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에세이

은은한 향기가 나는 삶

by 바니타스

향기의 무의식



사람에게 나는 향기란 단순한 후각적 반응일 수 있지만, 때로는 감각을 넘어 한 인간에게 느껴지는 매력의 잔향이 된다. 그 향은 물질적이지 않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발산’에 가깝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관념적이며, 때로는 타인과 사회가 그 사람을 인식하는 방식조차 향기의 일부가 된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는 그런 존재다. 그는 도쿄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을 하며 매일 온갖 악취와 오물에 마주하지만, 그에게서는 오히려 은은하고 고요한 향기가 느껴진다. 이는 단순히 잘 씻어서가 아니다. 사람을 감싸는 어떤 태도, 삶을 대하는 자세, 타인과의 거리감 속에서 발산되는 ‘존재의 향기’다. 과연, 우리는 이 향기를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



구조의 힘, 그리고 개인의 향기



히라야마는 매일 정해진 일과를 성실하게 반복한다. 아침엔 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근무 시간엔 화장실을 말없이 깨끗이 닦는다. 여가 시간에는 독서를 하고, 식물을 기르고, 흑백 필름 사진을 찍는다. 이 모든 루틴은 설명되지 않고, 그저 꾸준히 반복된다.

영화 속 동료 '타카시'가 묻는다.
"청소를 좋아하시나 봐요."
"왜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
그러나 히라야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일상을 살아간다. 이 장면은 히라야마의 태도가 단지 일에 대한 ‘열정’이나 ‘동기’ 같은 것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그는 거창한 의미 없이 살아가지만, 그 안에 담긴 삶의 자세는 깊고 단단하다.

비슷한 사례로, 한국의 피겨 여왕 김연아가 있다. 그녀의 유명한 인터뷰에서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는 말은 일찍이 회자되며 화제가 되었다. 이 말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다짐’이나 ‘결심’은 사실상 오래가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뭔가를 해보겠다고 말하지만, 실천은 3일을 넘기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다짐이 아니라, 구조에 대한 반응이다. 히라야마는 화장실 청소부로, 김연아는 국가대표라는 구조 속에서 살아간다. 그 구조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자신의 리듬과 습관을 맞춰나간다. 거창한 사명감도, 눈물 어린 서사도 없다. 그냥 주어진 일을 ‘그냥’ 해내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는 히라야마의 과거를 거의 설명하지 않는다. 왜 그는 그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의도적인 연출이다. 감독은 관객에게 ‘이 사람의 삶을 정의하려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히라야마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며, 그 일상을 통해 잔잔한 향기를 남긴다.


얼핏 보면 히라야마는 사회 구조에 순응하며 기계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정해진 루틴대로 아침을 시작하고, 묵묵히 화장실을 청소하며, 여가 시간엔 독서나 식물을 돌보는 등 반복적인 일상을 유지한다. 겉으로는 아무런 저항이나 변화 없이 주어진 일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구조에 휩쓸리는 존재가 아니다. 한 예로, 동료 직원이 갑작스럽게 퇴사 했을 때 히라야마는 화를 내거나 불만을 드러내는 대신 묵묵히 그 일을 대신 처리한다. 그 행동은 체념이나 복종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에 대한 일관된 태도이자, 관계에 대한 책임감과 자신만의 윤리의식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히라야마는 주어진 구조 안에서 의미를 상실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 구조 안에서 자신만의 리듬과 기준, 그리고 가치관을 만들어내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은 그에게 억압의 장치가 아니라, 자율적 실천의 무대가 된다. 작은 식물을 가꾸고, 필름 카메라로 순간을 기록하는 행위들은 모두 그가 자기 세계를 정돈해가는 방식이다.

이는 마치 *푸코가 말한 ‘자기 배려’(care of the self)*와도 연결된다. 외부의 규율이나 명령이 아닌, 자신에게 의미 있는 질서를 부여하는 삶의 방식. 히라야마는 외부 구조에 반항하거나 그것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비판적으로 복종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조용하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구성해 나간다.



마무리



히라야마의 삶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가능성으로 존재하기에 이 영화는 우리에게 더 큰 여운을 남긴다.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 옳거나 아름답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내면에는 사연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영화는 그것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다. 이는 마치, 그저 흘러가는 삶의 흐름 속에서 그가 택한 방식일 뿐이라는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만약 그의 조카가 갑작스럽게 그의 삶에 들어온다면, 그는 또 다른 리듬으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은 정적인 구조가 아닌 관계와 사건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히라야마는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히라야마의 삶을 이상화하지도, 비판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의 삶을 관조하며 ‘이런 삶도 가능하구나’라고 느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영화 역시 어떤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해석은, 우리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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