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야.
요즘은 좀 어때? 재미있게 살고있나?
네 녀석이 결국 이민을 선택했던 건 좀 의외였어, 사실. 어머니가 그렇게 반대하셨을 텐데. 너처럼 부모님 많이 생각하는 놈이 어떻게 이민을 결심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궁금하다. 하하. 뭐, 그만큼 한국에서 직장생활이 힘들었다는 얘기겠지. 그것도 매일 술을 안 마시면 일이 진행이 안 되는 업무를 맡고 있었으니까 왜 아니겠어. 매년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장에서 용종을 떼어내야 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결심이 뭐, 몇 년 안에 갑자기 생겼던 것도 아니고 벌써 예전부터 그랬던 거였잖아. 내가 한국을 떠날 때부터 넌 사표 내고 차라리 학교에 다시 들어갈까를 고민했었을 정도니 어머니도 결국 네 생각을 받아들이셨을 것 같기도 해. 그래도 쉽지 않았었지? 엄니가 그러셨다며.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있는 캐나다로 가는 게 어떻겠냐고. 뭐 그 당시 너한테는 이민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이미 있었을 테니까 바꾸기 쉽진 않았겠지만, 엄니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을 건 같아. 부모 눈에는 언제나 자식이니까. 그래서, 그렇게 간 이민생활은, 어땠어?
10년 다 되어가나? 네가 그 나라로 떠난 게? 야. 정말. 그 10년 정말. 파란만장했네. 아무리 인생은 모험이라고는 하지만 그걸 온몸으로 떠안고 즐기기는 쉽지 않지. 특히 너처럼 아이들이 있을 때는, 그리고 가족의 생계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감을 떠맡는 성격의 사람은 말이지. 너에게 몇 번 이민 이야기를 들었을 때 뭐 이것저것 잔소리를 늘어놓았던 건 기억이 난다. 물론 난 알지. 나도 그랬으니까. 이미 이민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그깟 잔소리는 하나도 쓸데없는 거였다는 걸. 하긴, 그런 주변의 걱정들을 하나하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40년을 살아온 나라를 떠나고 나머지 40년을 새로운 나라에서 살기 위해 갓난아기처럼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일을 결코 선택할 수는 없을 거야. 그런 걸 보면, 너나 나처럼, 가족이나 친지가 하나도 없고, 말도 하나도 안 통하는 땅으로 새 삶을 찾아 무턱대고 건너가는 사람들의 정신상태가 궁금할 때가 있어.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는지.
나 말이야? 난 뭐, 한국 사회에 어지간히 삐쳐있었고... 음... 그땐 또 '뭐 어떻게 되겠지.' 하는 근거 없는 낙관이 있었던 것도 같아. 뭣보다, 네가 그 나라로 이민을 갔을 때만큼이나, 나 역시 이민병 중증이었으니까. 한국을 떠날 즈음에는 마치 전역날짜를 세는 말년병장 같은 심정이었지. 불행 끝, 행복 시작이 될 거라고 확신했었고. 내가 이민을 준비하고 있었을 즈음, 당시 아들을 먼저 타국으로 이민 보낸 직장상사 한 분이 자기 아들 말을 전하더라구.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도망가는 곳에서는 결코 행복을 찾을 수 없다' 하면서. 정말 귓등으로도 안 들렸었어. 하하. '누가 행복 찾으러 도망간대? 바로 당신 같은 사람이 만든 사회로부터 도망가는 거야!' 하며 속으로 비웃었었지. 근데 이제 와서 이민생활 20년 한 나에게 누가 이민생활에 대해 묻는다면 난 똑같은 얼굴로 똑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고.
그냥 추운 거 못 견디거나 더운 걸 더 못 견디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내가 더 견디기 힘든 사회가 있을 뿐이라고 말이야. 결국 행복도 불행도 나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 같아. '와, 저 나라는 저렇게 여유롭게 산다던데...'라든지, '그 나라에 가면 집에 하녀를 여러 명 두고 살 수 있대!' 하는 무책임한 선망으로 결정하는 이민에서 행복을 찾기는 힘들겠지. 저 나라에서 여유롭게 사는 사람이나, 그 나라에서 하녀를 두고 사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테지만, 또 무척 어렵게 사는 사람들도 많을 거 아냐. 내가 거기 가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지, 혹은 그런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는 또 완전 다른 얘기일 테니까 말이야. 결국 다시, '이민'과 같이 자기 인생을 리셋하려는 일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나에게 '어떤 사회'가 어울리는지를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게 순서인 거라고 생각해. 그러고 나서, 내게 어울리는 사회가 어디에 있는지 찾는 것이 그다음에 할 일인 거지.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 통계로는 세계에서 이민과 정착에 가장 어려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라는 연구가 있었어. 실제로 내 주변에도 많은 한국 / 일본 이민자들이 (인도나 중국, 필리핀 등 나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서 많이) 결국 역이민을 선택했고 말이지. 재미있는 건 많은 한국 이민자 커플들은 자녀들이 성장해서 취직하고 자리를 잡을 때까진 어떻게든 버티더라는 거야. 아이가 없는 나로서는 그 심리를 결코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자신들은 한국에서 사는 것이 더 편하지만, 자기 자녀들에게는 캐나다가 더 나은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지. 이 부분에선 영어로 인한 의사소통의 한계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해. 이민 1세대로서 영어를 아무리 먹고살 수 있을 만큼 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에서 한국말을 쓰며 사는 것에 비해서는 삶의 질 면에서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는 뜻일 거야. 대신 이민 2세대인 자녀들은 사회적 지위를 성장시킬 수 있을 만큼 영어를 한다고 확신하는 것이겠지. 뭐, 실제로 이민 1세대의 영어 능력 향상이라는 것이 그렇게 요원한 것인지, 또 영어를 어느 정도까지 잘해야 삶의 질이 확보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단 논외로 두기로 하자. 아까도 얘기했지만, 행복에는 정해진 기준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고 각 개인이 얼마나 견디고 얼마나 즐길 수 있는가에 따라 다를 테니까 말이지.
물론, 언어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거야. 내가 만일 역이민을 생각한다면 가장 큰 요인 중에 하나는 아무래도 음식 문화에 있겠지. 그렇다고 밴쿠버의 음식 문화를 폄하하는 건 아니야. 전 세계 음식을 한 도시 안에서, 그것도 매우 높은 수준의 정통 요리들을 먹을 수 있는 건 분명 뉴욕 등 몇몇 대도시 외에는 기회가 없을 거라구. 하지만, 그건 사실 밴쿠버 다운타운에 집중되어 있는 형편이고, 한국이나 일본처럼 지방 구석구석 특산물과 특선요리들을 먹을 수는 없어. 캐나다 여행을 다니면 여전히 스테이크, 햄버거 아니면 파스타, 혹은 북미 사람들 입맛에 맞춘 달다구리한 중국요리들뿐이니까. 꼭 음식문화가 아니더라도, 북미에서는 한국이나 일본처럼 소비자나 사용자들을 위한 세심한 서비스 같은 걸 기대하긴 힘들어. 지난번 한국 갔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중 몇 가지가 택배상자에서 배송주소 라벨을 뜯기 쉽게 만들어 둔 것이라든지, 공중화장실이나 공공 주차시설에 보면 그 자리가 이미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멀리서 알 수 있게 미리 표시를 해 둔 점 같은 것들이 있었거든. 암튼 예전에 한 일본 친구는, 일본이 여러모로 살기 훨씬 더 편리하다는 이유로 일본으로 역이민을 간 적이 있었고, 여기 있는 한국 사람들 중에서도, 의료 서비스를 포함해서 열악한 각종 서비스 환경을 이유로 역이민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은 형편이야. 뭐 사실, 이런 이유들은 좀 뭐랄까. 그나마 행복한 케이스라고 해야 하나?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고, 현재 이 캐나다라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사실에서 벗어난 부분은 없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최근 유튜브나 블로그 등에서 많이 만나게 되는 역이민 이야기에서 발견한 안타까운 점은 좀 다른 부분이었어. 주택난이라든지 무력한 의료환경과 같은 캐나다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언급되는 경우도 물론 많았지만, 많은 이들이 현지 취업의 어려움이나 영어 실력 미흡으로 인한 생활의 불편, 그로 인해 한인 사업체에 취업을 하고 그곳에서 받은 부당한 처우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경우도 많더라구. 그런 걸 보면 현재 캐나다 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좀 억울하다는 느낌도 들지. 나도 한국인이 경영하는 사업체에서 현지경력을 시작한 케이스이지만, 난 그때 무척 즐겁게 일했었고 정당한 대우도 받았었거든. 오히려 이란 사람들이 운영하는 사업체라든지, 현지 중견 기업들, 노조소속 회사에서 일할 때 훨씬 더 부당하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어. 결국 이곳도 사람 사는 사회이고, 별에 별 사람들, 사장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단면적인 개인의 경험만 가지고 이민 생활이라든지 캐나다라는 나라 전체를 판단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 무엇보다, 혈혈단신으로 건너온 나라에서 나를 무조건 반겨주고 챙겨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순진한 건 아니었나 생각도 들고.
20대에 이민을 오든, 40대에 이민을 오든, 새로운 환경에서 인생을 리셋하는 일은 쉽지가 않지. 영어권 사회에서 건너온 사람들, 혹은 필리핀이나 인도처럼 영어를 많이 쓰는 사회에서 이민 온 사람들도 금방 스며들지는 못 해. 각각의 사회마다 그 나름대로의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 암묵적인 합의나 원칙 같은 것도 있고 말이지. 그걸 보통 유치원에서 중등교육을 마치는 10년 넘게 꾸준한 사회화를 통해서 배우고 익히는 건데, 이민 1세대들은 그런 교육과정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으로 배우거나, 건너 건너 들은 말로 배우는 수밖에 없으니까. 하루하루가 헛스윙이고 헛발질일 때가 많을 수밖에 없는 거지. 단지 기계적인 수치로만 따져도 말이야. 그나마, 캐나다나 호주, 그리고 이민을 적극 받아들이는 다른 나라의 경우 사회체계가 좀 유연한 편이라서 초보자들의 실수에 대해 관용을 많이 보여주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민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완전 리셋한다는 기분으로 그에 걸맞은 준비나 각오가 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너무 조급하게 절망할 필요도 포기할 필요도 없다는 거야.
내가 한국에서 30년간 살면서 이해를 할 수 없었던 점 중 하나는, 각각의 특정집단이 반드시 가져야 할 자산에 대해 사회 전체가 합의하고 있는 기준이 무척 세세하고 엄격하다는 점이었는데, 그중에는 몇 살이면 뭘 해야 하고, 이미 뭘 가지고 있어야 한다거나, 연봉이 얼마 이상 안 되면 이런 건 아예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하고... 뭐 이런, 내가 보기에는 그냥 트렌드인데 사회 전체적으로는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강요되는 문화가 있다는 거지. 마치 1학년을 마치면 2학년으로 모두 진급을 해야 하는 것처럼, 남들처럼 못 살면 나는 낙오자라는 생각에 접어들게 돼. 그리고 이런 식으로 재출발이 늦어지면 평생의 레이스에서 계속 뒤처지며 살 거라는 절망도 떠안고 말이야. 다른 사람들이 무슨 옷을 입는지, 무슨 차를 타는지, 어디서 무슨 음식을 먹는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문제는 또래 집단이나 자신의 처지와 유사한 그룹의 트렌드에 절대적으로 동조하려고 하는 성정이, 이민을 와서도 지속된다는 점이야. 그러다 보니 비슷한 시기에 이민 온 사람들이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고, 큰 집을 사고, 좋은 차를 몰고 다니는 걸 보면 자신이 뒤처져있다는 사실에 견딜 수 없어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 한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의 삶과 비교하는 건 당연하고 말이지. 그리고 이런 이유로 한 번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서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연봉을 주는 직장에 취직하거나 더 큰 집을 사거나 한다고 치더라도, 그 좋은 회사에서 새로운 인맥을 만들게 되면 또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살아야 할 거 아냐.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되는 마음의 지옥을 어떻게 할 거냐구.
다행히, 캐나다나 호주처럼 이민자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사회에서는, 나이가 많다고 뭔가를 포기해야 하는 문화가 지배적이진 않아. 기본적으로 누가 뭘 하든 남한테 별로 관심이 없고, 있더라도 그게 그렇게까지 내 삶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고 봐야지. 물론 가십은 어디나 있지. 누가 취직을 했는데 별 것도 아닌 놈이 내 연봉의 2배를 받네, 뭐 이런 얘기들은 어디나 있어. 사람 사는 곳이니까. 당연히 질투도 있고 선망도 있고 그렇지. 그렇더라도 내가 그의 연봉 반밖에 못 받는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나 자신을 비하하는 일이 드물다는 거지. 연봉이 낮으면 좀 좁은 집에서 후진 차를 몰고 불편하게 살게 되겠지만, 그게 또 그러다 보면 살아지거든. 불편하다고 해서 죄다 불행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러니까, 몇 발자국 돌아간다고 해서 너무 고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냥, 돌아온 만큼 더 오래, 더 재밌게 살면 되는 거잖아.
예전에 컴퓨터 매장의 상주 수리기사로 근무했을 때, 처음엔 대부분의 손님들이 회사 이름빨을 믿고 자기 컴퓨터를 맡기러 왔었지. 그런데 또 나름 재주가 있었는지 수리 매출이 내가 근무하기 이전보다 25배 정도 오르더라구. 매니저도 만족했고 나 역시 수리 매출에서 보너스를 추가로 받았었으니까 재미가 좋았다고 봐야지. 근데, 나중에 내 이름만 보고 손님들이 날 찾아올 때까지는 5년이나 걸리더라구. 물론 무척이나 보수적인 캐나다 사회라서 더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입장에선, 어딘가 새로운 사회에서 나라는 사람을 알리고 그쪽 인맥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까지 드는 시간의 기준이 되었어. 5년이라는 시간이 말이야. 그때까진, 좌충우돌, 들쑥날쑥하면서 살 수밖에 없어. 이번 생은 워낙에 처음이기도 하지만, 그중에서 또 새로운 사회에 뛰어든 거잖아. 뭘 하든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거지. 당장 서바이벌 잡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그 사회에 대해 차근차근 배워나가는 수밖에 없어. 최소 5년 간은 말이지. 그러니까, 지금 무척 힘들다고 해서 이민생활이나 현지 사회에 대해 너무 가혹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가끔 너와 통화할 때마다, 사업체 처분에, 경제적 불안정에, 송사까지 휘말려서 힘들어하는 내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 무척 미안했어.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그러니까 이 녀석아. 내가 그 선배만 딸랑 믿고 그 나라로 가는 거 너무 위험하다고 말렸잖아!"라는 욕지거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근데, 뭐,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당장 너한테 쏴줄 돈이라도 넉넉하게 있다면 모를까. '그니까 내가 얘기했잖냐'와 같은 아무 영양가 없는 얘길 뭣하러 하겠어. 그냥 네 푸념만이라도, 저 멀리 건너 건너에서 들리는 것 같은 목소리였지만, 들어줄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지. 그래도 건강한 게 어디냐. 뭐, 시작부터 지름길로 가려고 했다가 오히려 더 먼 길로 돌아가는 경우는 우리 인생에서 언제나 있는 일이잖아. 애초에 삶에 지름길이 어디 있겠어. 무슨 등반 레이싱도 아니고 말이지. 그냥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에 들꽃도 구경하고 고개 들어 푸른 하늘도 보고... 그렇게 삶의 순간순간을 즐기면서 살자. 10년이고 20년이고 말이지.
지난 10년간의 사업을 접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이민 생활이 되겠지만, 그게 허송세월이었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어. 기본적으로 목표지향적인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나라로 이민을 선택한 거 아니었나? 옛 사업의 대단한 성공을 이루기 위해 네 꿈도, 생활도, 가족과의 시간도 모두 포기한 채 정신없이 달리며 살아온 게 아니잖아. 네가 지금 살고 있는 그 나라에 정말 단 하나의 매력도 못 느끼고 있다면 모를까, 때로는 밉고 섭섭했던 날들도 있겠지만 빼박 우리가 선택한 나라야. 태어나서 어쩌다 보니 살게 된 나라가 아니라구. 엄마 아빠 탓도 못 해, 이제.
아무도 잘못한 거 없어. 실수한 것도 없고. 그냥 우리가 20대를 한국에서 살았던 것처럼. 그리고 한국과 캐나다에서 각각 30대를 보냈던 것처럼. 지난 10년도 똑같이 살아온 것뿐일 거야. 그러니까,
후회하지 말자. 친구야.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