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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심리학
by 구름바다 Jan 11. 2018

겨울 정경 - 애나 메리 모지스의 그림 속으로

거대한 병원과 쇼핑몰이 주를 이루고 있는 도심의 한 구획 전체는 겨울 내도록 크리스마스 장식을 두르고서 축제를 벌이는 듯 화려하기만 합니다. 해가 갈수록 화려해지는 21세기의 겨울 풍경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억하고픈 겨울의 정경은 화려한 네온과 장식이 부추기는 들뜸이기보다는 모지스 할머니의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1860-1961)의 복고풍의 겨울 풍경 속 동심의 세계입니다.


마음을 기대고픈 복고풍의 겨울 정경


<블리자드> 1956, 나무에 유화, private collection © Grandma Moses Propertie, New York
<Pull Boys> 1956,  나무에 유화 © Grandma Moses Properties,  뉴욕


모지스 할머니가 그린 풍경들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친 전원 풍경과 농장의 생활상들입니다.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동심과 아울러 동적인 에너지도 느껴지는 즐거운 그림들이지요. 또한  ‘나도 한때는 저렇게 그림을 그렸던 때가 있는것 같기도 한데.....’ 하는 생각도 하게 만듭니다. 주변의 풍경을 빠짐없이 묘사한 디테일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세밀한 묘사를 들여다보노라면 보물 찾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림 속 사람들은 모두가 일을 하거나 놀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화면은 동적인 에너지와 활기로 가득합니다. 그림 속의 친밀감 가득한 활기가 내게로 스며들어 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모지스 할머니라 불리는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여사는 미국의 국민화가로 일컬어지는 분입니다. 그림 속 기억의 풍경들은 그녀가 일상의 삶을 엮어 나가던 뉴욕과 버지니아의 시골 농장과 전원의 풍경들입니다. 할머니는 남편을 사별한 후 슬픔을 달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손가락에 관절염을 앓아 바느질을 할 수 없게 되자, 전문적인 그림 수업을 받은 적은 없지만 붓과 물감을 들고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에 돌입하셨지요. 그때가 76세였습니다. 그런 모지스 할머니는 88세에 올해의 젊은 여성으로 선정되었고,  93세에는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100세 생일이던 1961년 9월 7일은 "모지스의 날"로 선포되었었고, 할머니는 그 생일을 지나 그해 12월에 영면에 드셨습니다. 꼬박 한 세기를 사신 셈입니다.


미술사에서는 모지스 할머니와 같이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아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세련된 기교를 사용하지 않지만, 그림에 대한 순수한 즐거움과 소박함을 가득 담은 회화를 ‘나이브 아트 (naive art)'라고 합니다. 다른 용어로는 원시 미술(primitive art), 아웃사이더 아트라도 불려집니다. 원시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는 프랑스의 앙리 루소 Henri Rousseau(1844~1910)가 있는데, 그 역시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화풍을 완성시킨 화가로 유명합니다. 마크 샤갈은 몽환적인 환상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나이브 아트 풍의 그림을 그렸다고도 하지요. 샤갈 역시 거의 100세를 살아한 세기를 누리며 장수하셨다는 점에서 모지스 할머니와 공통점이 찾아집니다.


심리치료와 삶의 도구로서의 예술


그림을 통해서 남편을 사별한 슬픔을 극복하고, 행복했던 일상의 기억을 시각 언어로 기록하고, 또 그 과정에서 지칠줄 모르는 자기 성장을 도모했고, 인생의 황혼에 이르러 자아 실현의 궁극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들은 생활 예술을 실천한 좋은 예입니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표현을 빌자면, <삶의 도구로서의 예술>의 가치를 보다 적극적으로 구현한 셈이지요. 할머니의 그림과 삶 전체에는 알랭 드 보통이 제시했던 그림이 가지는 심리치료적 효과의 키워드들 -기억, 희망, 슬픔, 자기 이해, 균형, 성장, 감상-이 골고루 담겨있습니다. 또한 사랑받는 화가로서 뿐만이 아니라 평균수명 백 세 시대를 바라보는 21세기의 우리들에게 시대를 앞서간 노익장의 롤모델을 보여주신 셈입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격려와 지혜의 말을 남깁니다.

 

"사람들은 너무 늦었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입니다....... 어려서부터 늘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76살이 되어서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좋아하는 일은 천천히 하세요. 때로 삶이 재촉하더라도 서두르지 마세요."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삶을 알지 못합니다.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어요. 결국 삶이란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니까요. 언제나 그래 왔고, 또 언제까지나 그럴 겁니다."


<눈이다, 눈이 온다 > 1951,  나무에 유화 © Grandma Moses Properties,  뉴욕


그러다 보면 겨울이 옵니다. 매서운 날씨가 찾아오는 계절이고, 머리에 혹이 나고 코피가 터질 때까지 스케이트를 타는 재미를 놓칠 수는 없는 계절이지요. 얼음이 우리처럼 투명한 계절이기도 하고요. 다 함께 크리스마스에 쓸 나무를 구하러 갈 때면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몰라요.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밀 공상을 하면서 내려올 때면 또 얼마나 설레었는지요. 참 그리운 날들입니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 중에서


<썰매타기 > 1951, 나무에 유화 © Grandma Moses Properties,  뉴욕
"겨울철에... 해가 나서 쌓인 눈덩이의 표면이 녹으면, 눈은 더 꽁꽁 얼어붙어서 말조차 그 위에 올라설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졌습니다. 너무 추워서 형제들은 학교에 갈 수가 없었고, 우리는 얼어붙은 눈이 살짝 녹아 얼어붙은 얼음을 가지고 놀았지요. 과수원 위에 있는 공터에까지 가서 썰매를 타곤 했죠. 레스터는 주철 바퀴를 가진 썰매가 있었고, 호레이스는 낡은 벤치를 뒤집어서 설매를 탔지만 매우 안전했어요. 아서는 쓰레받기로 썰매를 탔고 나는 낡은 삽자루를 이용해서 썰매를 타곤 했죠.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우리는 영하 25도에서도 몇 시간이고 놀곤 었지요. "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 중에서

 

미국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할머니의 그림을 두고 케네디 대통령은, 할머니의 그림들이 보여주는 생생함은 미국적인 풍경에 대한 미국인들의 원초적인 신선한 기억을 되살려 준다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모지스 할머니가 표현한 그림 속의 정경들이 미국에서 유년을 보내지 않은 내게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면 그녀의 그림은 미국인들에게만 어필하는 것이 아닌, 더 원초적인 무언가를 담고 있음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림을 들여다보는 동안 나는 유년 시절을 함께했던 <작은 아씨들, 루이자 메이 올콧 1868-1869 >의 시대와 <빨간 머리 앤, 루시 몽고메리 1908)>의 에이븐리 풍경을 발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성인이 된 뒤에는 아마도 내가 북미의 유사한 시골 마을 풍경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모지스 할머니의 시대를 잠깐이나마 경험해 보았기 때문일 런지도 모릅니다. 혹은 그녀의 그림에서 일하면서 즐기고 놀면서 일하는 유희의 인간을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겨울, 그 얼어붙게 추운 영하의 날씨에도 삽자루, 쓰레받기, 의자 뒤집어... 사용할 수 있는 건 뭐든지 이용해 눈썰매를 타던 할머니의 정겹던 어린 시절이 그림들에는 들어 있습니다.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 속으로: 그 겨울에 대한 사적인 기억


캐나다의 그 길고 길었던 겨울의 나날들. 캐나다에서도 가장 따뜻한 남부 온타리오 호숫가 지역이긴 했으나 그 긴 겨울을 피해갈 수는 없었어요. 가을의 단풍이 그 화려한 열병을 앓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앙상한 나무들만 을씨년스럽게 늘어서 있던 그 낮은 언덕과 황야가 펼쳐지곤 했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그 빈 언덕과 황야는 밤 사이에 하얀 설원으로 모습을 바꾸어 버리는 마술을 종종 선보이곤 했었지요. 그런 아침면 언덕에 펼쳐진 순백의 설원은 시야의 원근감을 마비시켰고, 거리가 가늠되지 않던 그 언덕 위로는 알록달록한 점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곤 했습니다. 동네 곳곳의 일상은 애나 매리 모지스 할머니가 그린 겨울 풍경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었지요. 새하얀 설원 위에서 원색의 점들이 와와 함성을 지르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간과 공간의 복고풍 이동이 이루어지는 아침이었습니다. 하늘도 땅도 모두 하얗게 변해버리던 신기한 아침들이었습니다.


© 구름바다
© 구름바다
© 구름바다


아이의 유치원이 끝나면 우리는 학교 뒤 블루 바우어 하우스 앞 언덕으로 달려가곤 했었습니다. 아빠는 따뜻한 붉은 천으로 라이닝을 대고 나무를 휘어서 만든 멋진 클래식한 토보건과 평범한 플라스틱 납작한 보조 썰매 두대를 준비해 가지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곤 하셨지요. 나무로 만든 토보건은 멋지긴 해도 무게 중심이 높아서 비탈을 내려가기엔 편하지 않았고, 실용성은 오히려 납작한 플라스틱 썰매가 더 좋았습니다. 놀랍게도 가장 속도감 있고 안전하게 즐기는 사람들은 여름 물놀이용 튜브를 썰매로 사용하고 있었어요. 그들은 놀이의 프로였고, 경험에서 우러나는 지혜를 당할 수는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눈 밭 위를 뒹구는 사람들도 즐거웠겠지만 언덕 위에 서서 그들의 무방비 상태의 천진함을 지켜보는 것도 무척 재미있었어요. 언덕의 경사가 보기보다 심했기에, 경사를 미끄러져 내려간 후 그들은 반듯한 모습으로 착지하기보다는 옆으로 쓰러지거나 뒤집히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라이딩을 끝맺곤 했습니다. 주변의 나무를  지워버리면 원근감이 상실되어 하늘도 땅도 하얗게 맞닿아 있던 겨울의 설원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하얀 하늘 아래서 제법 능숙하게 스노 보드를 타던 꼬마 친구는 설원을 활강한다기보다는 하늘을 날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착시가 생길 때도 있었죠. 그런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무방비 상태로 뒤집히거나 엎어져 멋대로 뒹구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풍경화가 돌연 추상화로 변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곤 했습니다.


© 구름바다
© 구름바다
© 구름바다


어느 날 아침, 유치원에서 만난 로렌의 엄마는 우리 아이가 아빠랑 썰매를 타는 사진이 실린 신문을 내게 건네주면서 신문사에 전활 걸어 사진을 구하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며칠 전 블루 바우어 하우스 언덕 위에서 신나게 눈썰매를 타고 있을 때, 지역 신문 기자가 사진을 한컷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거든요. 신문사에 전활 걸어 요청을 했더니 카메라 기자가 포착한 아빠와 아들의 행복한 한 때의 사진을 집으로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날씨는 몹시도 추웠지만 마음은 아주 푸근하고 느긋했던 복고풍의 겨울 일상들이 이제는 추억이 되어 기억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눈이 없는 계절에는,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 속 풍경 같은 겨울의 정경을 디오라마로 재현하곤 합니다. 장식장 위에 세워진 크리스마스 타운은 모지스 할머니 시골 농장보다는 조금은 화려한 풍경이고, 규모는 해가 갈수록 커져 갑니다. 따뜻한 겨울은 눈송이를 뿌려두기가 민망하여, 전나무와 향나무 가지로 배경을 대신 장식하기로 합니다.



정작 나의 유년기의 기억에는 겨울이 없습니다. 겨울 차디찬 쨍한 대기와 볼을 에이는 차가운 공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겨울날 집 밖에 나가 무언가를 하고 놀았던 기억이 없군요. 그럼에도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 속 풍경들이 내 기억인 것만 같고, 그리고 아이들이 가장 예뻤던 시절의 그 겨울 풍경들과 겹치는 이유는 결국, 유년의 겨울날 나는 나가서 뛰어노는 대신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소설에 매혹되었던 것이고, 그중 가장 매력적이던 루이자 메이 올콧과 루시 몽고메리가 묘사하던 그 시절의 풍경과 그 시절의 정서를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겨울날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 빅토리안 스타일의 집들이 늘어선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 들면 말괄량이 죠와 귀염둥이 베스가 튀어나올 것만 같던 옛 정취 가득하던 그 동네….  그 겨울의 정경이 오래 남아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 구름바다 All rights reserved



 그림 사진의 출처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http://bennington.pastperfectonline.com/webobject/B7350587-647D-48EF-87B9-130412205518

2. http://www.christies.com/lotfinder/Lot/anna-mary-robertson-grandma-moses-1860-1961-5752492-details.asp x


참고서적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모지스 할머니의 이야기, 수오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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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미술관에 간 심리학
치유를 위한 글과 그림, 심리학 이야기 veronica.hh.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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