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밤. 학창 시절 한 번쯤 지새웠을 밤! 문학이 뭔지 몰라도 어쨌든 분위기가 죽여주던 밤!
"문학" 그 주제가 주는 무게 때문이었을까? 20년도 채 살지 못한 10대의 나이에 마치 인생을 다 살아버린 것처럼 원고지 칸 칸마다 엄숙하게 채워나갔던 인생론.
그러나 정작 쥐뿔도 없는 내용을 놓고 고치느라 글 한 줄에 원고지 한 장씩 소비해야만 했던, 문학의 밤이 주었던 펜 노동. 분위기에 휩쓸려 그냥 고독한 것 같았고 이유 없이 뭔가를 고민해야만 했던, 고민거리가 없어 고민스러웠던 철부지 문학 감성.
그때나 지금이나 문학이 뭔지 모르긴 마찬가지지만, 문학의 밤! 그 주제가 주는 무게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가슴속에 남아있다.
70년대에 나는 서울 변두리에 있는 중화중학교를 다녔다. “중화”라는 명칭 때문에 화교 학교로 오해하는 이도 있지만, 중랑천 인근에 “중화동”이라는 행정구역이 실제로 있다. 학교 소재지는 면목동인데 학교 명칭이 왜 “중화”인지 미스터리 한 일이다.
그 시절은 나에게 “죽음”에 대한 감성이 싹튼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 울타리 너머가 망우리 공동묘지였다. 수업 중에 멀리 언덕기슭을 지나는 상여를 간간이 목격하기도 했다.
한 번은 교실 가까운 곳에서 장례행렬이 지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큰길에 세워둔 영구차에서 시신 묻을 장소로 관을 운구하고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나는 그 행렬을 유심히 관찰했다.
좁은 길을 가느라 관은 비틀거렸고 뒤따르는 여인네들 걸음걸이에서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시신이 들어갈 묘지 자리에는 석회가루가 소복만큼이나 하얗게 빛났다.
관을 땅에 묻고 봉분을 올리기까지, 수업시간이었지만 창가에 한눈파는 아이들을 선생님은 제지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 어떤 교과서보다도 생생하고 명료한 생(生)의 논픽션, 학습 현장이었기 때문이리라.
망우리에는 밤나무가 많았다. 수업이 일찍 끝나는 토요일이면 몇 명이 모여 산에 오르곤 했다. 밤나무를 찾아 무덤을 넘고 넘어 산기슭을 헤맸다. 무덤가에서 쉬거나 오래된 비석을 살펴보기도 했다.
비석에는 생몰연대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때 처음 안 사실이지만, 죽은 날짜에는 사망이 아니라 “졸(卒)”이라고 새겨져 있다. 즉 그 날짜에 삶을 졸업했다는 뜻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졸업한 사람이 수두룩했다.
책가방에 주운 밤이 가득 찰 때쯤이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다. 길게 자란 억새풀 사이로 노랗게 내려앉은 태양 빛, 모든 죽음도 다소곳하고 평화롭게 보이던 그 언덕, 묘지에서 저물어 가던 노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때의 모습은 “노스탤지어” 감정을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을 떠나본 적이 없음에도 왠지 멀리 타향에 온 듯한, 실체를 알 수 없는 쓸쓸함과 그리움이 가슴속에 밀려왔다. 삶도 하나의 여행이라는 인생에 대한 문학적 정의, 그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어쩌면 문학적 감성, 그 체험이 너무도 일찍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사춘기 십 대의 어린 나이에 그 누구도 고민거리가 될 것이라 생각지도 않을 삶과 죽음, 시험 기간에도 공부보다는 그 허망한 추상화를 생각하고 상상하느라 괜한 우울증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때 느꼈던 죽음에 대한 감촉은 “낙엽”과 같은 것이었다. 잡초가 무성한 무덤이나 낙엽무더기가 무엇이 다를까? 회의주의도 염세주의도 아닌 지극히 사실주의적 감정, 그곳에서 각인되었던 정서는 다름 아닌 자연주의 빛깔이었다.
고치에서 탈피하려는 애벌레처럼, 가을은 감정에 갇혀 있는 언어 신경을 자극한다. 문학은 언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감정의 유기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문학은 허전한 그 무엇으로부터 탈피하려는 갈망을 갖는다. 갈망의 끝도 허전한 그 무엇이겠지만, 그러나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
살아 있는 한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기에, 삶의 정서가 가을에 잉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문학의 본능일 것이다.
공동묘지와 이웃하여 지낸 3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그로부터 50년의 세월이 지났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글귀가 가깝게 와닿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살면서 실패를 겪거나 잃어버린 것이 많았다. 한때는 문학(신춘문예)에 도전해 보기도 했지만, 그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지금은 잡담을 쓰고 있다.
그러나 잃어버리지 않은 것도 하나는 있다. 이유 없이 뭔가를 고민해야만 했던, 고민거리가 없어 고민스러웠던 철부지 문학 감성, 거머리처럼 나의 삶에 붙어있던 문학의 밤이 주었던 노스탤지어 감정.
모든 것과 이별한 지금, 이제는 아무도 없는 고요한 방에서 홀로 “문학의 밤” 행사를 치른다. 책상에 촛불을 밝히고, 조촐한 술과 안주, 모니터에는 정겹게 타오르는 모닥불 배경화면을 준비해 두었다.
전자책으로 박인환 시를 낭송했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이 대목에서 소주 한 잔을 마셨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이 대목에서 술 한 병이 비워졌다.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이 대목에서는,술병과 더불어 나도 쓰러졌다.
낙엽이 우아하게 떨어지든 추하게 떨어지든 흙으로 돌아가기는 둘 다 마찬가지지만, 아름답게 떨어지길 가을은 우리에게 제안한다. 결과는 같아도 과정은 예술작품처럼.
가을이 오색창연 아름다운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있을 때 부정적인 것들도 집어삼키게 된다. 무덤도 저녁노을에서는평화롭게 보이듯이. 나 또한 그렇게 되기를 희망해 본다.
쌀쌀한 날씨, 그러고 보니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 며칠 남지 않았다. 이제 곧 북풍의 손님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에 남아있는 문학의 온기로 인해 추운 겨울, 다시금 꿋꿋하게 견뎌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