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는 영화 소재로 널리 알려진 터라 어떤 캐릭터인지 대충 짐작은 가겠지만, 사전적으로는 “살아있는 시체”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창조좀비”는 무슨 말일까? 나무위키에 나온 용어설명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창조설 또는 지적설계를 광적으로 믿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이들을 지칭하는 말에는 여러 이명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창조좀비라는 통칭이 통용된다. 이유는 이러한 신봉자들의 행동 패턴이 마치 좀비와 같기 때문이다.”
이 용어 설명에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행동 패턴”뿐 아니라 “사고방식”도 좀비와 같다고 부가적으로 덧붙이고 싶다.
창조좀비 소굴은 “한국창조과학회”라는 사이비과학 단체다. 나는 자연과학 애호가로 자연과학이 특정 종교단체의 사기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개탄스럽게 여기는 사람 중 하나다.
호기심으로 유튜브에서 그들 동영상 몇 편 봤지만, 어그로를 끌기 위해 “과학”이라는 타이틀을 붙였을 뿐 논리라고는 쥐뿔도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그로에 끌려 시간 낭비한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창조좀비들이 배포한 유튜브 제목을 보면 대충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진실체크] 생물의 진화, 우연히 가능할까? - GOODTV
- [오색오감] 열역학 법칙은 진화를 부정한다 - 한윤봉 교수
- [오색오감] 유전자 연구를 통해 드러난 진화론의 허구 - 정대균 교수
- [창조과학세미나] 왜 창조인가? 창조론 VS 진화론 – 김명현 교수
- 창조론일 수밖에 없는 과학적 증거 – 김명현 교수
창조좀비 중에는 “석좌교수”라는 어마어마한 지식인도 있다. 그분 강의를 시청한 소감은 한마디로 “소설” 쓴다는 느낌이다. 이 정도 구라 실력이면 상대성이론으로 춘향전을 쓰고, 파동방정식으로 홍길동전을 쓰고도 남을 것 같다.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 나는 믿는다.
유튜브니까 망정이지 만일 공신력 있는 EBS 같은 공중파에서 그런 강의를 한다면, 그 방송사는 개망신을 당하고 당장 문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주장에 과학적으로 자신이 있으면 유튜브 강의할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과학저널 “Nature”나 “Science”에 논문으로 발표하면 끝나는 일이다.
명색이 학자라면 자신의 학문적 주장을 논문으로 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기존의 과학적인 지식을 뒤엎는 주장이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그들 주장이 과학적으로 틀림없는 사실이라면 노벨상은 따 놓은 당상이나 다름없다.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했는데 노벨상 10 개인들 못 받을 이유가 어디 있을까?
그들이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성경에 이러쿵저러쿵 쓰여 있다”는 것이 주장하는 논리의 전부다. 창조신화가 성경에만 있을까? 그들 논리대로라면 전 세계에 존재하는 창조신화는 모두 사실일 것이다.
하긴 뱀장어는 어류지만, 접두어가 뱀이고 모양도 뱀과 닮았으니 파충류라고 우기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창조좀비"라는 용어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분은 에너지(물질)가 생성소멸되지 않는 에너지보존법칙을 언급하면서 최초의 에너지 출처가 바로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그럼 “하나님은 어디서 왔나?”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분 주장과 반대로 에너지보존법칙은 창조신화가 웃기는 농담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했다면, 에너지보존(질량보존)적으로 하나님은 그냥 에너지 덩어리라는 얘기다. 덩어리가 인수분해된 상태가 곧 세상만물이라고 볼 수 있다. 최초의 에너지 덩어리, 현재까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빅뱅”이다.
말씀(언어)으로 세상 만물을 창조했다는 것이 과학적 논리에 부합되는 물리적인 현상인가? 내가 느끼는 그들 논리의 공통점은,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찾아내 이 책은 "연애소설"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논리가 눈곱만큼도 없는 이런 걸 과학이라고 “석좌교수”라는 분이 강의한다.
“태초”가 무엇인가? 물리적으로는 시공간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가 태초다. 하나님이고 뭐고 간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다. 디랙방정식은 “태초”가 무엇인지 잘 설명해 준다.
디랙방정식에는 물질에너지 총량은 항상 "0"이 되어야 한다는 해가 도출된다. 즉 (+) 물질이 있다면 반드시 (-) 물질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에너지 총합이 "0"이 유지된다는 것이 방정식의 요지다. 곧 우주의 존재 방식은 “물질-물질=0”이다.
우주는 無에서 생겨났으며, 우주를 창조한 神이 있다면, 그것은 無일 것이다. 無에서 (+) 물질과 (-) 물질이 나왔다. 이 둘의 총합은 “0”이 되면서 에너지보존법칙이 유지된다. 반물질(반입자) 발견은 디랙방정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한다. 디랙방정식 해석을 빌리면 “하나님= 無”일 것이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곧 하나님일 것이다.
고대 시대에 문자로 기록된 것과 현대 시대에 수학적으로 기술된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봐야 할까? 설마 “석좌교수”라는 분이 이 정도 판단력도 없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모르는 것인지 은폐하는 것인지 창조좀비는 실험실에서 진화의 과정이 확인되는 사실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다. 수십억 년의 진화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없지만, 생애주기가 짧은 생물을 대상으로 진화의 과정이 확인되고 있다.
렌스키 교수가 20년간 5만 세대 이상을 관찰한 대장균 진화실험이 대표적이다. 이 실험을 통해서 한 종이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조상과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진화해 간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1983년 노벨생리의학상은 모든 생물에게 유전자 변이가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밝혀낸 바바락 멕클린톡에게 수여되었다. 유전자 변이는 항생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개발한 지 90년이 지난 페니실린은 지금은 거의 무용지물이다. 이미 80% 세균에 내성이 생겨 약발이 들지 않는다. 세균들이 회피수단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즉 돌연변이한 것이다. 돌연변이가 무엇인가? 그 말 자체가 진화를 의미한다.
이외에도 진화론을 증명하는 사례는 화석을 비롯하여 비교해부학, 분자생물학 등 수없이 많다.
진화론 증거를 그들이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즉 진화론 증거가 되는 것은 은폐하고, 엉터리 논문이라도 반박될만한 자료를 좀비처럼 찾아다닌다.
반박자료라도 그나마 제대로 된 것을 소개하면 봐줄 만한데 그것도 아니다. 오류로 학계에서 퇴출되었거나 잘못된 것으로 판정된 과거의 자료, 근거 없는 자료를 사실인 것처럼 소개하는 정도가 전부다.
창조좀비의 진화론에 대한 지식은 “원숭이가 사람이 된다”는 정도 수준이다. 경희대 유전공학과 교수라는 분이 이런 주장을 해서 나는 충격받았다. 그는 원숭이가 사람이 되는 것을 진화론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원숭이와 사람은 진화의 최종단계(가지 끝)에 와 있는 생물형태다. 공통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지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고등학생에게도 이것은 상식이다. “원숭이가 사람이 된다”는 정도의 지식으로 진화론을 언급한다는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유전공학 교수라는 분은 생물체 유전자가 각기 다른 것이 곧 “창조의 증거”라고 말한다. 그러면 인간도 사람마다 유전자가 제각기 다른데, 지금 생존하고 있는 사람도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자궁 속에서 즉석밥 만들듯 창조해서 태어나는 것인가? 대체 무슨 논리인지 알 수가 없다. 논리가 없으면 "과학"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것이 학자의 기본적인 양심이다.
그는 헤켈 배아사진 조작사건이 마치 진화론 전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과대 포장한다, 사진 조작사건은 당사자가 주장한 “반복발생설”을 폐기할 뿐이다. 반복발생설은 조작으로 비판받기는 했어도 발생학적으로는 어느 정도 사실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진화 이론 중 하나일 뿐이다. 얼마나 아는 것이 없으면 그것 하나로 진화론은 거짓이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옳지 않은 것이 있으면 과학은 주저 없이 수정하거나 폐기한다. 검증과 증명은 곧 과학의 토대이자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이 믿을만한 것이다. 그러나 종교는 어떠한가?
동물(뱀)이 사람(하와)에게 말을 하는 내용도 폐기되지 않고 성경에 그대로 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고,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빵 몇 조각으로 오천명이 배 터지게 먹었다는 거짓말도 그대로 있다.
오류를 수정하면서 진보해 가는 것과, 오류를 맹신하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이 진실과 진리에 가까운 것인지 유치원생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친절하게 답해 줄 것이다.
그는 또 미생물에 빗대어 세포 1개짜리가 10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사람으로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도 처음에는 수정란 세포 1개 짜리였다. 따지고 보면 사람도 세포 1개에서 100조 개로 진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수정란 이전의 생식세포(정자, 난자)는 미생물이나 다름없는 형태였다. 생식세포 이전에는 단백질이나 아미노산 같은 화학물질 그 이상도 아니었다.
또한 바바락 멕클린톡이 밝힌 "트랜스포존"에 따르면 유전자 정보는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하다. 팥 심은 데 팥뿐만 아니라 콩도 나올 수 있다. 그녀가 노벨상 받은 이유가 "유전자 점프"를 발견했기 때문이 아닌가?
과학은 완벽하지 않지만 날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종교는 고대의 사고방식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창조과학에 거짓과 억지가 풍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대 신화를 현대과학으로 설명하려니 당연히 거짓과 억지, 짜깁기가 아니면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분은 또 뭐에 씌었는지 헛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면역시스템은 진화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미생물에는 면역시스템이 없다고 말한다. 제정신이 아닌 이상 유전공학 교수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믿어지지 않는다.
박테리오파지에 대항하기 위해 세균도 면역시스템이 있다. 침입한 바이러스 유전자 일부를 잘라내어 보관한 다음 그것과 같은 것이 침입할 때 바이러스 유전자를 잘라내 무력화시킨다. 이것은 인간의 항체면역과 같은 시스템이다. 이것을 응용한 것이 바로 크리스퍼(유전자가위) 기술이 아닌가?
유전공학 교수라는 사람이 “미생물에게는 면역시스템이 없다”고 거짓말을 용기있게 말하는 그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는 “유산균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건강을 위해 선물로 주신 위대하고 소중한 미생물”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자신이 개발한 유산균을 홍보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면역결핍증도 하나님의 은총인가? 에이즈나 코로나는 어떤가? 세상에 존재하는 불치병, 난치병들은 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나는 신이다, 신을 배신한 사람들”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을 시기에 나는 창조좀비에 대해서 개인적인 의견을 쓴 적이 있다. 지금도 그 당시 진단한 창조좀비 증상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인지부조화의 덫에 빠진 대표 주자는 “창조과학”을 믿는 사람들이다. 종교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 추상적 이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종교적 신념의 증거를 논리 혹은 과학에서 찾으려고 한다. “과학”이라는 객관적인 지식을 접목해 자신의 신념이 옳다는 것을 확신하려는 자기 합리화 때문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태생 자체가 맹목적인 것이다. 곰이 마늘 먹고 여자가 됐건, 김알지가 알에서 태어났건 논리를 따지지 않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다. 그리스로마신화도 고대 그리스에서는 하나의 종교였고 신앙의 대상이었다. 힌두교는 지금도 수많은 신들을 믿고 있다.
자신의 신앙을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따지려는 이유는, 그냥 믿기에는 뭔가 찜찜한 생각이 들고, 부정하자니 그동안 투자한 것이 아깝고... 결국에는 자신의 믿음을 합리화시키는 “자기 설득” 작업인 것이다. 심각한 인지부조화 증상이다. -인지부조화의 덫-』
기독교를 믿든 그리스로마신화를 믿든 종교적 신앙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이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문제는 거짓을 진실인 것처럼 포장하는 비양심에 있다. 특히 지식인들의 그러한 행태는 “범죄”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 지식이 없는 사람을 속이기 위한 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무엇을 믿든 자기 자신이 충실하게 믿고 생활하면 그만이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피켓 들고 다니며 남들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조용히 자기 혼자 충실하게 믿고 천국 가면 되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창조과학이든 사이비과학이든 자신 혼자 그렇게 굳게 믿으면 되는 일이다. 좀비는 좀비대로 인간은 인간대로 각자 자신의 신념대로 살면 된다. 유튜브를 이용해 사실적 근거가 없는 사이비지식을 유포할 것까지는 없을 것이다.
아직 학문적 지식이 미성숙한 어린 학생들이 약장수 농간에 넘어가 애꿎은 좀비가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