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돈된 길 위의 불편함

주 4일제와 미셀 푸코의 간단하고 짧은 생각의 글

by 바니타스

문득 발아래 깔끔하게 정돈된 산책로를 보고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이 낯선 감정의 정체를 곰곰이 따져보던 중, 미셸 푸코의 문장이 머리를 스쳤다.



“병사는 만들어질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변했다. 형태가 갖추어지지 않는 진흙, 곧 부적격한 신체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기계로 변했다. … 자동적인 습관이 되어 암묵리에 남게 되었다.”

—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



푸코는 사회제도가 인간의 신체를 교정하고 조율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훈육된 몸은 체계 속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 통제는 더는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우리의 습관과 무의식으로 스며든다.



도시의 산책로를 보라. 서울이든, 내가 자란 경남 진주이든, 어딜 가든 정돈된 길이 조성되어 있다. 누구나 그 길 위를 걷는다. 남녀노소, 젊은이와 노인, 직장인과 실직자 모두가. 이 정돈된 길은 마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처럼 보인다. 그 길을 걷는 우리들의 몸은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의 요구에 길들여진 신체들이다.



산책로 자체는 좋은 시설로 보인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시간이다. 아무리 좋은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한들, 그 길을 걸을 시간과 에너지가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시공간”이라는 말처럼, 공간만이 아니라 그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시간, 곧 우리 의식과 삶의 리듬이 변화되어야 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생계를 위해 고된 노동에 종사한다. 그러나 기업은 그 노동의 대가로 발생한 건강 문제조차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려 한다. 이유는 개인이 관리 할 수 있는 공간, 즉 사회적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 표면적인 근거이고 근본적인 이유는 노동자들을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크다. 아웃소싱 업체에서 발생한 사고나 노동자의 병을 두고 ’주의 태만‘이나 ‘자기 관리 실패’로 치부하려는 시도가 반복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하루 종일 몸을 쓰는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운동이 아니라 ‘쉬는 시간’이다.



일부 노동자는 스스로에게조차 속는다. 주변의 분위기와 소위 ‘갓생’이라는 미디어의 밈이 고된 노동 끝에 찾아오는 병마저 나의 자기 관리 부족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렇게 우연히 마주친 산책로를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개인의 의지로 유지되기 어렵다. 인간은 힘들수록 보상을 원한다. 이는 도덕적 결핍이 아니라 심리적 구조다.



운동은 개인의 몫이라는 담론 역시 잘못됐다. 미디어는 근육량이나 체지방률을 기준 삼아 ‘관리의 실패’를 낙인찍는다. 하지만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신체 구성의 상당 부분은 유전적 요인과 성장 환경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이어트, 헬스, 필라테스처럼 자본화된 건강 담론 속에는 고된 노동으로 병든 몸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빠져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공간’만 갖추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삶의 ‘시간’을, 그 시간 속에서의 우리의 ‘의식’을 바꿔야 한다.



산책로를 아무리 많으면 무엇하냐. 정작 우리는 그 길을 걷지 못한다. 건강한 사회란, 단지 걷는 공간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 주는 사회여야 한다. 최근 이슈인 주 4일제의 정책은 단지 여가와 경제의 문제 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한 토론의 장이 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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