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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로 Feb 06. 2023

사이 : 한때로부터 다른 때까지의 동안

부산 백석

백석이 떠난다고 한다. 으젓하게 바이닐을 뒤적거리더니 어디로 간다는 걸까.


추운 날, 해운대에서 곱창전골에 소맥을 마시다가 음악을 듣고 싶어졌다는 조조와 친구를 따라서 셋이 달맞이 고개로 갔다. 택시를 타고서도 숨이 차는 듯한 언덕길이었다. 누군가의 집으로 향하는 기분이 들던 가느다란 골목. <백석>이라는 대범한 간판을 보고 허어-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사장님이 백석을 좋아해서 지은 이름은 분명하네. 괜스레 오지랖을 부려 저도 백석을 좋아해요- 하고 싶지만, 나 같은 손님이 넘쳐날 것 같아서 잘 참아냈다.


백석은 해방 후에 북에 남았다가 외진 양강도로 보내졌다. 원하던 글을 쓰지 못했고 그의 원고들은 어려운 시절 땔감으로 쓰였다. 6.25 이후에 두 번 월남을 제안받았지만 백석은 가족들과 함께 남기 위해 거절했다. 고급 양복을 입던 훤칠한 모던보이가 촌부가 되어 생을 마치게 되다니. 그래도 백석은 밭을 갈며 고되게 일하면서도 가족과 끝까지 함께 살았고, 주변의 문학도들에게 계속 글을 가르쳤다고 한다. 자신의 시에서 그리던 고향의 모습을 간직하며 살았다면 좋았으리라.



이날은 어쩐 일로 셋 다 마음이 동해서 바에 조르륵 앉았다. 조조는 서글서글한 또래 사장님과 음악 이야기를 시작했고, 모두 바질 헤이든과 글란모란지에 점점 노곤해졌다. 사장님이 키우는 개, 멍구는 크고 순한 녀석인데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 친구를 배려해달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기에 나에게 다가와 주었을 때도 조심히 반겨주었다. 멍구는 이리저리 까만 코를 앞세워서 돌아다녔고 손님들을 한 번씩 스윽 거치고는 구석에 자리 잡아 한참을 졸았다.


어떤 이들은 시가 젊음을 닮았다고도 하는데, 나는 오히려 그것을 조금씩 음미하게 되는 청춘의 뒷장인 것 같다. 청량한 여름은 지나가고 쓸쓸한 겨울을 닮은 백석의 뒷장에서는 왜인지 숨이 하얗고 가쁘다. 큼직한 창밖을 보며 양수경을 듣는다. 따뜻한 부산에 백석의 눈이 푹푹 나리는 것 같다. 가게 처마 밑 바깥쪽으로 흰 눈이 보드란 직선을 그려놓은 걸 본다.


뜨거운 연애는 변한다. 제아무리 대단했던 소문도 잊혀지고, 지치지 않고 화려했던 밤이라도 끝내는 동이 튼다. 소란스러움 뒤에 찾아오는 고요함을 너무 낯설어하지 말자. 음악이 끝나도 기다리면 다음 트랙이 연주된다. 청춘의 뒷장에서 또다시- 백석은 어디로 갈까.



-장르 : 가요, rock, indie, jazz 등 다양

-볼륨 : 대화가 가능하지만 볼륨이 작지도 않은 정도

-플레이 포맷 : mostly vinyl, cd, tape

-신청곡 : 바쁘지 않은 시간 가능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117번다길 155 해광식육점 안집

-010-7777-4494


JoJo’s comment

부산에 갔을 때, 꽤 괜찮은 바이닐 바가 있다는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골목에서 입구를 찾기 약간 까다롭지만 음악이 살짝 흘러나오는 가게를 찾아내면 기쁘다. 백석이라는 상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혼자 간다면 시집을 한 권 챙겨가도 좋을 분위기. 여럿이 간다 해도 옆자리에서 우수에 잠긴 사람을 슬쩍 훔쳐보며 호기심을 잠시 가질만한 분위기. 오래된 살림집을 개조해서 만들었기에 아늑하면서도 소위 말하는 ‘힙’이 공존하는 곳이다. 엘피가 놓여진 진열장을 쭉 훑어보다 보면, 흘러간 옛 가요부터 최신 인디, 팝까지 다양한 바이닐들 틈새로 사장님의 음악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보통 바이닐 바에서는 흘러간 시대의 마스터피스나 재발매 되는 엘피를 수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곳은 새로 발매되는 최신 음악의 엘피도 꾸준히 수집하고 있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공간이 멋진 가게인데 아쉽게도 곧 광안리로 이전한다. 부산에 가면 바로 가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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