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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ka Feb 06. 2022

우리는 왜 여수에서 푸드파이터가 되었나

원래 그렇게 많이 먹는 스타일은 아닌데..




아침부터 순천만 습지에서 찬바람이며 소나기에 온 몸의 에너지를 뺏긴 우리는 여수로 향했다. 다음 숙소를 여수 소노캄으로 잡았으므로 근방에 있는 여수의 낭만포차에서 저녁을 해결햘 요량이었다. 그러나 아침 일찍부터 빨빨대고 돌아다닌 탓에 아직 날이 밝았다. 소나기와 먹구름까지 걷히고 나니 더 밝아진 듯했다. 습지에서의 점심이 조금 부족했기 때문에 숙소로 향하는 길에 라도 먹을 겸 남편은 운전을 하고, 나는 굴요리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아보았다. 11월엔 굴이 제철이라나.


숙소 근처에 있는 '유자가든'이라는 식당이 눈에 띄었다. 굴구이로 유명하다는데 어째서 이름이 유자가든일까? 마당에 유자나무를 키우시나? 생각해보니 제주도에서 하귤나무도 보고 스페인에서 오렌지나무도 봤는데 유자나무는 한 번도 못봤네? 하는 얘기를 하며 네비게이션의 목적지를 바꾸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는 길에, 노랗기도 하고 주황빛도 조금 도는, 레몬보다는 좀 큰 열매가 매달린 나무들을 봤다. 와, 너무 예쁘다. 유자나무인가봐!




오픈한지 얼마 안된듯한 깔끔하고 번쩍이는 유자가든 2호점으로 들어갔다. 2호점에서는 게장정식만 먹을 수 있고 굴요리는 맞은편에 1호점으로 가야한단다. 전라남도 여수시 만흥동 100, 유자가든.



일단 게장정식을 시켰다. 나는 사실 게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반찬으로 나와도 양념맛만 슬쩍 보고 결국 게는 내려놓는다. 그런데 며칠 전 담양 옥빈관에서 양념게장의 맛을 깨우치고부터는 사람들이 왜 비싼 돈을 주고 게장을 사먹는지 이해했다. 그 뒤 벌교에서 꼬막비빔밥을 먹을 때 찬으로 나온 게장아주 맛있게 먹었다.


나 이제 게장 맛 좀 본 여잔데(?) 하며 이 곳의 게장을 기다렸다. 메인으로 나오는 것은 양념게장, 간장게장, 그리고 갈치조림이다.


총평은 이렇다. 밑반찬 하나 남김없이 싹싹 다 비다.



그런데 밥 양이 조금 부족했다. 밥을 하나 더 시킬지 고민이었다. 근데 우리 굴 요리 먹자고 여기 온건데 말이야. 인터넷에서 봐서 알고 있었지만, 괜히 아쉬운 마음에, 혹시나 하고 한 번 더 여쭤다.


"사장님, 굴파전이나 굴라면 같은 건 여기서는 못시켜요?"


그렇단다. 그건 1호점에서 먹어야된단다. 애매한 시간대에 방문한 덕에 텅텅 비어있던 식당에서 낮은 목소리로 심각한 토론을 시작한다. 여기서 밥을 하나 더 시켜서 남은 밑반찬들이랑 먹을 것인가, 아니면 유리 밖으로 바로 보이는 유자가든 1호점으로 갈 것인가. 1호점에 가서 또 뭔가 시켜먹는 건 좀 과한거 아닌가? 근데 여기서 밥 한공기 더 시켜서 밑반찬이랑 먹는 건 그냥 배만 채우는 셈이잖아.


결국 우리는 바로 맞은편에 있는 1호점으로 갔다.



들어가니 연세가 꽤 많아보이시는 할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게장, 그 게장정식은 여기 아녀~ 저, 저, 건너편으로 가셔야돼~"

"아뇨 사장님, 저희 굴라면 먹으러 왔어요~"


할아버님이 귀가 어두우셔서 굴라면과 굴파전을 먹겠다고 몇 번을 말씀드렸다. 할아버지 사장님은 곧 휴대폰으로 어딘가 전화를 하신다.


"어~ 여기 저, 저, 굴라면허고~ 굴파전 하나씩~ 어~ 어~"


주방장님이 부재중이셨나보다. 그런데 불현듯 뭔가 떠올랐다.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그도 같은 생각을 했다. 혹시..? 혹시 2호점에서 게장정식 해주신 여자 사장님이 오시는 거 아니야? 그러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은데? 우리 거기서 게장정식 1인분 다 먹고 나온건데 여기서 또 라면에 파전을...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1호점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아~ 아까 그 손님들이구나~ 양이 적었나봐~"

"아, 아, 아니요 그건 아니고, 하핫..."


예상은 슬프게도 빗나가지 않았다. 2호점 여자사장님이셨다. 당당히 내 돈 내고 사먹는건데 어딘지 모르게 부끄러웠고, 이 모든 상황이 기기도 했다.


곧이어 나온 굴라면. 말이 필요가 없었다. 곧이어 나온 파전도 최고였다. 바삭바삭한 테두리 못지않게 안쪽도 밀가루가 두껍지 않았다. 넉넉하게 들어간 굴과 파를 감싸는 밀가루 반죽은 입에 들어가서 굴의 육즙과 고소한 기름을 뿜어냈다. 거기에 얼큰하게 라면 국물 한 숟갈 딱! 그렇게 우리는 국물까지 다 퍼마셨다. 설거지를 한 수준으로, 애초에 뭐가 담겨서 나왔나 싶을 정도로.



그릇을 다 비우고나니 새삼 놀라웠다. 남편은 많이 먹을 땐 많이 먹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배가 차면 그 이상으로 욕심을 내는 편은 아니다. 나는 맛있는 건 잘, 많이 먹는 편이지만 그래도 n인분을 먹는 수준은 아니다. 배가 꽤 불렀는데도 라면과 파전이 이렇게 쉴새없이 들어가다니.


계산을 해주시는 여자사장님께 음식이 다 너무 맛있었다고, 정말 잘 먹었다고 말씀드렸다. 사장님은 호호 웃으시 '사람들이 내 손맛이 좋다그러더라고~' 하셨다. 그 당시에는 정신을 놓고 먹느라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걸신이 든 이유가 있을 법도 했다. 점심을 조금 부실하게 먹었고, 찬바람과 소나기에 지쳐있었다. 또, 식당에 다른 손님들이 없어서 좀 여유롭게, 더 맛있게 조리해주셨을 수도 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날의 간장게장과 굴라면, 굴파전은 우리 남도 여행의 대표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아직도 해가 지지 않은 시간, 체크인을 한다. 시티뷰로 드릴까요, 오동도 뷰로 드릴까요? 오동도 뷰는 딱 한 객실 남았습니다, 하시는 직원분. 아닛, 하나 남았다고 하시면 당연히 오동도 뷰든 시티 뷰든 그 객실로 갈 수밖에 없잖아요, 아시면서. 인간의 심리란. 우리는 하나 남았다는 오동도 뷰 객실에 짐을 풀었다. 전라남도 여수시 한려동 오동도로 111, 소노캄 여수.





배도 부르겠다, 한시간 남짓 곯아떨어진 뒤 여수 밤바다~를 즐기러 출발한다. 먼저 도착한 곳은 여수 해상케이블카. 올라오니 야경이 끝내준다. 무엇보다 케이블카 안에서 보는 넘실넘실, 반짝반짝, 바다 위를 유유히 지나가는 케이블카 행렬이 뭐랄까, 귀엽고 예쁘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돌산공원을 산책한다. 위에서 바라보는 핑크빛 돌산대교가 어쩐지 몽환적인 느낌 뿜어낸다. 한강 위에 놓인 다리만 화려한 줄 알았더니 이곳도 만만치 않다.





산책을 마치고 이십여분을 걸어 여수 낭만포차에 입성! 거북선대교 아래로 상가들이 줄줄이 늘어서있다. 우리가 선택한 메뉴는 돌문어삼합! 사진을 보고는 어쩐지 SNS 감성만을 노린 - 생김새만 그럴듯하고 맛은 별로인 -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조금 있었다. 그치만 많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칭찬일색이니 속는셈 한 번 가보자, 한다.



그래서 맛은? 눈을 사로잡는 식재료들의 정렬이, 특히 송이버섯에 찍힌 '돌문어상회' 상호가 SNS 맛집을 노린 것을거다. 하지만 구성을 보면 맛 역시 보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버터에 갓김치, 각종 해물과 매콤한 소스. 사실 맛이 없는 걸 상상하기가 힘든 조합이다.


소주도 한 병, 맥주도 한 잔 들이키며 지난 여행을 돌아보고, 지난 결혼 생활을 돌아보고, 연애 시절도 돌아보, 그런 얘깃거리가 떨어질 즘이면, 와 이건 근데 정말 맛있다, 하며 눈 앞 음식 얘기로 돌아온다. 전라남도 여수시 종화동 434, 돌문어상회.



배부르게 볶음밥까지 먹고 숙소로 돌아길에 아이스크림을 파는 작은 가게가 있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제대로 된 카페를 한 번도 가지 못했기 때문에 디저트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이건 무조건 먹어야된다!


다시 푸드파이터 모드로 전환하고 옥수수아이스크림을 주문하면서, 크림이 가득 든 홍콩식 와플에 아련한 눈빛을 보낸다. 그래, 배부르니까 와플은 좀 오바야. 전라남도 여수시 종화동 282, 여수 달구나.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고나서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와플도 먹어야될 거 같애."



그렇게 끝없이 먹고나서 숙소로 걸어가는 길에 우리는 계속 깔깔댔다. 하루종일 미친듯이 먹어제낀 것밖엔 생각이 나질 않으니. 이것도 정말 역사에 길이 남을 추억이다, 그치?




찬바람을 맞으며 오동도걸었다. 너무 캄캄해서 초입까지만. 거기서 보는 숙소가 참 멋졌다.


이렇게 여수의 밤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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