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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훈 Aug 16. 2023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자유롭게 살라고.

광복절 날 집에 가족이 모여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여의도에 바람이나 쐴 겸 먹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나갔다. 집에 있기는 모 하고 날도 덥고 답답해서 나갔다. 나서는 길은 괜찮았다. 어머니는 예전 보다 땀을 많이 흘리셨다. 버스에는 휴일 날이라 사람으로 붐비었고, 마스크 해제라 시끌벅적했다. 젊은 남녀노소 모두 한강으로 가는 길인 듯 싶었다.


무거운 가방에 물과 먹거리를 싸들고 갔다. 한강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는 덥다며 물 한잔을 들이켜셨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현상이라며 언젠가부터 말씀하시더니, 어머니의 등에 땀이 많이 흘렀다. 한강을 바라보는 의자에 앉아 연이 날아다니고,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모녀지간에 텐트에 누워 한가로이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우리는 더위가 가시지 않은 듯 어디에 자리를 잡을지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그늘을 피해 앉아 간식과 물을 마시며 쉬었다. 조금 괜찮은 듯싶었으나 햇빛이 내리쬐, 나무 그늘 밑으로 자리를 옮겼다. 남은 간식을 먹으면서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했다.


뛰어노는 아이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젊은 남자 한 명과 여성 세 명이 산책길로 향하는 모습, 텐트를 접는 모녀를 바라보며 모두 제각기 자신의 시간을 가졌다. 어머니와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오랜만에 본모습에 좋기도 했지만 더위가 가시지를 않았다.


자리를 이동해 좀 걷기로 했다. 햇빛이 내리쬐고 더위가 강해지며 어머니의 등줄기에 땀이 흘렀고, 나도 덥기 시작했다. 어디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 근처 쇼핑몰에 들어갔다. 안은 시원했지만, 향수냄새가 진동했다. 어머니는 내게 "옷이 별로 없으니 옷 하나 골라라" 말씀하셨다.  괜찮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그럼 여기 무엇하러 왔냐"며 했다. 난 "열 좀 식히러 왔죠." 며 어머니의 등을 확인했다. 그와 중에 젊은 남녀우리 주변으 옷을 사기 바빴다.


젊은 사람들은 자기 옷을 고르기 위해 열중하고 있는데 우리만 다른 세상에 온 듯싶었다. 맞이 못해 가격을 보고 할인하는 반바지 하나를 골랐다. 가격이 저렴하여서 그걸로 했다. 어머니는 반팔도 골라보라며 했다. 20대 이후로 옷에 별관심이 없어졌다. 거울 보며 오랜만에 본 내 모습에 색깔을 바라봤다. 어색하고 또 괜찮기도 했다.


 옷으로 하겠다며 어머니는 잘 샀다며 했다. 어머니 옷도 고르시라며 말씀드렸지만, 어머니는 난 괜찮다며 옷 많다며 하셨다. 그래도 여성 코너 가서 한번 보시라며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할인 품목의 바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으셨다. 나도 그 옆에서 같이 서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니 젊은 여성 둘이 옷을 고르려는지 내 뒤에 가만히 서있었다. 나는 비켜드렸다. 아직도 옷을 고르지 못한 어머니는 내게 옷사이즈가 몇이지 말씀하셨다. 나는 그냥 멍하니 서있었다. 어머니는 다시 "옷사이봐줘"라는 말을 하셨고, 괜히 애잔하게 들렸다. 난 "엄마 볼 수 있잖아요." 어머니는 "내가 이걸 어떻게 봐" 하셨다.  사이즈를 확인해 드렸고 나도 어머니도 늙어만 간다는 것 답답했다.


어머니는 옷을 입고 어울리지 않는다며 네 옷만 계산하자며 했다. 계산대로 가니 셀프계산대로 바뀌었다. 바뀐 계산대를 보며 어색했다. 구석으로 가서 어머니는 이 카드로 결제라며 주셨고  망설였다. 그 순간 나 자신이 홀로 있는 것만 같았다. 신학생으로 살고 돈도 필요 없다며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며 살았는데, 몸이 아프고 학교를 자퇴하고 나니 이제 다시 시작하는 사람으로 몇 해를 보냈다. 그런데 어머니에게 옷 한 벌 해드리기는 커녕 받기만 하고 있으니 나 자신이 힘들었다.


감정을 추스르고 서둘러 계산을 마치고 나오면서 어머니는 물으셨다. 계산은 어떻게 냐며, 아 네 요즘은 바구니에 담으면 알아서 가격 화면에 나오고 카드 결제만 하면 된다 했다. 어머니는 밖으로 나오면서 덥다 하셨다. 성당을 가기 위해 시간을 맞춰서 나왔는데  아까 전 상황이 마음에 걸려 답답했다. 어머니는 이렇게 옷도 사고 하면서 너도 새롭게 사는 거라며 가자하셨다.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어머니 컨디션이 안 좋으신지 연신 방향을 바꾸시더니 안 되겠다며 집에 가자 하다. 난 택시를 타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차량 계기판을 보면서 세상은 바뀌었는데,  세상에 발맞춰 살아가는 것이 더디기만 해 답답했다. 어머니를 차로 모시고 용돈을 드리며 살아하는데, 아직 다시 시작하는 내 상황에 한숨만 나왔다.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불효자가 된 것만 같아 집에 돌아와서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아침이 되어 어제 얘기를 어머니에게 했다. 어머니 컨디션이 불편해 보다며 나도 힘들었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너나 나나 이제 앞자리 숫자가 바뀌어서 그래. 나도 힘들다"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말없이 멋쩍은 웃음을 내고 어머니와 난 말이 없었다. 어머니는 자리에 일어나시어 내 옷을 다리며 말씀하셨다. "고생했다. 다 고쳐가며 사는 거지." 난 말없이 자리를 일어섰다.


어머니는 내 방에 오셔서 다린 새 옷을 걸어놓으"새 옷을 입고 자유롭게 살아." 말씀하셨다. 난 이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네 어머니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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