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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보름 Mar 06. 2023

외로운 싸움의 시작, 술과의 이별 0일 차

23년 3월 5일 

외로운 싸움의 시작, 술과의 이별 0일 차 (23년 3월 5일) 

0일 차



금요일 밤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마신 술을 회개하기 위해 6년 만에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했다. 자녀를 키우는 엄마에게 술은 좋지 않은 습관이니 끊으라며 묵주기도를 받치라는 신부님의 말도 철저히 무시한 채 토요일 밤이 되자 또다시 술 생각이 났다. 남편에게 잠시 아이를 맡겨두고 사무실에 올라가 별빛 청하를 연속으로 3병을 깠다. 검지 손가락 손톱 마디에 언젠가부터 굳은살이 박혀 있다. 유달리 따내기가 힘든 별빛 청하를 얼마나 열심히 땄으면 여기 굳은살이 박였을까? 언제나 그렇듯 집에 돌아오자마자 머리서부터 발끝을 다 씼는다. 내일은 절대 안 먹겠다고 다짐하면서. 그게 바로 어제저녁인데, 6시쯤 지나니 어김없이 술 생각이 떠오르네.





마침 식자재가 떨어져 아이들이 노는 틈을 타 편의점으로 향했다. 사야 할 재료들을 사고 별빛 청하 4병을 담아왔다. 벌써 아이들을 재우고 술을 마시며 영화를 볼 생각에 설렌다.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 얇은 에코백에 꽉 찬 네 병의 술은 서로 부딪히며 짜랑짜랑 울린다. 걸을 때마다 울리는 병 소리가 신경이 쓰인다. 누가 보면 백 퍼센트 술이라고 생각하겠지. 최근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원치 않게 동네에 얼굴을 튼 지인들이 생겼다. 이런 누추한 꼴이나 술에 취한 꼴을 누군가 본다면 내 아이는 어떤 이야기를 들을까? 빨리 가서 술을 마셔야 한다는 생각과 나쁜 엄마가 되었다는 죄책감이 나를 또 괴롭게 한다. 이 괴로운 감정을 잊을 수 있는 방법은... 그렇지! 술밖에 없지! 나의 매일 매일은 이런 굴레의 연속이었다. 






남편은 늘어가는 술병을 모른 척해 주었지만 넌지시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꼭 갈 것이라 이야기했지만, 그게 벌써 몇 주가 지나버렸다. 남편에게 이야기를 듣기 전에 스스로 가봐야겠다고 다짐한 지는 6개월쯤 되었다. 그나마 심리상담을 받으며 술 문제가 아닌 다른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서는, 나는 더 폭음했다. 아 술이 문제가 아니구나, 나에겐 다른 문제가 있어서 술로 위로받는 거구나 생각하니 술에 더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게 벌써 작년 11월이고, 약 4개월간 술보다 더한 근본적인 문제 탓을 하며 술에 더더욱 의존했고, 그럴수록 중독은 더욱 강해졌다. 





이제 해가 떨어질 때가 되면 술 생각이 난다. 아니, 최근 3주간은 대낮에도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아침부터. 아이들을 보내놓고 사무실에 가 보니 전날 밤에 먹다 남은 술 한 병이 마치 얼른 마셔달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그 꼴을 보니 괜스레 입에 침이 고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손은 이미 술병을 따고 있었다. 조금만 술에 취해도 얼굴에 붉은 기가 올라오는 나는 부끄러움 때문인지 술 때문인지 붉게 타오른 얼굴을 마스크로 감추고 후드티를 최대한 머리까지 올린 후 집으로 와서 샤워하고 낮잠을 잤다. 놀라운 지점은 그 기분이 꽤 좋았다는 것이다. 그다음 날에도 나는 오전 10시에 술을 사러 편의점으로 향했다. 이날 이었을까? 진지하게 내가 병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기는. 




술을 정말 끊어야겠다.  네 병째 잔을 비운 후, 샤워하고 스트레칭을 하며 2년 전 단주했을 때 다이어리를 펼쳤다.




‘네 영혼은 죽어가고 있어.’




이 문장을 쓴 다음 날 나는 바로 금주를 시작했고 100일을 성공했다. 100일 정도 단주에 성공하자 오만한 마음이 올라왔다. 회식 자리에 갈 때마다 아직도 술을 끊었냐는 사람들의 말에 술을 다시 입에 대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엔 사람들을 만날 때만 술을 마시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곧 술을 다시 혼자 마시게 되었다. 그 이후 마신 술의 양은 전에 비하면 실로 어마어마했다. 대낮부터 술을 마신 일례는 일생에서 처음이었으니까. 지난날의 과오를 되새기며 단주 성공 일기를 정독하며 다짐한다. 내일부터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기로.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이 중독에서 꼭 벗어나기로. 엉망진창인 엄마가 되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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