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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제이 Nov 12. 2023

경험과 상식

순항 중에 사무장에게서 콜이 왔다.


다급한 목소리로

"캡틴, 지금 한쪽  화장실 웨이스트 탱크가 다 빨간색으로 가득 찬 상태예요. 어쩌죠?"


350명 가까이 탑승한 777에 절반의 화장실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수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우선 머리를 스친다.

아직 아테네에 착륙하려면 2시간 이상 남았는데,  보고가 사실이라면 앞으로 상당히 어려운 비행이 될 것 같았다.


다행히 바로 나의 상식적인 촉이 끼어든다.


"이륙 후 고작 3시간 만에 웨이스트 탱크가 갑자기 풀이라니, 이건 인디케이션 프라블름이야.."


속으로는 내 촉이 맞아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하지만 인터폰 너머로는 짐짓 큰일 아니라는 차분한 톤으로,  


"사무장님. 해당 화장실들 전체를 플러싱이 되는지 우선 확인해 주세요. 그리고 다시 연락 주세요. 제 생각엔 센서 이상인 거 같아요."


물론 사무장은 몇 분 뒤 평소처럼 다시 밝은 톤의 목소리로 돌아왔다.


"기장님. 모두 정상 작동됩니다."


경험과 상식이 종종 이런 맹목적인 판단미스를 방지한다.


착륙 후에 직접 객실에 나가 살펴보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둣, 모든 탱크가 절반이하로 지시하고 색깔도 정상을 의미하는 녹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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