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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 am I Jul 04. 2024

인공지능은 '적당히'라는 말을 알까?

AI야.. 네가 아직 내 마음을 알려면 멀었어..

2042년 어느 날

내가 차를 타고 내비게이션이 자동으로 켜진다. 인공지능 비서가 나에게 친절하게 인사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넨다. "오늘은 기분이 어떠 신가요. 00까지 가는 코스를 어떻게 안내해 드릴까요?" 나는 대답한다. "최대한 빠르게 가는 길 알려 줘". 내가 만약 주말에 드라이브를 떠난다면 "천천히 가도 되니까 안전한 길로 안내해 줘" 이런 식으로 대답하겠지. 카페에 들르니 사람대신 로봇 바리스타가 나를 맞는다. 나는 키오스크에 메뉴와 얼음양, 설탕량 등등을 입력하고 결제 방법을 선택한다. 미용실에 가서도 비슷하다. 나는 서비스 로봇에게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머리를 검색해 비슷한 걸 입력하고, 자르고 싶은 머리카락의 부분과 길이를 정확하게 입력한다. 로봇은 예상시간과 헤어 스타일링 뒤의 모습까지도 미리 보여준다.

이때쯤 되면 나는 아마도 문득 나는 과거에 미용사에게 "짧게 잘라주세요"라고 했다가, 끔찍하게 짧아진 내 머리카락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유명배우 스타일로 했다가 내 얼굴에 정말 맞지 않는 결과가 나와 경악을 금치 못했던 일도 함께 말이다. 그리고 그런 옛날 일들을 에피소드 삼아 웃으며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누군가 눈치껏 '적당히' 알아서 해줬던 시대가 조금은 그립기도 할 것 같다. 이런저런 맞춤형 질문조차도 귀찮아지는 날에 말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적당히, 네가 알아서..라는 말을 모르니 어쩌겠는가.

과거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서로 바라보면~~ 마음속에 있다는 걸' 이런 노래가 있을 때도 있었지..


병원은 어떨까? 그때도 의사가 나를 진료할까? 아마 지금 병원에 들어가 진행해야 하는 귀찮은 서류 작업이나 입원 절차 같은 것은 아마 줄어들 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아픈 내용을 이야기하면 AI가 진료 과를 자동으로 추천해 주고 최근 발견되고 있는 다양한 전염병에 관해서도 알려줄 것이다. 나는 최종적으로 의사와 면담을 예약하고 상담 비용을 결제한다.

학교도 마찬가지여서 교사란 직업 자체가 사라지진 않지만, 지금과 달리 아이들에 대한 평가와 진단등을 나에게 전송하는 역할을 주로 할 것 같다. 디지털 수업이 이루어지면 AI 튜터가 아이들의 수업 능력에 따라 맞춤학습을 제안하고 선생님은 아이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학부모에게 보내주는 식이다. 교사가 칠판 앞에 서서 한 시간 내내 목 아프게 강의하면서 수업하는 일은 그때쯤이면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



2024년의 평범한 하루

 저녁, 집에 돌아온 11살 딸이 침대에 앉아 내 노트북을 펴고 그림 그리는 작업에 빠져있다. 아이는 굳이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도 일러스트 프로그램을 열어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꾸미거나, 편집하는 일을 재미 삼아 잘하는 편이다. 나는 지난주에 학습목표로 세웠던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기'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딸은 "나는 지금 디지털 수업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건 본인이 본인에게 하는 수업이니 뭐.. 말은 잘하네. 나는 속으로 말한다. 나는 매일 하기로 되어있는 패드 학습기 숙제나 하라며 노트북을 끄게 했다. 마지못해 노트북을 접고 패드학습기를 가져온 아이는 밀려있는 '오늘의 학습'을 열어 과제를 확인한다. 날씨가 더워 자기 방에도 못 있겠다며 안방 에어컨을 켜고 침대에 딱 붙은 상태다. 그렇게 엎드려서 영어까지는 어떻게 들었는데 수학은 어떻게든 연습장에 수식을 써서 풀어야 하는 복잡한 평가형태다. 딸은 한숨을 쉬며 패드 연습장을 열어 터치펜으로 계산식을 끄적여본다. 그러나 졸음은 오고 자꾸 글씨는 흐트러진다. 엄마의 도움을 받아 겨우 마치니 점수가 50점이 나왔다. 그리고는 한마디 한다. "평소에 나는 이것보다 훨씬 잘하는데..."

자라고 이불을 펴주니 오히려 잠이 달아났나 보다. 나에게 계속해서 말을 붙인다. "내가 수학교실에서 선생님하고 앉아서 종이에 써서 풀 때는 이것보다 훨씬 잘 나온다고.."  뭐  '당연한 말이긴 하지'라고 해본다. 수학교실에 앉아서 긴장감을 갖고 수식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써서 푸는 것과 패드학습기에 터치펜으로 대충 끄적끄적 써서 푸는 것이 같을 순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면 지금 하는 패드 학습기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다. (전 과목 학습 예복습을 할 수 있다는 그 효율성에 끌려 선택한 것이긴 하다만)

시각화 작업이 중요한 도형문제나 순발력이 필요한 퀴즈 같은 것은 디지털 학습기의 장점이 있지만, 딸이 매번 한숨을 쉬며 끙끙거리는 것은 직접 더하고 빼고 나누고 계산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아마 지금 하는  문제들도 딸이 수학교실에 가서 수학문제집을 풀지 않았다면 풀기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패드학습기는 말 그대로 학습을 보조해 주는 도구이다.


나도 알아 네가 힘든걸..


예전에 어떤 수학 선생님께서 하신 말이 기억난다. 수학은 반드시 노트에 풀어야 한다고. 수학이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그 선생님이 보시기에 수학은 문제를 풀이하는 과정을 또박또박 적어나가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안 않다고 말한다. 수학을 싫어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책에 정성 들여 공식을 쓰는 것을 귀찮아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과정에 있는 받아 올림과 받아 내림을 배울 때만 해도 아이가 제일 어려워하는 것은 자릿수를 틀리지 않게 한 줄로 맞춰서 쓰는 것과 올림을 표시하는 숫자를 작게 써서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과정이었다. 그 수많은 반복과 노력은 옆에서 보기에도 괴로울 정도다. 지우개가 다 닳을 정도로 어떨 때는 숫자가 너무 커서 어떨 때는 너무 작아서 줄에 안 맞아서 틀리고 또 틀리고, 다시 쓰고.. 세상에 누가 구구단을 외우면 바보라고

했는가.. 그건 남의 나라이야기다. 구구단을 넘어서는 창의적인 머리를 가진 아이가 책상 앞에서 이렇고 있을 것 같은가. 연산을 어려워하는 아이에게 수학은 점점 커져가는 숫자 때문에 '충격과 공포'의 존재다. 암산도 창의 수학도 말만 멋지지 너무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교과서로만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할까? 손글씨는 완벽하지 않고, 타자도 익숙하지 않은 3학년 학생의 입장에서 교과서 병행이라는 게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딸은 잠자리에 누워 못다 한 말을 덧붙인다. "학교에서 지금도 패드를 써. 근데 그것만으로 수업하는 건 좀 어려울 것 같아. 눈이 아프거든. 만약 교과서가 없어진다면 우리 반 대부분이 안경부터 쓸 것 같아"

수업 중에 있었던 다른 이야기도 들려준다. "우리 반에는 절대 선생님 말을 안 듣는 애가 한 명 있거든, 뭘 시켜도 안 해. 그런데 걔가 패드로 선생님 몰래 유튜브 애니메이션을 2배속으로 보더라고.. 생각보다 꽤 많이 봤다는데 선생님이 뒤늦게 그걸 알게 됐어. 당연히 혼났지. 근데 인터넷으로 검색하라고 하고 애들이 딴짓을

해도 선생님이 다 아는 건 아니야"


오늘도 아침 뉴스를 보니, 어느 지자체에서 하는 디지털 교사 연수가 미국 여행을 겸한 외유성 논란으로 교육청이 수정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린다. 교사 개인 당 600만 원이 드는 이 미국 연수과정에 교사들은 UC로 시작하는 대학교도 가고 과학 수업이 열리는 현장에도 가본다는데, 여행일정도 겸해서다. 이 뉴스를 앍고 지금 세상에 디지털 교육을 공부하러 그 먼 곳까지 간다는 것에 왠지 모를 아이러니를 느꼈다. 여행을 기획한 교육청 담당자들은 직접 가서 볼 내용이 화상회의와 줌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고 만든 걸까. 애들한테는 그렇게 온라인 수업을 시켜놓고, 직접 가서 미국 교육 현장의 분위기를 느껴보라니. IT산업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는 실리콘 밸리에서 원하는 것을 과연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차라리 시간에 한국 교실에 적용가능한 수업모델을 만들어 여러 차례 테스트 해보고, 현장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 문제의 쟁점은 기기에 대한 노출의 정도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치는 디지털 문명을 넘어 학교가 학교다운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교육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책으로 하는 공부의 장점과 디지털학습기기의 활용을 균형을 이루게 할지. 선생님만 따라가는 수업 대신 자발성 있게 수업에 참여하게 할지, 보다 창의성 있는 공부를 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아이들이 입시와 경쟁이라는 명목 대신,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낮추고 교사와 학생이 서로 이해하면서 학습하는 학교. 그것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교육부는 디지털 교과서 도입하면서 학생들에게 직접 물어본 적이 있었던가.


답은 항상 우리 안에, 그리고 내 안에 있으니 말이다. 한국학생들에게 미국 학생들처럼 되지 말고 진짜 한국인 처럼 살라고, 정보화에서는 한국도 뒤지지 않으니 우리만의 길을 찾으라고. 교육계의 높으신 분들이 그렇게 말해주면 좋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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