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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빈 Feb 09. 2020

머리가 아플 땐 천천히 걷기를

    십여 년간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인 편두통.

 

    이유를 알 수 없이(가끔은 알 때도 있지만) 엄습하는 날에는 모든 활동을 정지하고 타이레놀 두 알을 입 속에 털어 넣은 뒤 하루 종일 누워있어야 다음 날 겨우 괜찮아질까 말까 하는, 어찌 보면 사소하지만 나에게는 매우 큰 타격을 주는 질환이다.


    어느 하루는 두통이 너무 심해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구역질까지 나 뇌 MRI까지 찍어봤으나 별다른 이상은 없고, 긴장을 많이 해 잔뜩 굳어버린 승모근이 뇌로 가는 신경을 누른 것이라며 근육을 풀어주는 수 밖에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어깨는 풀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근심은 늘어갈 뿐이며, 걱정거리가 조금이라도 늘어나는 날에는 어김없이 두통이 찾아온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강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다음 날 시야가 흐려지고 구토가 느껴질 정도로 오른쪽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할 일은 쌓여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의자에 앉아있기를 몇 시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동네 친구들과 산책을 했다. 


    스마트폰은 잠시 넣어두고 친구들과 실없는 말을 주고받았다.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고 차가운 밤공기를 폐부 가득히 채우고, 발바닥이 땅을 딛는 느낌과 허벅지의 근육이 긴장되는 것을 알아차리며 걷다 보니 전신이 몸이 조금씩 이완되고 머리가 맑아졌다. 


    몸의 긴장이 풀리자 조금씩 나의 내면에 대해 돌이켜볼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 경험했던 상처들을 충분히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상처들은 하나도 회복되지 않은 채 남아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나 보다.


    다른 사람을 온전히 존중하고 사랑하려면 결국 나 자신을 먼저 사랑했어야 했는데, 지독하게도 자기혐오에 빠져있는 나로선 결국 겉핥기로만 다른 사람들을 대했던 것 같다.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그리고 머리가 아프지 않도록 조금씩 걸어가다 보면 행복한 세상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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