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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짓제주 Nov 13. 2018

제주살이, 시행착오를 팝니다.

제주 이주를 꿈꾸는 이들에게 ...


문제가 있다면 돈을 벌 수 있다. 

여행말고 창업


“엄마, 나 5일뒤에 제주도 가”

“여행가니?”

“아니, 살러가" 

제주 이주를 결심하고 떠나기 5일 전, 부모님과 아침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제주로 3박 4일 여행이라도 다녀오겠다는 듯한 아들의 무심한 선언에 대한민국 부모의 자식 걱정 1순위 레퍼토리가 귀에 꽂혔다. 

“아들, 거기서 뭐 먹고 살려고? 일 할 곳은 있는 거니?” 

출국 5일 전 통보에 날아든 대답치고는 양호한 편이라 생각했다. 학창시절부터 뜬금없는 마이웨이 선언에 부모님도 이제 익숙해지신 것이다.  

“내가 언제 일할 곳이 있어야 일했나요. 그곳에 가서 만들면 되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창업만 해봤을 뿐, 취직의 경험이 없는 나에게 ‘일할 곳'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었다. 평온한 아들의 얼굴에서, 준비된 그 어떤 잔소리도 먹히지 않을 것을 직감하신 어머니는 조용히 숟가락을 들어 밥을 마저 드셨다. 나 닮은 아들을 낳으면, 그때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로 하고 나는 제주로 떠났다.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두려움 보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가야하는 이유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제주하면 누구나 여행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인지 ‘제주 스타트업’이라는 단어의 조합은 왠지 ‘효자 이광석’처럼 어색해 보이기도 한다. 서울에 비할까 만은 제주에도 스타트업의 수는 적지 않으며 창업 생태계는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다. 스타트업 볼모지, 제주를 짧은 기간 내 짜임새 있는 ‘판'으로 만든 데에는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의 역할이 컸다. 초기3년여는 정부 기관 주도로 제주의 창업 생태계가 만들어졌다면, 제주스타트업협회(이하, JSA) 설립, 비즈니스 네트워킹 모임 증가, 투자 유치 사례 증가등 민간의 자생적 움직임과 성과들도 활발해지고 있다. 2018년 현재 JSA에 등록된 회원사는 120여개에 이른다. 


스타트업의 본질은 문제 해결이다. 내가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는데 누군가 해결하고 있다면 그곳에서 함께 해결하면 되고, 아직 누구도 해결하고 있지 않다면 스스로 해결하면 된다. 전자가 취업이고 후자가 창업이다. 취업이냐 창업이냐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까지 확대하기보다는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무엇인지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 나는 창업을 ‘문제 해결의 가장 적극적 수단'이라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수익으로 바꿔내는 일이 바로 스타트업의 일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제주에는 문제가 많다. 어머니께 당당하게 소리친 데에는 나름의 근거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그간의 경험에 의한 확신이었다. 


“제주에 가서 카페나 할까?” 

어느 잡지의 제주관련 섹션에서 본 타이틀이다. 이는 제주 이주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법한 생각이다. 2010년 즈음이었다면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 되었을지도 모른다. 제주 시골의 한적한 곳에는 카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여행자들이 카페가 없어서 불편한 일은 거의 없다. 격화된 경쟁 상황에서는 어떤 카페를 차릴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차별화하는 것. 가령 ‘감귤 창고를 개조한 제주 분위기 물씬 나는’ 카페와 같은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는데 제주는 이제 이 마저도 쉽지 않다. 제주 전역에는 1,800여개의 다양한 컨셉의 카페가 영업 중이다. 들판에 흰 색, 검은 색의 젖소만 있을 때라야, 보라 빛 소가 눈에 띄지만 온통 무지개 빛깔 소들이 예쁨을 뽐낸다면 차별화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제주에서 카페를 하려는 건지 말이다.



젊은 이주자들의 절실한 밤, 심야식당을 만들다.

새로운 고객의 탄생

     

2016년 봄, 제주로 혼자 여행을떠나왔을 때의 일이다. 잠시 멈춤의 시간을 통해 회사의 비전을 점검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었기에 딱히 코스를 정하진 않았다. 제주를 떠돌다가 끼니를해결하지 못한 채, 저녁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평대리 일대를 한참을 헤집고 다니다가 노란 불빛이 빼꼼히 삐져나온 가게를 발견했다. 제주에서저녁 시간에 문 연 가게를, 그것도 시골 마을에서 찾아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가운 마음에 장르불문하고 일단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식당이라기 보다는 술집스러운 분위기였다. 식사가 될 만한 안주를 주문하고 앉아 가게를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주인장에게 물었다. 

“여긴 몇시까지 하나요?”

“그때그때 좀 다르긴한데...밤11시 정도…?” 주인장이 말끝을 흐렸다. 

“늦게까지도 손님이 많이 있나봐요?”

“돈 벌려고 하는건 아니에요~” 약간의걱정스런 눈빛을 알아 채셨는지 나를 안심시키듯 대답하셨다.  

“그냥 이웃들이랑 밤에 같이 놀기도할겸 장사하는 거에요. 심야식당같은... 주변에 이주해오신 분들이 꽤 있는데 동네 사랑방처럼 자주 들르세요.”

원래는 분식집으로 운영되는 가게인데오후에 문을 닫으면 심야식당으로 변신. 저녁부터 밤 늦게까지 운영을 한다고 했다. 습관적으로 머릿속으로 매출을 계산하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주인장은 시종일관 자유로워 보였다. 아침에 숙소를 나오는데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요즘 평대리에 젊은 분들이 꽤 많이이주와서 동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2004년,다음 커뮤니케이션즈는 본사 이전을 위해 지방의 몇몇 도시들을 물색하였고 결국 제주를 선택했다. 이후 넥슨을 포함한 몇몇 IT회사들이 제주로 본사를이전하면서 구매력을 갖춘 젊은 세대가 제주로 많이 유입되었다. 2008년 올레길이 개장하고, 2010년 가수 이효리씨의 이주가 큰 이슈가 되면서개인의 삶을 우선시하는 젊은 세대의 이주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제주의 비밀스러운 곳곳, 이곳에서 살아가는 유명 연예인의삶은 바쁜 도시의 삶과 경쟁에 지친 이들에게 ‘제주살이' 열풍을 몰고 왔다. 그 결과, 2007년을 기점으로 제주의인구는 약 10만명 이상이 증가하여 현재는 67만명에 육박한다. 좀 더 와닿는 숫자를 말하자면, 매달 1,000명 이상이 제주로 이주하고 있다.제주의 인구 증가율은 부동의 전국 1위이다. 

제주 이주의 유형을 살펴보면, 은퇴후의 실버라이프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은퇴형 이주), 자녀 교육을 위해 제주로 온 사람들(거주형 이주)도 있지만 새로운 일과 삶을 찾아 온 사람들(사업형이주)이 가장 많다. 제주에 개인 사업자 등록수는 5만건을 넘어섰다. 경제활동 인구 3~4명중에 한명은 사업을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제주에 여행와서올레길을 걸으며 지금껏 만나보지 못했던 제주스러운 공간들에 매료된 도시인들에게 제주의 ‘월세같은 연세’는 내 가게 마련의 꿈을 이룰수 있게 했다.그 결과, 서울의 뜨는 동네에나 있을 법한 힙한 카페, 식당, 게스트하우스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제주 이주 후, 밤 9시면 슬슬 잠자리에들 준비를 한다. 일찍 자는 이유는 건강한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 반, 잠자는 일 말고는 딱히 할 것이없는 제주의 고요한 밤 때문인 것 반이다.서울의 밤 문화가 그리운 젊은 이주민들의 절실함이 만들어 낸 평대리의 심야식당은 이주민 커뮤니티의 아지트격이었고 지금은 이주민이 많이 사는 지역을중심으로 밤 늦도록 운영하는 가게들이 종종 생겨나면서 이주자뿐만 아니라 밤이 심심한 여행자들도 찾는 매력적인 여행 콘텐츠가 되고 있다. 



이주하기 전 알아두면 좋은 것들

제주 먹고사니즘에 대하여


2016년 6월 제주 입도 후, 맨땅에서부터 먹고사니즘의 종합 문제 세트를 하나씩 열어가다 보니 이주민이라기보다는 한달살이를 연장하고 있는 체류자 정도(?)였다. 제주에 아는 사람도, 아는 사람의 친구도 없었기에 오기 전에 가장 먼저 한 일이 페이스북 검색 창에 '제주'라고 입력한 후, 검색된 사람들에게 연락하는 일이었다. 이 분들과의 연결이 연결을 낳아 다행히 제주에서 좋은 기회들을 얻었고 덕분에 체류자에서 어엿한 이주민이 될 수 있었다. 


SNS와 오프라인 모임에서 워낙에 제주에 대해 말하고 다녀서인지 지인들 사이에서 "제주 하면 이광석이 떠오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평소 잘 참여도 하지 않는 지인들과의 단톡 방에서 제주 이야기가 나오면 #제주 해시태그라도 된 것처럼 불쑥 나타나 제주에 대한 상담을 해주곤 했다. 뭘 많이 알아서 그랬을까, 그냥 어릴 때부터 오지랖은 영남권에서도 손에 꼽히는 아이였는데 제주가 너무 좋아 가만 있질 못하고 이주유발러로 활동했다. 작년에는 제주에 '체류인 듯 여행인 듯' 살아서 인지 여행에 대한 문의가 폭주했었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해보니 신기하게도 요즘은 뚝 끊겼다. 대신 요즘은 '제주살이'에 대해 꽤 문의가 많다. 


1. 일

두 말하면 잔소리지, 아무렴 이보다 더 궁금한 게 있을까. '제주에 가서 살고 싶다...'하는 사람들 중 100에 100은 '근데 가서 뭐해서 먹고 살지'라는 고민을 가장 먼저 하게 될 것이다. 다행히 일자리는 많다. 더 다행인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제주에는 문제가 많다. 굉장히 많다. 문제를 해결하면 돈이 된다. 문제를 해결해보라고 지원해주는 기관과 예산도 많다. 서울에도 문제는 많은데, 거긴 해결하겠다는 사람도 너무 많다. 


제주 입도의 시작은 단연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다. 홍보가 아니라 정보고 옵션이 아니라 필수다. 제주다움이라는 한 달 체류지원 프로그램이 있고 그 외에도 지역생활문화 혁신가 사업, 입주기업 인큐베이팅 등 제주에서 '일'할때 필요한 주옥같은 정보와 프로그램들이 가득하다. 이런 프로그램에 선뜻 참여가 꺼려진다면 그냥 3층(코워킹 스페이스)에서 노트북을 펴놓고 무료 커피를 마시면 된다. 그걸 일주일 정도 하고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 질문을 던질 것이다. 거기서부터 다음 연결은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감귤만큼 무수히 많아진다. 정부 사업과 기관과의 프로젝트에 신물이 난 나지만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는 기관계의 스타트업이니 그냥 믿고 가면 된다.


2. 집

제주에 오는 사람들은 일만 보고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좋은 일자리가 있어도 사는 곳에 대한 고민이 앞서기도 한다. 지인(회사 대표)들의 인재 추천 요청을 많이 받거니와 직접 채용을 하며 느낀 점은 워라밸의 기대치에서 라이프의 비중이 더 높거나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제주시에 이주 와서 사는 분들이 종종 '제주에 사는 것 같지 않다.'라고 말한다. 제주시에는 최근 버스 중앙차로가 생기면서 더욱 실감 나는 서울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라이프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집일 텐데, '집 값이 서울이라던데'라는 말은 잠시 넣어두는 것이 좋다. 이런 식의 뭉뚱그려 일반화시킨 말들은 그냥 버리는 게 상책이다. 정확히는 '집 값이 강남 아파트 못지않은 곳도 있다.'이다. 교통과 학군이 좋고 주변 인프라가 잘된 곳은 당연히 비싼데 거기가 바로 '제주에 사는 것 같지 않다.'하는 말이 나오는 곳이다. 서울이랑 비교도 안되게 낮은 비용으로 말도 안 되게 생활의 질이 높아질 수 있는데 이 말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가 필요하다. 너무 식상한가. 내 경우에는 이렇게 표현한다. 불편함이 즐거운 삶. 불편함을 찾으면 싼값에 행복해질 수 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회사는 어떤 것을 더 편리하게 만드는 댓가로 돈을 받기 때문이다.  

이주 상담을 하다보면 단도직입적으로 부동산을 어디서 보는지 자주 물어보시곤 한다. 그때마다 가장 먼저 드리는 말씀은 어디서 보는가 보다 얼마나 보는가가 중요하다는 것. 발품을 많이 팔수록 좋은 집을 얻는다는 말은 발품에 나의 기회비용을 포함시키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냥 인터넷으로 많이 보고 구한다. 다행히 제주의 인터넷 속도는 걸음보다 훨씬 빠르다. 수년간 살 집을 단박에 구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제주도의 면적은 놀랍게도(?) 서울의 2.5배이고, 사면이 바다인 섬이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 한가운데 떡하니 있어서 각 지역마다 주거환경이 천차만별이다. 입도 후 1년은 뽑기 한다 생각하고 맘 편하게 집을 고른 후에 천천히 제주를 익히는 게 효율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 바다가 보이는 집이 로망이라면 제습기를 물먹는 하마처럼 많이 사다 놓아야 할 것이다. 거실을 걸었을 뿐인데 물 위를 걷는 기적을 느낄 수 있다.


Tip. 부동산은 제주 교차로, 제주오일장신문, 제주맘 카페, 제사모를 번갈아 가면서 본다. 부동산 중개업을 한 게 아니라면 자주 봐야 한다. 아니 매일 봐야 한다. 싼 매물이 있나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데이터를 살펴야 한다. 그래야 시세와 변동의 흐름을 익힐 수 있다. 제주의 부동산은 지금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데이터에는 답이 있다.


 3. 음식

'제주도는 물가가 비싸다.'는 명제도 이주에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라이프스타일에 달려 있는 것이다. 제주 여행자가 먹는 음식과 제주 도민이 먹는 음식은 다르다. 입도 초반에는 여행 온 친구들과 동행하느라 식비 지출이 어마어마했다. 주변에서 제주도에 살면 '해산물을 많이 먹을 수 있어 좋겠다, 흑돼지 많이 먹겠네.' 하는데 입도 후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산채 비빔밥이다. 흑돼지는 여행자가 즐겨먹는 돼지고 제주도민인 나는 백돼지를 먹는다. 요즘은 장을 봐서 집에서 요리를 하기 때문에 서울 사람처럼 이마트를 애용한다. 체감상 제주에서 절대적으로 싼 건 딱 두 가지인 것 같다. 귤과 삼다수. 과일에 환장하는 나는 사계절 다채로운 과일(과일이 비쌈) 대신 겨울에 귤을 손이 노래지도록 먹는다.


Tip. 오일장을 이용하면 좋다. 각 시, 읍마다 오일장이 있다. 처음에는 식재료만 사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옷과 신발을 그곳에서 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주 힙스터는 오일장에서 옷을 산다. 돈이 없어 그러냐고? 수백 평 타운하우스 살아도 거기서 옷 산다. 내 기준대로 삶을 살아나가는 것. 바로 제주에서 사는 이유이다.  


불편함이 즐거운 삶, 제주

제주는 정말 밤에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심심한 건 도시의 삶일 때이다. 그걸 바라고 오면 계속 심심할 것이다. 밤에 술을 마셔야 하면 집에서 술을 담궈 마실 수도 있고 술을 끊을 수도 있다. 문화 생활이 그리우면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산으로 바다로 나가면 된다. 나의 라이프 스타일에서 활동What이 아니라 이유Why를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서울에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퇴근 후, 크로스 핏 짐을 다녔는데 여기서는 일의 스트레스가 거의 없고 운동이 필요하면 집 앞을 달리면 된다. 애월 바닷가를 옆에 끼고 달릴 수 있는 이곳보다 좋은 GYM이 도시에 있었던가. 제주에 와서 발견한 놀라움 하나, 제주에서는 시간이 많아서 책을 더 읽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덜 읽힌다. 생각해보니 이유는 두 가지. 첫째, 제주에서는 보고 싶은 책이 있을 뿐 봐야 하는 책은 없기 때문이다. 무한경쟁, 자기계발을 재촉하는 환경에서 읽었던(이라 쓰고 읽음을 강요당했던) 경제/경영 책들을 지난 1년 6개월간 한권도 찾지 않았다. 두 번째가 중요한데 위안, 용기, 지혜 등의 정서적 자양분을 책 대신 매일 보는 하늘에서 얻고 있었다는 것.

불편함은 편리함을 좇을 때 생기는 것이다. 제주에서의 시간은 그 불편함을 즐거움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말이 통하는 외국, 제주

제주는 외부에서 보는 것과 내부에서 살면서 체감하는 것의 온도차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우리가 외국에서 무언가를 할 때는 제로 베이스에서 생각하지만 제주는 꽤 많은 선입견과 고정관념들을 가지고 접근하는 경우들이 많다. 나 역시 그러했고 1년여 동안 온갖 실패를 경험하고서 ‘제주는 말이 통하는 외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단순히 알아듣기 어려운 사투리를 쓰는 지방 정도로 생각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그냥 모든 것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일례로 어느 날,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일하던 중에 옆에 있던 (제주도민)지인에게 "나 오후에는 성산 가야 돼"라고 했더니 무슨 일로 해외를 나가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더라. 웃고 말일이 아니라 사업을 한다면, 지금 이 상황은 매우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제주는 고개를 젖히지 않아도 항상 하늘을 볼 수 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늘 하늘을 눈에 담으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제주에 와서 알게됐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제주에서 살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광석

제주 이주 3년차, 창업가이자 기획자이자 디자이너이며 현재는 원도심에서 로컬 커뮤니티 호스텔을 만들고 있습니다.

http://jessipop.com/

https://www.facebook.com/tangoquane












제주 스토리 고팡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제주의 숨겨진 콘텐츠를 기획, 관광객 및 도민들에게 심도 있는 콘텐츠를 풀어 설명줄 제주를 가장 잘 아는 각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합니다. 고팡은 제주어로 창고를 말합니다.
제주도 공식관광 포털 비짓제주(www.visitjej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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