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리아들을 위한 여성주의적 신학 분석

마리아 어머니와 탈북인 어머니

by 전문상담사 이희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누가복음 1:38)



Ⅰ. 들어가는 말


예수는 여성을 사랑한다(나도 여성이다!). 성경 곳곳에서 여성을 사랑한 예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예수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사랑하는 장면은 요한복음 19장에서 드러난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하신대.”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를 위탁하는 예수와 그 어머니 마리아의 관계가 사랑 돌봄 책임 친밀함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가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 마리아는 기독교 전통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여성 인물 중 하나이면서 가부장적 성경 해석에 희생된 인물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의 삶은 단지 ‘순종’ ‘겸손’으로만 표현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고난의 지층을 갖고 있다. 마리아는 로마제국의 지배, 가난, 사회적 낙인, 폭력적인 정치 구조 속에서 아들을 잉태하고 보호하고 지켜낸 여성이다. 이런 마리아의 삶을 오늘날의 맥락에서 새롭게 조명할 때, 우리는 경계선에 선 여성들의 고난과 모성, 저항의 영성을 읽어낼 수 있다. 특히 현대의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극단적이고 취약한 경계 상황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탈북 여성 어머니들은 마리아적 서사가 어떻게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본 글은 먼저 탈북 여성들의 어머니됨을 관계 안에서 대화의 거리를 두고 바라보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와 탈북 여성 어머니들을 비교함으로써, 고난 속에서도 생명을 지키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는 여성적 영성의 신학적 의미를 탐구한다.


Ⅱ. 여성 신학과 모성: 이론적 배경


전통적 기독교 신학에서 여성은 주로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었다. 모성 역시 여성의 본질적 속성으로 자동 결합돼 왔다. 그러나 여성 신학은 바로 이 지점을 문제 삼는다. 모성은 본능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구조적 역할이며, 그 수행 과정에서 여성은 억압을 경험하거나 저항을 선택하게 된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모성 역시 그렇다. 사회는 여성에게 돌봄과 헌신을 기대하고 이를 정상적 여성성의 기준으로 삼아 왔다. 그러나 실제 여성들은 종종 이 기준과 충돌하며 다른 방식으로 모성을 실천해 왔다. 엘리자베스 슐러 피오렌자(Elisabeth Schussler Fiorenza)는 전통적 성서 해석이 남성 중심적 구조를 강화했다고 비판했다. 그녀는 성서에 억압적 요소와 해방적 요소가 동시에 존재하며, 해석자가 어떤 관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텍스트의 의미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이는 모성 해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마리아의 순종은 전통적 해석에서 미덕으로 강조되었지만, 여성 신학은 그 뒤에 숨겨진 정치적 맥락과 저항의 가능성을 드러내려 한다.

여성학은 모성을 사회적 제도라고 본다. 모성은 한 개인이 자녀를 돌보는 행위가 아니라, 국가 정책, 경제 구조, 종교적 규범, 문화적 기대가 얽혀 만들어지는 시스템의 일부다. 이 시스템은 모성을 특정한 방식으로 규범화하고, 다른 방식의 모성은 주변 화한다. 이러한 이론적 틀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탈북민 여성 어머니의 모성을 비교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된다. 이 모성은 시대와 사회가 만들어낸 조건 안에서 수행되지만, 그 조건을 넘어서는 힘을 동시에 가진다.



Ⅲ. 가난과 폭력의 구조 속에 선 여성


성경 속 마리아는 로마제국이라는 압도적 권력 아래 놓인 가난한 갈릴리 변방의 가난한 십 대 여성이다. 그녀는 혼인 전 임신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감수해야 했고, 제국의 폭력 앞에서 아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이집트로의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마 2:13–15). 출애굽기에서 이집트는 억압의 상징이었지만 마리아에게는 아이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였다. 마리아와 요셉은 국경을 넘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땅에서 경제적 기반 없이 아기를 품고 살아야 했다. 이런 맥락에서 마리아는 단순히 ‘순결한 어머니’가 아니라, 국가 폭력과 식민의 현실 속에서 삶과 신앙을 지켜내기 위해 이동하고 ‘이주하는 여성’이라 할 수 있다.

탈북 여성 어머니들 역시 폭력적 정치 체제, 식량 부족, 감시와 통제, 인신매매와 불법 체류의 위험 등에 노출되어 있다. 그들은 생존 자체가 하나의 싸움이 되는 현실 속에서 아이를 지키기 위해 강을 건너고, 숨어 다니고, 때로는 생사를 건 선택을 반복한다. 이들은 제도적 보호로부터 배제되고, 체제의 폭력과 시장의 폭력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들이다. 이런 현실은 헤롯의 영아 학살이라는 국가적 폭력 속에서 아기를 안고 이집트로 도망쳤던 마리아의 상황과 실질적으로 연결된다. 두 여성 모두 공권력과 체제 폭력 앞에서 생명을 보호하는 마지막 방파제로 서야 하는 현실을 살아간다.



Ⅳ. 경계 밖에서 재탄생하는 모성 그리고 저항의 영성


마리아는 구약의 예언자들처럼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지이다”라는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제안을 대담하게 수락한다. 그녀는 자기 앞에 평범하고 편안한 삶이 펼쳐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

마리아의 모성은 당시 사회가 규정한 ‘정상 가족’의 경계를 벗어난 자리에서 출발한다. 혼전임신은 공동체 내에서 심각한 수치와 낙인의 대상이었다. 당시 미혼 여성의 임신은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위험이었다. 가족과 약혼자(요셉)에게 버림받을 가능성도 매우 컸다. 이런 사회적 낙인을 충분히 인지한 상황에서, 그럼에도 마리아는 자신의 신체와 생명을 내어주며 새로운 생명을 잉태했고, 그 고난을 자신의 신앙적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모성은 제도적 안정이나 가족적 완결성에 기반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의미를 선택한 용기 있는 여성이면서 불안정한 조건 속에서 탄생한 모성이다.

탈북 여성 어머니들 역시 제도적·법적 안정이 결여된 상황에서 아이를 양육한다. 중국에서 태어난 무국적 아이, 중국 내에서 인신매매로 인한 출산, 한국에 도착해서도 가족 구조가 흔들리는 상황, 안정적 돌봄 체계의 부재 등은 그들의 모성을 제도 바깥으로 밀어낸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이들은 생존을 위해 탁월한 판단력, 협상 능력, 돌봄의 지혜를 발휘하며 모성의 새로운 형태를 창조한다. 이것은 제도권 밖에서 탄생한 경계적 모성이며, 성경의 마리아가 보여준 모성과 닮은 결이 있다.

침묵의 자리에서 드러난 저항의 영성 관점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전 절(1:29-35)까지 마리아는 놀람, 두려움, 질문(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의 과정을 거친다. 질문(이해하려 하고)-이해(자신이 처할 위험을 인식하고)-수락(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하는)의 과정에서 성숙한 주체로서 결정했다. 또 성경은 마리아를 많은 말을 하는 여성이 아닌, 침묵 속에서 모든 일을 마음에 새긴 여성으로 묘사한다(눅 2:19). 그러나 이 침묵은 단순한 수동성이 아니라, 폭력적 체제 속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내면을 단단히 세우는 영적·정치적 저항의 침묵이다. 마리아의 침묵은 현실을 회피하는 무기력이 아니라, 고난을 감당해 내기 위한 전략적 침묵이며, 그 속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내적 관계가 지속된다.

탈북 여성 어머니의 침묵 또한 외부에서 보기에는 수동적이지만, 실제로는 생존 전략과 저항의 방식이다. 중개인과 감시자들 앞에서 침묵해야 할 때, 가정폭력의 상황에서 아이를 지키려고 침묵할 때, 그리고 국경을 넘는 순간의 절박함 속에서도 침묵은 살아남기 위한 실천적 지혜가 된다. 이 침묵은 체제 순응이 아니라 폭력 구조를 최소한으로 통과해 나가기 위한 생존 기술이자 영적 저항이다. 이 점에서 탈북 여성의 침묵은 마리아의 침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게 한다.



Ⅴ. 절망 속에서 탄생한 야생 희망(Feral Hope): 목회상담적 함의


마리아는 십자가 아래까지 남아 있던 극소수의 사람이었고, 부활 이후 공동체를 일으킨 신앙의 중심인물이다. 그녀의 희망은 고난을 건너뛰는 승리주의적 희망이 아니라, 절망의 현장을 통과해 나오는 고난 뒤편의 희망이다. 이것은 죽음의 자리에서도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보는 통찰이며, 고난의 현실을 철저히 경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성숙한 희망이다.

탈북 여성의 희망 또한 제도적 희망이 아니라 경계 밖에서 자라난 야생적 희망이다. Feral hope는 모성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그 희망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아이의 생명을 위해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실천적 희망이며, 폭력과 배신, 기근과 체포의 위험 속에서도 ‘살 수 있다’는 최소한의 가능성을 스스로 길어 올리는 생존적 희망이다. 이 희망은 성서적 희망과 동일하게 죽음의 공간에서 생명을 끌어올리는 고난-희망의 순환 구조를 가진다. 따라서 마리아와 탈북 여성 어머니는 모두 ‘절망의 중심에서 시작된 희망’이라는 영성을 공유한다.

이에 마리아와 탈북 여성 어머니의 삶을 연결하는 일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한국 교회의 돌봄 목회에도 중요한 전환을 요구한다. 첫째, 탈북 여성 어머니를 ‘피해자’로만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그들의 내면에 자리한 저항적 모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은 3국(자신은 북한에서 자랐는데 중국인 자녀를 키우고 한국인 자녀를 키우는 3중 구조)을 거쳐 위험을 감수하고 생명을 지켰다. 경계인의 정체성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선택하는 모습은, 피해자이지만 피해자만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둘째, 그들의 침묵과 눈물은 병리적 증상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을 견디며 생명을 유지한 신학적 경험으로 읽어야 한다. 탈북 여성의 불신, 경계심, 지나친 감정 억제 및 통제, 과한 실용성 등과 관련해 트라우마나 PTSD 등 다양한 구조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만 먼저는 생존의 산물임을 인정해야 한다. 셋째, 교회와 상담 현장은 이들의 서사 속에서 드러나는 Feral hope—제도와 질서 밖에서 스스로 길어 올린 야생적 희망—을 발견하고 지지해야 한다. 마리아가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할 때 그녀는 자신의 사회적 위험을 인지하면서도 생명을 잉태하는 결정을 내린다. 이는 안정적인 돌봄 체계가 없는 상황 속에서 생명을 선택한 영적 Feral Hope의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탈북 여성의 모성적 결단 –도망, 숨김, 이동, 위험 감수-은 마리아의 선택 구조와 깊이 닮아 있고 이는 목회상담에서 상담 자원이 될 수 있다. 탈북 여성의 삶에서 하나님의 부재 혹은 하나님의 숨음을 느끼는 경험을 정직하게 수용한다. 그 가운데 복합적인 경험을 한국 사회에서의 적응력, 민감성, 생존력으로 해석하고 자존감을 재구조화할 수 있고 그들이 버텨온 방식을 의미 해석의 언어로 바꿀 수 있다(그때 도망쳤다->생명을 지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이동했다). 이런 목회 상담적 관점은 단지 이들을 돕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교회가 고난과 희망을 바라보는 신학적 시선 전체를 새롭게 형성하게 한다.



Ⅵ. 나가는 말


어머니 마리아와 탈북 여성 어머니는 시대와 문화, 종교적 맥락은 다르지만, 폭력의 체제 속에서 생명을 지켜내야 했다는 점에서 접점을 가진다. 이들은 모두 고난의 현실을 통과하며 새로운 생명을 선택한 여성이고, 제도적 안정이 부재한 자리에서 모성의 힘으로 역사를 움직인 존재들이다. 마리아와 탈북여성이 보여주는 희망은 각기 다른 삶의 자리에서 조건 없이 주어진 현실을 감내하면서도 그 안에서 가능성을 더듬어 나가는 존재론적 용기에서 나타난다. 이들과 함께한 탐구는 Feral Hope(야생적 희망)가 발생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이는 특정한 여성 역할을 이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겪는 경계적 상황 속에서 스스로 길을 찾는 여정에 동행한 것이다. 결국 Feral Hope는 여성들이 각각의 현실에서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 다양하게 실천되고 있는 것이기에, 나의 모든 마리아들에게 깊은 애정과 존중을 표하고 싶다.




*Feral Hope(야생적 희망)는 도나 해러웨이(Donna J. Haraway)를 중심으로 “관리되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하는 생존적 희망”을 가리키며, 제도적 보호가 부재한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돌보고 미래를 모색하려는 비규범적 생존술을 의미한다. 이 희망은 안전한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계획적 희망과 다르다. 상처와 결핍이 있는 자리에서 자라나며, 규범에 순응하지 않고 거칠고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미래를 향한다. 이는 기존의 질서와 체계가 붕괴된 환경에서 인간이 발휘하는 야생적 회복탄력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탈북여성들은 북한의 통제와 결핍, 제3 국의 불안정한 체류, 그리고 한국 정착의 문화적 충격이라는 다중적 위기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제도적 돌봄 밖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발달시킨다. 탈북여성의 이런 삶의 여정은 Feral Hope의 대표적 실천 형태로 해석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