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전야의 문을 닫으며
2024년 3월 1일 뚝섬역 바로 옆에 위치한 4층 건물의 탑층을 계약했다. 리모델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붉은 벽돌 건물의 첫 입주자였다. 계약서에 사인을 한 뒤 열쇠를 받고 공간에 들어섰을 때는 밤이었다.
혼자 공간을 둘러보니 참 고요했다. 시멘트 바닥과 신발이 마찰하는 소리, 건물 뒤로 지나가는 지하철 2호선 소리, 이웃한 가게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들은 고요함을 깨뜨리지 못하고 오히려 드러냈다.
사방에 창이 뚫린 덕에 7평 남짓의 공간이 배의 함교 같았다. 배를 타고 2년 간 고독의 바다를 항해하는 이미지가 그려졌다.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일이었다.
그렇게 벌써 2년의 시간이 지났다. 돌아볼 때는 언제나 시작을 떠올리게 되는데 왠지 수미상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전히 이곳이 배 같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난 이제 배에서 내린다는 것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어진 여정. 고독의 서재, 출판전야는 내 내면의 풍경을 바꿔 놓았다. 서재와 작별하기 전 그 감상을 남겨놓고 싶다.
서재의 책상 위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종이가 있다. 방문 목표를 쓰는 종이로 목표지라는 직관적인 이름을 가졌다. __ 님의 __ 전야라는 글자가 좌측에 적혀 있는데 이번에 처음 써 봤다.
준우 님의 작별전야
서재와 작별하기(farewell)
무언가를 시작하게 하는 마음은 단순하지 않을 때가 있다. 출판전야를 시작할 때도 그랬다. 여러 사유가 뭉텅이져서 나를 행동하게 만들었다.
나의 행동으로 뭉텅이가 굴려지며 그 안에 뒤섞인 여러 사유가 풀려나 정체를 드러내곤 했다. 과시욕, 깊은 취향 갖기, 본업에 느낀 회의감, 글 쓰기 등.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유는 두 가지였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서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
고독에 빠지고 싶은 마음
이 두 사유는 N극과 S극처럼 보였다. 관심을 추구하는 고독의 서재 운영자라니 얼마나 모순적인가. 스스로가 겉과 속이 다른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운 적도 있었다.
2년의 시간이 지나며 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모두 외로움이라는 하나의 알맹이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외롭기에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면서도 고독을 추구한 것이었다. 내게는 둘 모두 외로움을 해결하는 법이었다.
지금에 와서 누군가 왜 서재를 시작했냐고 묻는다면 외로움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서재를 하기 전에는 내가 외로움에 내성이 있다고 착각했다. 혼자서도 이곳저곳 잘 다닌다는 말을 지인에게 종종 듣기도 했다. 이 말을 듣고는 흡족해 한 기억도 있다.
나는 왜 흡족해 했을까. 그건 아마 내가 고독을 특별한 상태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의 관심과 마찬가지로 고독도 일상의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이었다. 이미 고독한 사람은 고독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
서재를 시작하기 전에도 내 안에서는 외로움에서 발원한 마음들이 엉켜 있던 셈이다. 그것이 다른 사유들과 뭉터기져서 커졌고 나는 결국 고독의 서재, 출판전야를 만들기로 결심을 하게 됐다.
나는 오히려 남들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몇 천만 원을 들여 외로운 일상을 깨트릴 사건을 스스로 일으켰으니까. 서재를 시작할 때는 이걸 몰랐다.
서재를 만들고 운영한 2년의 시간은 외로움을, 더 나아가 고독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불교 수행에는 위빠사나 낄레사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를 훌륭한 명상가라 여기는 자만의 상태라 한다. 더닝 크루거 효과와 비슷한데 내가 처음 고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딱 그랬다.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타인에게 의존하는 게 못마땅했다. 외부와의 관계는 언제든 변할 수 있는 통제 불가능한 파도라 여겼다.
당시 내게는 관계 대신 고독이야말로 외로움을 극복하는 올바른 방법이었다. 외로움을 잘 탄다는 친구에게 혼자 지내는 연습을 하라고 오지랖을 떨기도 했다.
서재를 열면서 세운 목표는 단독자가 되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바깥을 바라보는 대신 내면에 침잠하여 그곳에서 보물을 건져 올리길 바랐다.
보물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는 그것이 글이었다. 서재를 고독하게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고 출판전야라는 이름을 지어준 이유였다.
나는 출판전야에서 글을 쓰며 무아지경에 빠지는 장면을 기대했다. 이 세상에 글과 나만 있다가 이내 나도 사라지는, 그래서 외로움도 무색해져 버리는 몰입의 순간. 이것이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고독이었다.
마침내 서재를 열고 그 안에서 글을 쓰며 느낀 점은 내 생각과 달랐다. 출판전야라는 물리적 환경은 물론 고독에 빠지기 좋았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마음가짐이었다.
피뢰침을 설치해도 기후가 받쳐 주질 않으면 번개가 치지 않는 것처럼, 마음가짐에 따라 서재가 무용해질 때가 많았다. 서재에서도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스스로가 한심했다.
소로의 말이 떠올랐다.
숲 밖의 일에 몰두할 거라면 굳이 숲에 올 이유가 있겠는가?
서재를 열기 전에 읽고 밑줄까지 그은 문장이었다. 그렇다면 왜 알면서도 왜 서재를 열었는가.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위빠사나 낄레사 상태였으니까. 환경만 잘 갖춰지면 고독의 배를 타고 순항을 할 줄 알았다.
물리적 환경을 갖춤으로써 내게 부족한 건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정신적으로 성숙할 필요가 있었다.
서재를 만들며 내 부족한 점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책에 나온 성인이나 수도사와 달리 대부분의 시간을 고독으로 채울 수 없는 사람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전에도 나는 고독에 발만 담그고 있었다. 잠깐 혼자 나들이하며 고독을 즐기는 정도가 내게는 적정한 수준이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고독만으로는 나의 외로움을 모두 치유할 수 없었다. 나머지 분의 외로움은 처치 불가한 상태로 남아 나를 괴롭게 했다.
더 많은 고독을 소화할 수 있도록 수련을 하자고 마음을 먹었으나 쉽지 않았다. 글을 써야 하나, 책을 읽어야 하나, 명상을 해야 하나, 스마트폰을 내려놓아야 하나.
정신 수련만큼 손에 잡히지 않는 것도 없었다. 애초에 그게 어려워 서재를 만든다는 비교적 쉬운 길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글을 읽으며 애써 외면했던 문장들이 다시 떠올랐다. 서재를 합리화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형성한 고독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고독을 마주하기로 했다.
마음만 먹으면 군중 속에서도 고독해질 수 있다는 점, 고독은 누구에게나 권하는 것은 아니며 경우에 따라서 위험할 수도 있다는 점, 고독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
가장 마지막 말이 인상 깊었다. 고독을 다룬 책들은 대개 관계를 함께 논했다. 보통 고독과 관계를 대조적인 개념으로 설명했지만 둘 사이를 바라보는 관점에 차이가 있었다.
서재를 열기 전 내 눈에 주로 들어온 문장은 아래와 같았다.
내가 외롭다고 느끼는 이유는 결코 혼자 있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고독 그리고 긴 여정을 혼자 걷기로 한 것은 그나마 가장 덜 외로운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 Alone, 줌파 라히리 외 21명
외로움을 진정으로 해소하려면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 고독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오독했다. 당시 내게 관계는 스마트폰 중독처럼 해로운 것이었다.
서재를 연 뒤에 눈에 들어온 문장은 고독과 관계가 서로 어우러진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고독의 여정 끝에 우리는 결국 관계라는 고향에 돌아온다고도 이야기했다.
언어에 침묵이, 허파에 공기가, 신체에는 양식이 필요하듯 사회에도 고독이 필요하다. 공동체가 소속된 개인의 내적인 고독을 침범하거나 파괴하려고 한다면, 이 개인은 정신적인 질식사로 소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자발적 고독, 올리비에 르모
고독은 관계의 단절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나은 관계를 위한 숨 고르기에 가까웠다. 다른 사람과 더 깊이 연결되기 위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과정. 내가 본 책에서는 이 과정이 주로 글쓰기의 모습을 띄었다.
지금까지도 놀라게 하는 것은 이야기의 숲과 고독 너머에 건너편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건너편으로 나가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
고독이 관계에서 외떨어진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마음이 편해졌다. 외로움을 고독으로만 해결하려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건강해 보이지도 않았다.
파랑새 이야기처럼 진부하지만 나는 고독의 여정을 떠나 오히려 관계를 발견했다. 다만 관계를 확장해서 보게 되었다. 내 주위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까지 궁금해졌다.
작가의 내면을 담은 글이 얼굴도 모르는 독자에게 가닿는다. 작가의 일은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일이며, 가장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인 일이기도 하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
이와 같은 모양새로 고독을 다루는 일은 결국 사회와 맞닿아 있었다. 이것은 곧 내 사명으로 이어졌다.
목숨을 걸 정도의 과업을 사명이라 한다. 과거에는 주군이 시킨 일을 사명으로 받들었다던데 지금은 의미가 달라졌다.
현대 사회에서 목숨을 건다는 건 과격하게 느껴진다. 한 사람의 삶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 이 정도가 시대상에 맞는 무게감인 듯하다.
사명은 거창해 보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에서 시작된다. 내가 세상에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이 사명으로 이어진다.
소설의 주제 의식처럼 사명은 서서히 드러난다. 성장 환경에 따라 추구하는 세계관이 형성되고 그것을 세상에 반영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면 사명으로 거듭난다.
사명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일인 경우가 많다. 과업이 내 대에서 완수되지 않더라도, 완수에 따른 혜택을 내가 보지 못하더라도 수행한다.
그 일이 삼백 년쯤 뒤에 이루어지더라도 삼백 년 전의 사람으로서 할 일을 하고 싶던 꿈. 그런 꿈이 내게 있었다.
-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목정원
모두가 사명을 가지는 것은 아니고 꼭 가져야 할 필요도 없다. 사명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서재를 열고 사명을 발견했다.
고독의 세계에서 관계를 돌아보며 왜 내가 그간 관계를 부정적으로 봤는지 깨달았다. 그전에 나는 관계를 교환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타인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관심을 줬다. 이런 자본주의적인 세계관은 상처받기 좋았다. 내가 기대한 만큼 돌려받지 못했을 때 외로워졌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교환비를 따졌고 적게 주고 많이 받는다는 생각이 들면 좋아했다. 관심을 희소 자원이라 여겨 관계의 범위도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세계관 속에서 내가 받은 혹은 준 상처가 층층이 쌓여 외로움이 됐다.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관계를 추구했는데 도리어 외로워지다니. 관계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이유였다.
문제는 관계가 아니라 내 세계관이었다. 나는 내 기존 세계관을 바꿀 필요가 있었고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라는 책이 방향을 제시해 줬다. 교환 대신 증여로 관계를 바라보는 세계관이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누군가에게 선물(gift)하는 것. 타인에게 받는 보상이 아닌 선물을 줄 때의 즐거움으로 삶을 채우는 방식이었다.
누군가는 증여를 봉사나 아가페적 사랑이라 할 수도 있겠다. 나 또한 그것은 심성이 고운 사람만 할 수 있는 희생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서재를 운영하며 증여가 사명과 결부되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점을 알게 됐다. 고독을 다시금 이해하는 과정이 기반이 되었다.
고독은 가장 개인적인 일임과 동시에 사회적인 일이라는 이야기. 서재가 세상에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선명한 답이었다.
서재는 나의 분신이었기에 그 답은 내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 이것이 내가 세상에 반영하고 싶은 주제 의식, 즉 사명이 되었다.
사명을 이루기 위해 서재가 고독의 보금자리가 될 수 있도록 운영했다. 그 일환이 월요 작가, 목요 작가로 일컫리는 작가 지원 아틀리에 프로그램이었다.
고독에 침잠해 글을 쓸 환경을 갖추기 어려운 작가에게 서재를 내어 준다. 서재는 고독한 환경이 필요한 작가를 만나 자기만의 방으로 거듭난다.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면,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성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가 공동의 거실에서 탈출하여 인간을 서로에 대한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리얼리티와 관련하여 본다면,
그리고 하늘이건 나무이건 그 밖의 무엇이건 사물을 그 자체로 보게 된다면,
-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유유출판사로 시작하여, 로로 작가님, 현지 작가님, 출판사 결, 원용 작가님, 유림 작가님. 다양한 작가님들이 서재에 머물며 글을 써 주셨다.
작가 프로그램은 내가 선택한 증여의 방식이었다. 나는 심성이 곱지 않고 오히려 이기적인 사람이지만 그 과정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작가가 자신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묵묵히 글을 쓰는 것처럼, 작가 프로그램은 내게 증여이자 묵묵히 수행할 사명이었다.
필요한 건 희생정신이 아닌 상상력이었다. 서재에서 작가님들이 길어 올린 무언가가 서재 바깥으로 흘러가 세상을 물들이는 장면을 떠올렸다. 상상은 작가님들의 책으로 실현되었다.
어떤 발화들은 세계를 변화시킨다. 우리는 우리의 말들이 물들인 세계로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간다.
-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목정원
작가님들은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하셨지만 감사한 건 오히려 나였다. 그분들이 함께 해 주시지 않았다면 서재와 나의 사명이 무색해져 기댈 버팀목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나의 사명은 고독과 관계를 묶어 주는 매듭이었다. 여정이 끝난 지금 나는 여전히 외로움을 느끼지만 내 마음은 전보다는 뭉터기지지 않고 정돈되어 있다.
출판전야의 문을 닫는 시점에 서재를 연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대답은 '아니요'다. 서재 덕에 나는 사명을 발견했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다. 지나온 시간 동안 내가 서재를 충분히 활용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회사 일을 핑계로 서재 지기의 역할에 소홀한 적도 많다.
4,000만 원에 달하는 돈을 들여 서재를 열고 매달 월세를 100만 원 넘게 내는데 비워 두다니. 처음엔 이런 금전적 손실의 관점에서 비롯된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기도 했다.
유료 예약도 받았지만 서재는 만년 적자 사업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금전적 손실은 아무렇지 않다. 아쉬운 건 서재를 통해 사명을 더 적극적으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 노력했다면 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더 많이 운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아쉬움이 싫지는 않다. 왜냐면 다음이 있기 때문이다. 서재를 준비하며 쓴 글에서 MVP를 얘기한 적이 있다. 첫 번째 서재는 내 마음을 시험하는 장이었다.
사계절을 두 번 거치며 서재를 운영하는 일이 내게 맞는지 살폈고 정답은 '맞다'였다. 중간중간 지친 적도 있지만 서재는 내게 감동적인 장면을 선사해 줬다.
2년의 시간 동안 드문드문 마주친 순간들. 다 합쳐도 하루가 안 될 시간이겠지만 내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찰나와 같은 순간을 마주하기 위해 길고 긴 삶을 영위하는지도 모른다.
서재는 그렇게 내 마음의 손익분기점을 가뿐히 넘었다. 그렇다면 왜 서재의 문을 닫는 것인가. 지금의 서재는 아쉬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것은 주거와의 분리다.
지금 집은 석촌이고 직장은 정자에 있는데 서재는 뚝섬에 있다. 평일에 서재 운영이 어려운 이유였다. 아침 일찍 뚝섬에 가서 서재 청소를 하고 출근한 적도 있었지만 고단했다.
다음에는 주거 안에 서재를 합친 형태로 운영할 예정이다. 작년에 읽은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의 탈주택이라는 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철제 현관문 기준으로 밖과 안이 명확히 분리된 아파트형 주거에서 벗어나고 싶다. 빛이 투과되는 한지 문창호가 있는 집처럼 밖과 안의 중간 지대가 있으면 좋겠다.
서재를 밖과 안, 그러니까 관계와 고독을 연결하는 지점으로 삼아 운영하는 것이 다음 목표다. 즉, 내 사명을 품을 수 있는 집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서재 관리가 한결 더 편해지고 사는 방식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 미래를 기대하며 다음 장으로 넘어가고자 한다.
첫 번째 서재에 정이 많이 들었지만 문을 닫는 게 슬프지만은 않다. 물리적인 공간은 사라지지만 서재의 영혼은 계속 이어지며 깊어질 것이다.
또 방명록을 비롯한 손님들의 흔적을 잘 모아 두었다. 출판전야를 추억할 수 있는 보물로 소중히 간직해서 다음에 열 서재의 서가에 올려둘 계획이다.
남겨진 글을 보면 지난 계절의 서재를 돌아볼 수 있으니, 방명록이 서재의 나이테처럼 느껴집니다. 언젠가 서재의 그루터기만 남게 되더라도 방명록을 보며 초록이 무성했던 시절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2025년 3월 14일 인스타그램 게시글 중
언젠가 순백의 미도리 노트가 손님들에게 펼쳐질 날이 올 거라 믿는다.
두 번째 서재가 어떤 모습일지 미리 그려 보고 있다. 아직 공간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가장 중심에 있는 목표는 시 같은 서재를 만드는 것이다.
출판전야를 만들면서 서재 이곳저곳에 의도를 담았다. 서재 운영 초반에는 도슨트 신청을 받아서 손님에게 의도를 설명드리기도 했다. 가구, 소품 하나하나의 유래와 의미 등. 5평 남짓의 서재지만 도슨트는 10분 정도 걸렸다.
손님의 반응을 살피는 게 서재 지기의 낙 중 하나였는데 어느 날 생각이 바뀌었다. 문득 그것이 자연스럽지 않은 과시적인 행동으로 느껴졌다. 우쭈쭈를 듣고 싶은 마음이랄까.
우리는 자연을 보았을 때 아무런 설명을 듣지 않고도 아름다움을 느낀다. 자연이 왜 아름다운지 하나하나 설명하는 건 따분하고 구차하다.
시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 해설하려고 하면 오히려 의미가 퇴색되는 것. 다음 서재는 그런 장소로 만들고 싶다.
그런 곳을 만들려면 시인이 되어야 한다. 시인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어내지 않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다.
돌아보면 첫 번째 서재의 각종 의도들은 무의식에서 나온 것이 아닌 지어낸 것이었다. 내 의식의 표층에서 만들어 낸 논리적으로 맞고 그럴듯해 보이는 결과물에 가까웠다.
물론 그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음에는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첫 서재 덕에 무엇이 지어낸 것이고 아닌지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뭉터기진 마음이 아닌 정돈된 마음으로 서재를 연다면 더 솔직한 장소가 되지 않을까. 과시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시 같은 장소. 그곳에서 고독과 관계가 어우러지면 좋겠다.
서재를 열기 전 많은 영감을 준 분들
서재에 딱 알맞은 공간을 찾아 주신 재은 님
서재를 품어 줄 아늑한 공간을 내어 주신 지은 님
서재의 첫 문장을 함께 써 준 팀 데이데이
서재에 화룡정점을 찍어 주신 하선 작가와 소미 작가님
서재를 내밀하게 채워 주신 월/화/목요 작가님들
서재를 찾아 주신 손님 분들
마지막으로 항상 물심양면으로 내 도전을 응원해 주는 우리 가족
그동안 몽상가의 은신처, 출판전야와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언젠가 더 솔직한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지카우치 유타
뚝섬에 위치했던 고독의 서재 출판전야를 만드는 과정은 아래 글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