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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lopenspirits Apr 18. 2024

칼국수 집은 김치가 맛있어야 한다

휴직 107일 차

     일산에 있는 유명한 칼국수 집에 갔다. 발길을 끊은지 5년이 넘은 것 같다. 발리에 있을 때부터 그 집 칼국수가 당겼다. 인도네시아 음식은 기름이 베이스다. 이건 쿠킹클래스에서 10가지가 넘는 음식과 소스를 직접 만들어보면서 확인한 사실이다. 어떤 음식이던 무조건 기름에 볶고 본다. 인니음식이 질리면 찾게 되는 서양식 역시도 기름졌다. 피자, 햄버거, 파스타, 샌드위치 이 정도 메뉴에서 두 달을 돌려 먹으니 언제나 속이 니글니글했다.


     모름지기 한국인이라면 음식에 빨간색이 조금이라도 들어가야 한다. 고춧가루나 고추장, 고추기름 무엇이 되었던지 말이다. 발리에서 먹고 싶었던 건 정확히는 칼국수가 아니고 김치다. 그 집 칼국수 국물은 닭으로 우려냈는데 사람에 따라 고소한 듯 살짝 비린듯한 맛이 호불호가 있는 편이다. 하지만 그 집 김치는 한국인이라면 무조건 좋아할 맛이다. MSG맛이 느껴지긴 하지만 나름의 깊은 맛, 칼칼하고 알싸한 갓 담은 겉절이 김치 말이다. 칼국수를 주문하자 바로 김치부터 나왔다. 가위로 포기김치를 싹둑싹둑 잘라서 칼국수가 나오기도 전에 한 접시를 다 먹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서 갔지만 오늘의 첫끼였다. 빈속에 매운 김치를 들이켜서 얼마 전 대장내시경 약으로 싹 다 비워둔 속이 걱정되긴 했지만 언제 또 여기까지 오겠나 싶어서 우걱우걱 먹었다.


     김치가 맛있는 칼국수집이 또 있다. 명동에 있는 칼국수 집이다. 거기는 반대로 칼국수는 호불호가 없는데 김치가 호불호가 있는 편이다. 싼 마늘을 쓰는지 한 입 베어 물자마자 속이 쓰려오기 시작한다. 그 식당은 선불이라 주문 즉시 결제를 하고 바로 자일리톨 껌을 준다. 아무리 껌을 씹어봐도 김치의 매운 기는 가시지 않는다. 양치를 해도 속에서 올라오는 김치냄새가 다음날 아침까지 간다. 나는 그 가학적인 김치가 좋아서 거기를 좋아한다. 이곳을 사랑하는 이유가 또 있다. 바로 면과 밥이 무한리필이라는 거다. 면최몇? 면 최고 몇 번까지 리필해봤나면 음... 한 네 번? 네 그릇이나 먹을 수 있었던 건 바로 김치의 어시스트 덕분이다. 칼국수집은 김치가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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