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Angela Mar 25. 2020

당신의 서른을 기대해도 좋은  7가지 이유


서른이 되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 하도 겁을 주길래. 그러니까 서른은 청춘의 끝자락이자, 소란스러웠던 파티의 끝이다. 더 이상 새 교복, 새 학기, 첫 직장과 같은 설레는 이벤트는 없다. 계절로 치자면 처연한 늦여름이고, 더 이상 밤새 술을 마시는 게 귀엽게 여겨지지 않는 나이다. 무엇보다 이쯤 되면 인생에서 뭔가 하나쯤 달성해야만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벌써 서른이 다되어 간다니. 우리도 이제 늙었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어김없이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나왔다. 도대체 서른이 뭐길래. 분위기는 침울해졌다. 상상했던 서른과 현실의 서른이 얼마나 다른지, 피부의 회복 속도와 신진대사가 얼마나 예전 같지 않은지에 대한 우울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근데, 우리 21살에도 똑같은 한탄 했던 거 기억나?" 듣고 보니 그랬다. 21살 때도 한 번뿐인 스무 살이 지나갔다는 상실감을 나누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유치하고 귀여울 따름인데. 아마 마흔의 우리가 징징대는 지금의 우리를 본다면 기함을 토하겠지.  



젊은 시절이 항상 아름다웠다는 착각. 사람은 지나간 추억을 미화하기 마련이다.


젊음이 인생의 클라이맥스라는 생각은 어디서 온 걸까. 생각해보면 우리의 이십 대가 찬란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잠 못 들던 밤이 많았고, 우리는 스스로의 목소리를 듣기보다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낭비했었다. 순진함의 대가를 지불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젊은 시절, 고생이 고생 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우리 엄마는 50대에 접어든 지금의 삶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힘들게 돈을 모아 산 아파트 값은 올랐고, 40대가 돼서 힘들게 재취업한 회사에서는 뒤늦게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자식들도 제법 밥벌이를 하는 어른으로 자라나 걱정거리도 덜었다.  



그녀는 우직하고 근면한 농부처럼 삶을 대해왔고 중년이 되어 그 결실을 모조리 수확했다. 이십 년 전 사진 속 엄마의 모습은 분명 젊지만, 그녀는 어딘가 날카롭고 예민해 보인다. 하지만 오늘의 엄마는 여유로움이 넘친다. 그녀에게 있어 어제보다는 오늘이 인생의 황금기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저 저마다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저마다 각자의 속도로 인생을 살아간다. KFC의 창업자 할랜드 샌더스는 70세가 돼서야 후라이드 치킨 사업을 시작했다.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베라 왕은 스케이터이자 저널리스트였고 40세가 돼서야 패션 산업에 뛰어들었다. 미국 요리의 대모라고도 불리는 줄리아 차일드는 50세가 돼서야 첫 요리책을 발간했다. 



저마다 꽃피는 계절이 다르고, 누군가는 두 번씩 꽃을 피우기도 한다. 그렇기에 서른이 될 때까지 인생의 마일스톤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슬퍼할 일도 아니고, 누군가의 성공과 내 삶을 비교할 것도 없다. 우리는 그저 각기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밴쿠버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보다 17시간이 느리다. 그렇다고 해서 밴쿠버에게 왜 이렇게 늦장을 부리냐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 그저 당신만의 속도로 가면 된다.



누군가는 이제 서른이 됐으니 새로운 도전은 그만두고 슬슬 정착하고 결혼도 해야 하지 않겠냐고 걱정하는 척 오지랖을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인위적인지. 그리고 그 인위적인 숫자로 한 인간의 가능성의 한계를 재단하는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인지. 365일이 지나면 누구나 한 살을 먹는 개념 자체가 인간이 만든 것 아닌가. 누군가는 신체적 노화를 다른 사람보다 늦게 마주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정신적으로 더 성숙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고려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일흔의 나이에 새로운 꿈을 꾸고 누군가는 스물여덟에 늦었다며 포기한다. 둘 중에 청춘을 살고 있는 이는 누군가. 나이는 정말 인위적인 숫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무엇보다 무르익음이 좋다. 지금보다 젊었던 시절의 나는 걱정이 많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나를 갉아먹는 사람들을 끊어낼 용기가 없었으며, 나쁜 관계에서 나를 지키기보다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었다. 주머니 사정도 훨씬 나아졌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지금의 나인 게 좋다. 사실 누군가 십 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준다고 해도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지금의 경험과 통장잔고 역시 모조리 가져갈 수 있다면 모를까. 그러니까 우리는 나이 드는게 아니라 성숙해지는 것 뿐이다.



같은 이유로 나는 나의 서른이 기대된다. 아마 삶은 또다시 예상 못한 변화구를 던지고 때로는 내 노력마저 배신하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별 탈 없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어떻게든 나는 위기를 헤쳐나갈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는 걸. 그리고 우직하고 담담하게 삶을 대하면 분명 괜찮은 하루들이 선물처럼 올 것이란 것도.



우리의 서른을 기대해도 좋은 이유


1. 독이 되는 인간관계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개소리 구별 능력이 성장하며 소중한 인연이 누구인지 가릴 수 있게 된다.  


2.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기준과 주관이 생겨난다.


3. 스스로를 대접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남의 기분을 헤아리는 것만큼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4. 가고 싶지 않은 파티나 모임에 꾸역꾸역 가지 않아도 된다. 금요일 밤 편안한 소파에 누워 와인을 마시며 넷플릭스를 시청해도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5. 점차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게 된다. 전에는 결점을 돋보기로 확대해서 보며 우울해했다면 이제는 '그래서 뭐 이게 난데.'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배짱이 생긴다.


5.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30대 후반부터 사람들은 삶에 대한 만족도가 더욱 상승한다고 한다. 스트레스 레벨은 여전히 증가하지만, 이를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 역시 향상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삶이 나아질 거라는 사실은 증명되었다.


6. 무언가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도 담담해진다. 실수는 수습하면 되니까.


7. 여드름도 안 난다. (아마도)











Angela 소속 직업에세이스트
구독자 1,950
매거진의 이전글 불편한 여자가 될 용기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