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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Jan 13. 2024

고치고 보완해도 흔들리고 마는 영화, <외계+인 2부>

탄탄해진 이야기에 부실해진 캐릭터들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부>는 나의 기억 속 참으로 당혹스러운 하나의 모순이었다. 재밌다고 말하자니 구멍이 너무 많아 쌓여갔던 아쉬움이 한가득한데, 별로였다 지나가기에는 특색 있는 설정들에 자꾸만 시선이 되돌아갔다. 분명 재미보다는 실망이 컸던 영화였음에도, 왜인지 2부가 기다려지며 다시 한번 보고 싶은 그런 모순적인 작품이 바로 <외계+인 1부>였다.


1편과 2편이 아닌, 1부와 2부로 나뉘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반쪽만으로는 <외계+인>이라는 작품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었기에, 머릿속에서 1부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고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필시 2부에서 이야기의 구멍들을 메워주리라, 설명의 부재로 인해 가까워지지 못했던 캐릭터들에게도 분명 지금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리라. 아이러니하게도 1부가 아쉬웠던 만큼 2부에 대한 기대는 더욱더 커져갔다.



호불호가 극명했던 1부 이후 과연 몇 차례의 수정을 더 거쳤던 걸까. 전편이 받은 지적들을 발판 삼아 2부는 더욱 탄탄하게 개선되어 있었다. 시대별 서로 다른 톤이 부딪히며 부조화를 일으켰던 이야기 진행은 삼각산의 두 신선 흑설(염정아)과 청운(조우진)을 가교 삼아 매끄럽고 유쾌하게 엮이었으며, 현재와 과거 각각의 호흡을 이전보다 길게 하여 관객들이 안정적으로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게끔 돕기까지 했다.


또한 인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그저 액션을 피로하기 바빴던 1부와 달리, 2부의 카메라는 그들의 과거를 비추며 인물과 인물 또 관객과 인물 사이에 유대감을 다지게끔 했다. 이안(김태리)과 무륵(류준열)의 인연을 들여다볼 수 있었기에 시간을 초월하는 이들의 여정에 우리 역시 함께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새로운 반전 또한 어떠한 이질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위와 같은 개선점에도 불굴하고 만일 내게 2부에 대한 감상을 묻는다면, 나는 오히려 1부보다도 인상적이지 못했다고 답할 것이다. 분명 <외계+인 2부>는 지난 1부에 비해 톤도 편집도 훨씬 안정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나, 지나치게 무난함을 좇았는지 시리즈의 약점과 함께 강점까지도 흘러내려 특색 없는 밋밋함만이 남고 말았다.


<외계+인> 시리즈의 강점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할리우드가 떠오르는 금속 질의 슈트도, 공상 과학에 나올 법한 외계인과 로봇들도, 또 최동훈 감독의 이전 작 <전우치>가 연상되는 도사나 신선들도 아니었다. 마치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와 같이 본래 마주할 일 없던 이들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장르와 장르가 충돌하는 그 컬트적 쾌감과, 그 사이사이에서 윤활제 역할을 하는 최동훈 감독 특유의 유머야말로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니었을까.


문제는 아쉬웠던 1부를 차마 미워할 수는 없게 했던 그 매력들이 이번 2부에서는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몸을 옮겨 다니는 설계자나, 비로소 진가를 뽐낸 민개인(이하늬)은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역할을 다해주었지만, 정작 최동훈 감독의 특기라고도 할 수 있는 도사들의 도술 파트는 유의미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후반부 난투 속에 묻혀있을 뿐이었다.



잠시 이야기에서 벗어나자면, 영화 <전우치> 속 전우치(강동원)나 <외계+인>의 무륵 등 최동훈 감독이 그리는 도사들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연상과 꽤나 다른 모습들을 보여왔다. 그들은 풀잎 위의 이슬 대신 한 사발의 탁주를 마셨으며, 도를 닦기는커녕 작품 속 누구보다도 세속적인 능구렁이였다. 때문에 이들은 작중에서 종종 망나니나 얼치기라 비웃음 당하고는 했지만, 이야기 속 사건들을 거치며 끝내 진정한 도사로서 각성하는 일종의 성장담을 보여주었다.


감독이 도사들의 미숙함을 캐릭터의 말투나 행색 외에 그들이 부리는 도술을 통해서도 시각화하였기에, 관객들은 그들의 변화를 지켜보며 성장을 더욱 또렷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전우치에게는 부적에 의존하던 싸움법이, 또 무륵에게 있어서는 부채 속 뽑을 수 없던 천하보검이 그들 자신의 미성숙을 상징하는 하나의 영화 속 장치였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만일 <외계+인> 시리즈를 도사 무륵의 성장담으로 바라본다면 1부의 후반부는 그야말로 흠잡을 곳 없는 성장의 정석이었다. 힘에 부치는 상대에 맞서기 위해 기억 속 인연을 떠올려 마침내 보검을 뽑아 들다니. 무륵 그 자신뿐만 아니라 관객인 우리까지도 자연스레 “드디어!”라 외칠 정도로 짜릿하고 두근거리는 연출이었다.


그렇다면 도사로서 성장을 거친 2부의 무륵은 어떠했을까. 이제 그도 보검을 휘두르며 흑설, 청운 콤비와 함께 1부보다 더 화려한 도술을 펼치게 되는 걸까. 그런데 웬걸, 영화는 도사들로부터 도구를 빼앗고는 어울리지 않는 새 옷까지 입혀가며 1부와 2부의 연결고리를 기어이 끊어내고야 말았다.


무륵은 스승의 보검을 다루며 얼치기라는 오명을 벗어던졌지만, 애석하게도 조명은 그의 성장을 비추어주지 않았다. 영화는 그를 대신하여 맹인 검객 능파(진선규)를 새로이 등장시켰고, 과거 파트의 전투에서는 무륵의 보검이 아닌 능파의 비검이 모든 조명을 독차지했다. 능파의 퇴장 이후 무륵이 현재로 넘어오게 되며 이제는 성장한 도술을 보여주는가 싶었지만, 정작 그의 손에 주어진 것은 부채도 보검도 아닌 주인 잃은 가드(김우빈)의 기계형 슈트였다.



영화는 왜 그러한 선택을 했을까. 성장의 증거인 천하보검을 빼앗는 것은 곧 1부에 대한 자기부정이 되어버리는데, 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이토록 큰 무리수를 범한 걸까. 비록 부정적인 코멘트를 많이 남기기는 했지만, <외계+인 2부>는 재미가 없다는 혹평을 들을 정도의 졸작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그곳에 투자된 비용에 비해, 1부 이후 기다려 온 시간에 비해, 그리고 전편의 강점을 보고 품어 온 기대에 비해 작품의 온도가 너무나 미지근했을 뿐이지.


차라리 1부가 없었더라면, 혹은 1부만이 있었더라면. 이 이야기에 대한 기억은 조금 더 유쾌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아쉬움으로 남은 <외계+인> 시리즈지만, 이제껏 쌓여온 최동훈 감독의 감각은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쨍한 빛을 발하고 있다. 그의 차기작이 SF가 될지 동양 판타지가 될지 어쩌면 또 새로운 장르를 개척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부디 다음 작품에서는 더욱 크게 우리네 마음을 두근거리게 할 이야기가 탄생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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