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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훈 Aug 06. 2023

옛 기억을 만나 추억을 잊다.

어제 대학 동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침부터 웬일인가 싶어서 전화를 받았다. 동기는 학생들과 뚝섬수영장에 왔다며 내 생각이 나서 연락을 했다. 고마운 녀석이다. 내게 안부를 물으며 시간 되면 수영장에 놀러 오라고 해서 생각해 보고 간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잠시 생각을 했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친구나 사람을 만나는 것도 피곤하기 시작했다. 20대에는 사람 만나고 노는 것이 즐거웠다. 친구와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 농구를 하우정을 다졌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는 인간관계가 끊기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피곤하기도 했다. 난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시간을 내서 친구와 보내려고 했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결혼을 하고  다들 바빴다. 나 역시 바쁘긴 마찮가지였다. 동네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은 멀리 거제도, 경기도, 서울 타 지역으로 새롭게 삶을 이어갔다. 가끔 나만 혼자가 된 것 같아 술 한잔 하면 전화를 걸어 섭섭한 마음을 내비쳤다. 친구들은 전화를 받긴 했지만 예전만큼 여유가 없. 결혼한 친구들은 아이가 없을 때는 부인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며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며 말했다. 난 싱글라이프를 살고 있어서 상황이 달랐다.


친구들은 자신도 놀고 싶다며 너도 결혼해 보면 안다는 말만 했다. 난 이해가 되질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친구들은 아이가 생기면서 더 바빠졌다. 가끔 명절 때 친구에게 연락하면 본가와 처가댁 방문에 시간 여유가 없을 것 같다며 휑하고 갔다. 관계가 소원해지다보니 먼 지역 친구부터 소식이 끊겼다. 가까운 거리의 친구들은 간간이 소식을 이어나갔다. 나는 30대가 되고 동네 한 살 터울 형 보긴 했지만, 점점 일과 공부를 하느라 만날 여력이 없었다. 어느 순간 부터 친구가 연락이 와도 답 할 수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번아웃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공부에 매달리고 일을 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 의지했던 동기와 자연스레 인간관계가 형성됐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어릴 때처럼 친해지가 쉽지 않은데 10여년의 시간을 보내며 친해지기 시작했다. 동기와는 서로 다른 길을 간다. 난 아프고 나서 휴식기를 갖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개인적인 시간이 늘어나면서 인간관계 보다 취미활동이나 운동과 글쓰기에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레 사람을 만나는 건 연례행사가 됐다.


쓸 때 없는 생각을 접어두고 동기를 만나러 뚝섬유원지로 향했다. 버스를 즐겨 타는 편인데, 지하철이 빠를 것 같아 탔다. 건대로 향하는 지하철에는 꽤나 사람이 많았다. 그 많은 20대는 어디로 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물밀듯이 빠져나가는 사람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뚝섬유원지역에 내려 바로 한강이 내다보이고 수영장이 있다. 아이들이 빼곡히 있었고 가족단위로 놀러왔나는지 그늘밑에 텐트와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랜만에 수영장에 왔다. 물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대학교 때 수업 외에는 거의 가질 않는다.


친구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연락이 없는 걸 보니 바쁜 모양인 것 같아 대교밑에 그늘에 모여있는 어르신 사이로 갔다. 할아버지 한 분은 한강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는데 꽤나 수준급이었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집중할 수 있는 취미가 있다는 것이 멋져 보였다. 그때 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아이고 형님 어디십니까. 수영장 근처야. 들어오세요. 나는 5000천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사람들 틈 사이로 동기가 보였다. 우리는 언제 봐도 늘 본 것처럼 말을 이어갔다.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수영장을 걸으며안부를 물었다. 학생들은 수영을 하고 있다면서 수영복을 갖고 왔냐는 질문에 난 아니라고 했다. 그냥 네 얼굴 보러 왔다며  수영장에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과 젊은 사람의 건강한 모습을 보면서 서로 옛 시절을 회상했다.


좋아하는 일과 공부에 시간을 다 보니 젊음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동기는 그런 나를 알아는 지 형도 아직 젊다며 말했다. 우리는 사진과 추억을 남기며 뜨거운 태양 아래 앉았다. 동기는 이라도 담가보라며 말했지만, 네 얼굴 봤으니 됐다 하고 동기도 학생들이 있어서 가봐야 한다고 했다. 동기는 이따 시간 되면 맥주 한잔하자고 말한 뒤 난 곧바로 자리를 일어났다. 집에 도착 한 뒤 좀 피곤했다. 동기는 사진을 보냈고,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 했다.


난 시간 맞춰서 동네에 나갔다.  넌 피곤하지도 않냐며 했더니 피곤하긴요라며 웃었다. 대단한 녀석이다. 난 피로가 몰려오는데도 그런 기색이 없었다. 우리는 삼성통닭집에 갔다.  20대 남녀가 단체로 몰려 앉아 시끌벅적였다. 우리는 창가 구석에 앉았다. 생맥주와 소주, 프라이드치킨을 시키고 서로의 삶을 얘기했다. 난 그냥 아무 생각하지 않고 사는 얘기, 쓸데없는 얘기, 이런저런 얘기를 떠들었다. 우리는 늘 주량에 맞춰 술을 시킨다. 주량에 가까워질 때쯤 동기는 내일도 일정이 있다며 이야기를 서둘러 마무리했다. 동기는 늘 고맙다며 했고, 나도 연락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난 집에 올라가는 길에 10여 년 전 친구와 자주 가던 바에 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친구와 같었는데, 이제는 사장님도 바뀌고, 아는 손님도 없었다. 그때 우리가 놀던 추억의 장소에 가면 광석이 형이 우리를 반겨주었고, 아는 형 동생 친구 술과 음악에 어울려 젊음이라는 낭만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10년 전 그때처럼 바뀐 사장과 낯선 손님을 바라봤다. 우리는 그 시절 회상했다.

 

난 새로움을 잊어버린 것만 같아서 지하 좁은 바에 갔다. 문을 열면 반겼던 사장형은 없었고 온통 낯선 이들이었다. 다행히도 익숙한 장소와 바 테이블에는 남자 둘과 안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난 맨 끝자리에 앉았다. 바뀐 사장은 머리가 장발 파마까지 했다. 난 호가든 한잔을 시켰다. 동네에서 자주 놀았던 친구에게 연락했다. 오랜만에 안부를 물었다. 그 시절에는 싱글 외로운 남녀가 모여 자유롭게 웃고 떠들었는데, 가정이 있는 친구는 가정사의 얘기를 하거나 밤에는 연락을 안 한다. 싱글들은 금방 답이 오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곳에서 놀거나 일을 하기 때문에 바쁘다.


난 마지막 호가든 한잔을 더 시켰다. 옆에 커플은 사장과 안면이 있는 사이인지 크게 웃고 떠든다. 그때 나도 저랬는데 하며 11시쯤 서둘러 일어섰다.


 40이라는 숫자가 처음이다. 젊다고도 늙다고 할 수없지만, 어느 순간 젊음을 잃어버린 것 같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수영장과 예전 자주 가던 바를 갔다. 그 시절 함께 놀던 친구들은 없지만, 추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지난 추억은 추억일 뿐, 난 지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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