. 번번이 생계니, 현지 경력이니 이러저러한 핑계를 늘어놓으며, 시나리오보다는 이력서를 쓰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도 그냥 쉽게 잊어버리고, 몇 자 적어둔 블로그 글 역시 실질적 비공개 상태를 유지하는 건 바로 게으름 때문이었던 것 같다. 글을 쓰더라도 고치기 귀찮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받는 것 역시 귀찮았다. 번번이 내가 지금 쓰는 글이 무의식 중에 다른 작품을 표절하지 않는지 검증하는 것도 한없이 귀찮은 일 중 하나였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며 창작일을 미루고 있었다. 그 언제가 언제를 얘기하는 건지는 나조차도 모르고 있어서, 차라리 여름방학처럼, 개학날이 정해져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뭐, 전날 밤부터 벼락치기라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면서


그래서, 지금부터 써볼까 하는 나의 이민기(移民記)는 창작일에 대한 욕정과 내 게으름이 적절하게 타협해서 나온 결과물이 되겠다. 나 자신이 겪었던 얘기를 쓰는 거니까, 적어도 더 기발한 설정을 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적어도 표절시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비겁한 발상이다. 지극히 한정적인 경험과 개인적인 인상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 그것도 길게는 18년 전 이야기니까 지금 현 상황과는 달라진 점들, 혹은 있을지도 모를 소소한 오류 들에 대해선 미리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참고로 서울에 살았을 때에도 남산에는 독일문화원 말고는 가본 적이 없다.


한참 캐나다 뽕에 맞아서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을 때, 혹은 절망에 빠져 ‘이 눔의 나라’와 ‘얘네들’이란 단어를 반복하던 때에 캐나다 소식이나 이민 생활에 대해서 써보려고 했다면, 자칫 특정 사회나 문화를 찬양하거나 조롱하는 걸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뭐.. 그놈이 그놈이고 이곳도 지옥, 저곳도 지옥, 하지만 열탕 지옥과 바늘 지옥 중 각자 취향에 맞는 지옥을 고른 것뿐...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에 나름 건조하게 쓸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든다. 행복에도 비교급이 없듯이 불행에도 비교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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