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죄책감이 중독으로 이어지는 과정
나는 길티걸이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도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다.
나란 여자는 쓸데없는 죄책감이 많았다.
쉬고 있으면 미안했고,
화를 내야할 상황인데도
화를 내면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았고,
누군가 힘들어 보이면그 책임을 내가 가져와야 할 것 같았다.
나 말고는 해결해줄 사람이 없는 듯
그 무게를 내가 짊어지려고 했다.
남은 도우면서 스스로의 죄책감을 풀고위로받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술에 의존했고,담배에 의존했고,수면제에 의존했다.
이건 변명일 수 있다. 아니 변명이다.
핑계일 수도 있다. 아니 핑계가 맞다.
그 사실을 절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그건 쾌락을 원해서가 아니라 잠시라도 불안과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중독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알코올이나 약물이 중독이 되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술은 뇌의 긴장 브레이크를 풀어 불안을 빠르게 낮춘다.
즉시 반응하게 되는 점이라는 사실이 사람들이 가장 먼저 접근하는 이유다.
수면제와 진정제는생각을 멈추게 하여불안 신호 자체를 눌러버린다.
문제는 이 효과가너무 빠르고,
너무 확실하다는 것이다.
뇌는 이렇게 학습한다.
불안 이걸 넣으면 바로 괜찮아진다.
이 순간부터이 물질은 쾌락이 아니라 나의 유일한 안전장치가 된다.
도파민에 의지하게 되는 과정
도파민은 흔히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지만정확히는 기대와 동기, 중요도를 판단하는 신호다.
도파민은 이런 메시지를 준다.
“이건 나에게 굉장히 중요해.”
“이건 다시 해야 해. 계속 지속되어야 해”
“이게 없으면 위험해.”
술과 약물은도파민을 자연스러운 경로가 아니라지름길로 폭발시킨다.
문제는 반복이다.
도파민이 자주 과도하게 분비되면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도파민 수용체를 줄인다.
그래서 점점같은 자극으로는 부족해지고,자극이 없을 때는더 불안해진다.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뇌가 기준선을 잃어버린 상태다.
왜 자극이 없으면 더 불안해질까
도파민이 낮아지면몸에서는 동시에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증가하면서
각성과 긴장을 담당하는 노르에피네프린 증가하게 된다.
안정감을 주는 세로토닌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게 되면서
그래서 아무 일도 없는데 불안하고, 초조하고,가만히 있기가 더 힘들어진다.
이때 사람은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자극을 찾는 게 아니라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극을 찾는데
이건 생존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중독은 이 지점에서 깊어진다.
길티걸의 중독은 더 악순환이 된다
길티걸은 불안을 혼자 처리하려고 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극혐한다.
그래서 중독에 빠지면 그 중독 자체가
새로운 죄책감이 된다.
“또 술 마셨네.안되는데...”
“왜 또 못 끊었지.”
“이러다 사고 나면 어쩌지.지금까지도 흑역사 계속 만들었는데 또..”
중독은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 시작됐는데
중독이 다시 죄책감을 키운다.
그래서 더 강한 길티걸이 되고,
그 무거워진 감정을 견디기 위해 다시 중독으로 돌아간다.
이건 타락이 아니라악순환이다.
길티걸 중독 체크리스트
아래는 진단이 아니라
지금 내가 길티걸과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는지 가늠해보는 테스트다.
- 쉬고 있으면 죄책감이 먼저 든다
- 자극이 없으면 불안해진다
- 끊어야겠다는 생각과 다시 하게 되는 행동이 반복된다
- 중독 행동 뒤에 자기혐오가 따라온다
- “이번만”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함과 짜증을 동시에 느낀다
몇 개가 맞는지보다 이 문장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순간이 중요하다.
중독은 혼자만 망가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중독되면 주변도 함께 무너진다.
가족은 늘 긴장하고,친구는 지치고 떠나간다.
특히 길티걸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극혐하는데
이러한 중독으로 남에게 또 피해를 주는 상황에서 죄책감은 더 커진다.
중독자는 자격지심 때문에더 예민해지고 때로는 공격적이 되며 고립되고 또 다시 중독에 의지한다.
이건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에너지가 바닥난 상태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그래서 주변은대신 책임지거나대신 변명해주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네가 힘들다는 건 믿어.”
“도움받아도 괜찮아.”
“나는 네 편이지만, 네 선택의 결과까지 대신 살 수는 없어.”
경계는 냉정함이 아니라 회복의 조건이다.
내가 첫 삽을 뜬 방식
나는 중독과 길티걸에서 나와서
살아남기위해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았다.
술을 끊었고
매일 러닝을 시작했다
SNS를 전부 탈퇴하고 남의 삶을 궁금해 하지도 않았고
내 삶을 공유하며 공감과 좋아요 등
인정욕에 목말라하지 않았다.
효과는 놀라울 정도로 컸다.
자극이 줄어드니죄책감이 사라진 게 아니라죄책감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죄책감이라는 것은 인간의 감정이므로 사라질 수는 없다.
이게 내 감정인지,남의 몫을 대신 들고 있는 건지 구분이 되기 시작했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현실적인 시작
하루가 너무 불안하면 5분 산책이면 충분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씻고, 물 한 잔 마시기
혼자 버티기 어렵다면 병원이나 상담의 도움을 반드시 요청해야 한다.
주변인에게 “지금은 조언보다 지지가 필요해”라고 말하고 도움 요청에 대해 비난을 두려워 해선 안된다.
완벽하게 끊는 것보다 중요한 건되돌아올 수 있는 경로를 만들어두는 것이다.
작가의 말
나는 확실히 길티걸이었고
심각한 중독자였다.
열 번을 주변에 잘해도 한 번의 중독상태에서 야기된 사건으로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었다.
그리고 지금도 완벽하진 않다.
하지만 이제는 죄책감이 올라오는 순간그 감정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
중독은 나쁜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너무 오래 혼자 버텨온 사람의 흔적이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여백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