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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잡담 Jun 26. 2023

죄와 벌

죄와 벌          


어제오늘 뜨거운 태양! 기후 온난화가 아니라 태양이 지구를 공격하는 전투적인 상황이다. 겨울왕국이라는 시베리아도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으로 자연발화가 일어나 때아닌 산불로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땅속 마그마도 인간을 향해 공격해 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인도에선 아스팔트가 녹아 자동차들이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마치 도로에 접착제를 발라놓은 것 같았다고. 

그러나 아직 더위는 시작도 안 했다. 초복이 보름이나 남았다. 처서쯤 되어야 더위가 끝물일 텐데 이것도 두 달이나 남았다. 세월이 흐르기는 흘렀나 보다. 세상이 변하고 날씨도 변하고 체감도 변했다.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없었던 시대에는 삼복더위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하긴 그때는 지금의 시대만큼 그다지 덥지 않았을 것이다. 화석연료가 내뿜는 기후 온난화가 지금보다는 적었을 테니.

그렇다 해도 체온을 넘나드는 더위는 육체는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사이코 발작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뭔가 일을 저지르고 싶은 심리! 라스콜리니프 충동? "죄와 벌" 첫 구절.     


『그날 오후는 짜증스럽고 뜨거웠다. 건물은 열기로 달구어져 있고 거리의 사람들은 마지못해 느릿느릿 거닌다. 숨쉬기도 벅찬 좁은 자취방에서 그는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마침내 라스콜리니프는 더위에 마비된 몸을 이끌고 자취방을 나선다. 그는 혼미하게 비틀거리며 거리를 걷는다.』     


작가는 이미 라스콜리니프가 뭔 일을 저지를 것이라는 사실을 그 첫 구절에서 넌지시 암시하고 있다.

만일 그날이 선선한 가을 날씨었다면 라스콜리니프는 결코 전당포 노파를 죽이지 않았으리라. 갑작스러운 행동이나 충동은 사람의 순수한 의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배후에는 사회나 문화, 기후 같은 주변 환경이 행동 유발의 공범이다.

그러지 않아도 뭔 일을 저지르고 싶은 라스콜리니프에게 짜증 나는 더위가 불 지핀 것이다. 이러한 라스콜리니프 충동은 일상에서 흔히 일어난다. 사람이 아니라 분위기가 일을 저지른다. 크리스마스나 바캉스 baby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그러한 심리적 충동을 살인사건의 모티브로 잡은 것 같다.   

  

쪼달리는 돈 때문에 소설을 써야 했던 도스토옙스키처럼 라스콜리니프도 돈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다. 물론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전당포 노파를 죽인 이유가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라스콜리니프 자기 합리화를 작가는 자세하게 밝힌다.

그러나 라스콜리니프 자기 합리화는 법학 공부를 하는 인텔리가 할 수 있는 합리적인 내용은 아니다. 고작 노파 한 명을 죽임으로써 나폴레옹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작가는 라스콜리니스 살인을 잘못된 그의 합리화로 책임을 몰아가지만, 내가 생각하는 살인 동기는 “충동”이다. 자기 합리화는 행동이 결정된 다음에 따라오는 핑계일 뿐이다.    

 

모든 범죄의 원인은 유아적 본능에 있다. 아기들 행동을 보면 충동적이다. 생각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범죄자가 유아와 다른 점은 “자기 합리화”라는 생각 없는 생각이 있을 뿐이다.

“욱”하는 감정은 자연적인 심리 현상이다. 이것은 배설 행위와 같다. 스트레스도 배설하지 않으면 어떤 방식이든 문제가 생긴다. 생리적 현상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관리하는 것은 개인의 통제능력에 달려있다. 유아에게 기저귀를 채우는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닌가? 아기에게는 통제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범죄도 유아의 경우와 똑같다. 육체적인가 심리적인가 차이만 있을 뿐이다.     


문제는, 심리 상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적장애인이나 정신질환자가 아니면 정신 연령이 어떤지 판단하기 어렵다.

최근에 칼부림 사건을 보도한 뉴스를 봤다. 경기도 광주 한 빌라에서 주차 문제로 시비가 붙은 끝에 70대 노인이 같은 빌라에 사는 50대 남성에게 일본도를 휘둘렀다. 50대 남성은 오른손 손목이 잘렸고 과다 출혈 끝에 병원에서 사망했다. 이 노인은 과거 여러 차례 TV에 나온 무술인으로 알려졌고, 아이들에게 인성과 예절교육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나이 70은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나이 많고 학식 높다고 품성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정신적 미숙아들은 종교나 정치 유력인사에서 가끔 등장한다. 성범죄를 저지르는 종교지도자들, 처음에 뻔뻔하다가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는 “죄송하다”로 끝나는 정치인들이 대표적이다.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하는 것은 어린 아이나 원숭이도 할 수 있다. 책임의식 없는 본능적 행위가 정당화되는 곳은 사바나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곳에서는 말초신경만 제대로 작동하면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바퀴벌레나 땅강아지는 두뇌활동이 필요 없다. 충실하게 먹이활동만 잘하다 죽으면 그만이다. 인생의 관조라는 철학적인 생각은 그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감각적 욕망을 채우는 것이 그들에게는 최상의 목표다. 벌레들이 그렇게 살고 박테리아도 그렇게 살아간다.     


라스콜리니프가 소냐에게 자신의 범죄 사실을 고백한 것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불편한 심리 때문이지, 노파를 죽인 것에 대한 참회 때문은 아니었다. 시베리아 감옥에서도 그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았다. 오히려 자수한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그가 진심으로 죄를 참회하고 뉘우치게 된 것은 어떤 정신적인 체험을 겪고부터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수용소 강 건너편을 바라보게 된다. 그곳은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구질구질한 모습과 다른 평온한 마을이었다.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그곳을 바라보며 그는 문득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인생의 의미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지대가 높은 강기슭에서는 탁 트인 주변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맞은편 강가에서 노랫소리가 가물가물 들려오고 있었다. 그곳에는 자유가 있었고, 이곳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또한 그곳은 마치 시간마저 멈추어 버려서 아브라함과 그의 목축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라스콜리니프는 평생 노래를 부르거나 들어 본 적이 없는 삶을 살았다. 가난과 무기력, 부패와 핍박, 죽기 아니면 살기와 다를 바 없는 정글 같은 수용소, 우울한 삶의 현장에서 바라본 강 건너편 세계는 그야말로 천국의 모습 그 자체였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새로운 인생의 관조를 통해 라스콜리니프 눈을 뜨게 했다. 사실 라스콜리니프에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수형 기간도 7년이나 남아 있었다. 그런 그가 새로운 의식에 눈을 뜨게 된 것은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있을 때 부정적인 것들도 집어삼키게 된다. 라스콜리니프가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소냐에게 진실한 사랑을 느끼게 된 시점이 바로 아름다움의 실체를 직관했을 때였다. 온몸으로 그것을 느꼈을 때이다.          

이 작품에서 도스토옙스키가 말한 죄에 대한 벌은 “법의 처분”에 앞서 인생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실제로 라스콜리니프는 노파를 죽인 이후 극심한 심리불안 상태로 살아간다. 소냐를 만난 이후에도 하수구 같은 삶에 대한 인식은 변함이 없었다.

하수구 같은 삶에 익숙해지면 하수구 같은 인생을 살게 된다. 바퀴벌레나 땅강아지처럼 먹이활동만 하다 가는 무의미한 삶이 죄에 대한 대가, 즉 그것이 벌이다. 연쇄 살인범이 인생의 참된 행복을 얻기는 땅강아지가 햇빛과 친구가 되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아마도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초저녁에 산책을 나왔다. 주말 저녁이면 장승포 수변공원은 사람들로 붐빈다. 시원한 바닷바람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원에 포장마차가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산책하는 젊은 커플을 보며 나 또한 젊었을 때의 추억과 함께 걷는다.

해안가 돌계단에 앉아 어둠에 잠긴 바다를 바라본다. 라스콜리니프가 바라본 수용소 건너편 강가처럼, 바다는 언제나 평온하고 어머니 품처럼 느껴진다. 그때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젊은이 핸드폰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도 들어봤던 노래다.          


- 어둠 그 별빛 – 

    

어둠은 당신의 숨소리처럼

가만히 다가와 나를 감싸고

별빛은 어둠을 뚫고 내려와

무거운 내 마음 투명하게 해    

 

어둠은 당신의 손수건처럼

말없이 내 눈물 닦아주고

별빛은 저 하늘 끝에서 내려와

거친 내 마음 평화롭게 해   

  

땅 위에 모든 것 깊이 잠들고

그 어둠 그 별빛

그댈 향한 내 그리움 달래어주네

꿈속에서 느꼈던 그대 손길처럼

당신은 그렇게도 멀리서

밤마다 내게 어둠을 내려주네

밤마다 내게 별빛을 보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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